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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Jun 20. 2024

엄마한테 등짝 맞고 올립니다.

비움의 미학: 땡큐, 당근마켓

 

 

 나는 쉬는 날이면 종종 당근마켓을 눈팅하며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세상엔 많은 구경거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사람 구경이 제일 재밌는 거라고 우리 할머니가 그러셨다.


 그래서 그런가? 나도 사람 구경하는 것이 좋다.

당근마켓 스크롤을 토독 토독 빠르게 아래로 쭉 내리면서 눈에 띄는 물건을 본다. 그리고 물건 소개를 위한 사진과 글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유추하곤 한다. 참 특이하지.


- 누가 봐도 잔뜩 정성을 들여 사진을 찍어 올리는 사람.

- 어지러운 집 배경을 뒤로 한채 물건에만 집중한 사진을 올리는 사람.

- 자세한 설명 혹은 간략한 정보만 올리는 사람 등등…


 참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많았다.




 작년 겨울, 삼 개월간 병원에서 길다면 긴, 짧다면 짧은 시간을 보낸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다.


평생 지병 없이 건강했던 엄마는 갑자기 단기간에 많은 약물 치료를 받았더니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느낌이었다.

 

 일단 말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나의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퇴원 후에 엄마 안부를 내게 종종 묻곤 했다.


‘어머닌 좀 어떠셔? 괜찮으셔?’


‘응 괜찮아. 많이 좋아지셨어. 걱정해 줘서 고마워.’


 이는 사실이 아니었지만 나는 왠지 괜찮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불규칙하게 출근을 하는 나는 아무런 교류 없이 조용히 집에서만 지내는 그런 엄마가 조금 걱정되었다.

 

 추운 겨울의 날씨를 핑계 삼아 우리는 식료품조차 배달만 시켜가며 외부 접촉 없이 고요한 집에서 숨죽여 지내고 있었다.

 



 

 ‘이런 엄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한동안 손 놓고 있던 어지러운 드레스룸 정리를 하기로 했다.


 옷장 정리를 핑계로 안 입는 옷들을 모두 헤집어냈다.


 가만히 내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도 엄마의 옷장에서 옷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엄마, 옷은 많은데 왜 항상 입고 나갈 옷은 없는 걸까? 근데 이 많은 옷이 우리가 다시는 안 입을 옷들이라고?‘


 ’이 옷은 어때? 저 옷은? 이 옷이 없으면 아쉽지 않겠어? 나는 엄마랑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말이야.‘


 ‘아니야. 너 분위기랑 안 어울려. 안 입는 옷은 미련 갖지 말고 꺼내놔.’


‘애매한 옷들은 남겨두고 올 겨울에도 손이 안 간다면 그때 내놓던지.’


  못 보던 이 옷은 뭐야? 내가 이런 걸 입으려고 샀다고? 아, 유행 완전 지났어, 아아… 틀렸어 이건 이제 살을 빼도 못 입는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며 옷장에서 쏟아낸 옷들은 양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허풍 한 줌 더해서 이야기하면 약간 꼬마 동산 같은 느낌.




 하하. 추운 겨울날 밤에 이 많은 옷들을 어찌 헌 옷수거함에 옮겨야 하나 헛웃음이 났다. 초록색 커다란 철제통에 다 들어갈 것 같지도 않았다.


 순간, 당근마켓 떠올랐다.

당근마켓을 통해 몇 번 물건을 판매했었는데. 적은 금액에도 진 빠지는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에 이 많은 옷들을 하나하나 팔면서 정신적으로 피로해질 것이 분명했다.


 역시 그냥 헌 옷수거함이 제일 나은 선택이겠다. 싶었을 때 ‘나눔’이란 것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냥 수거함에 넣자니 새 옷, 품질 좋은 옷, 고가의 메이커 옷들도 제법 있어서 동남아에 싸게 팔려가 현지에서 리세일시키기엔 아까웠다.


‘혹시 우리의 옷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지 않을까? ’

 

 나눔글을 올리기 위해선 사진도 함께 올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많은 옷을 하나하나 찍어 올리기엔 도저히 무리였다. 대충 세어보니 거의 100벌 조금 안 되는 어마무시한 양.


 어쩔 수 없이 옷무더기 사진을 대충 찍어 올리며 나눔글을 올렸다.


 내용은 이랬다.


•옷장 정리 중입니다.
•여름옷부터 겨울옷 있어요.(셔츠 종류 많음)
•한 번도 안 입은 새 옷들도 있고 그냥 버리자니 혹시 필요하실 분들이 계실까 나눔글 올려봅니다. 예쁘게 걸어놓고 맞이하고 싶지만 정리 중이라 시장좌판에서 골라가신다 편히 생각해 주세요.
•사이즈는 xx입니다.
•모두 여성의류입니다.
•나눔입니다. (대부분 깨끗이 입어 큰 오염은 없습니다.)
•OO아파트입니다. 직접 오셔서 보고 골라가세요. (지금 시간엔 여자만 있어서 여성분만 가능합니다.)
•오실 때 큰 가방 필수예요.


 나눔글을 올린 지 5분, 10분이 지나도 문의 메시지 하나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내가 그동안 봤던 나눔글은 올리자마자 ‘나눔 완료’가 뜨는 게 정상인데?


 상황 분석하길 좋아하는 나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앉아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흠, 사진 때문인가?’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옷더미 사진이 문제라고 생각됐다. 조금 더 냉정한 시각으로 사진을 분석해 보았더니, 집에 와서 직접 골라가라는 것도 수상한데 옷더미가 어지럽게 쌓아 올려진 사진이라면? 나 같아도 찜찜하고 영 구미가 당기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엄마랑 둘이서 옷걸이에 누가 봐도 꽤 이목을 끌 수 있을 것 같은 옷 몇 벌을 선별해 하나하나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잘 사용하지 않는 행거를 거실로 꺼내와 커튼을 친 배경으로 메인 사진을 다시 찍어 올렸다.


 이목을 끌기 위해 제목도 조금 더 자극적으로 수정해서 올렸다.


‘엄마한테 등짝 맞고 다시 올립니다.’


사실 우리 엄만 손찌검하지 않는 분이에오…


 결과는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나눔글을 새로이 다시 올리고 1분도 지나지 않아 방문의사가 있다는 문의 메시지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후에 몇몇 아주머니들은 엄마한테 등짝 맞았다는 표현이 너무너무 재밌었다고… 칭찬 아닌 칭찬을…)




 첫 번째 방문자가 온 것은 저녁 6시경부터다.


-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유치원생 딸의 손을 꼭 잡고 온 아이 엄마.

- 마침 집에 놀러 온 친구와 차 한잔 하려다 ‘나눔’ 태그의 알람이 울려 급하게 둘이 장바구니를 챙겨 온 아주머니 둘.

- 대학교에 입학할 딸이 입었으면 좋겠어서 사진에 있던 새 코트를 콕 찍어서 찜해놓고 오신 아주머니.

- 옷을 가방이 넘치게 담아가셨다가 집에 가서 입어보고 마음에 들어서 더 가지러 다시 오셨던 아주머니.

등등…


 나눔은 밤 12시가 돼서야 마무리되었다.

후에 세어보니 총 23명의 손님이 다녀갔었다.




 첫 나눔 손님이 초인종을 눌렀을 땐, 내가 자연스럽게 아파트 출입문을 열어주는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원래도 큰 눈이 토끼처럼 더 커졌다.


‘누구야? 누가 집에 오기로 했어?‘


 ’아니 엄마 사실은 말이야, 날이 추워서 우리 외출하지 않은지 꽤 됐잖아. 집에만 있으면 너무 심심할 것 같아서. 사람 구경 좀 할 겸, 이 옷들 우리가 안 입는 건데. 우리한테 불필요한 것들을 필요한 사람들한테 나눠주면 좋을 것 같아서 내가 계획한 이벤트야. 어때 마음에 들어?‘


 속으로 엄마가 거부감을 보이면 어쩌지? 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엄마는 오랜만에 미소를 띠며


 ‘그랬어 우리 딸? 고마워. 사람들이 더 온다니 엄마가 옷 좀 제대로 입고 있어야겠다.’라며 안방에서 사부작사부작하더니 퇴원 후엔 액세서리는 일절 착용하지 않다가 웬일로 작은 귀걸이까지 껴가며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기분이 묘했다. 진작 이럴걸 그랬나?




 다음 날 아침.


 많은 분들이 야무지게 잘 골라가셔서 제법 넓어진 거실을 보며 뿌듯한 기분을 만끽 중이었다.


 ‘당근!’


 나눔 완료로 분명히 표시해 두었는데 알림 메시지가 왔다. 아, 나눔 후기 글인가? 아니면 옷을 가져가셨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셨나? 분명히 완료라고 했는데 미처 못 보신 분인가?

 

 별별 생각을 하며 썩 궁금하지 않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피셜 한 나눔 후기가 아닌 개인적인 후기글이었다.

 

 기억나는 손님이었다. 옷을 한 아름 가져가셨다가 집에 가서 제대로 입어보니 너무 만족스러워서 재 방문하셨던.



 텍스트지만 진심이 가득한 메시지였다.

생각지도 못한 훈훈함 공격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으레 그렇듯이 나눔 현장에서만 고맙다, 잘 입겠다.라는 상투적인 인사만 하고 헤어졌는데. 그렇다고 나는 딱히 감사인사를 받고 싶은 것도 아니었었는데.

 

 기쁜 마음에 엄마에게도 메시지를 보여드렸다.


‘우리 딸, 기특해. 너무 좋은 선택이었어.’


 퇴원 후, 감정 없는 목각인형 같았던 엄마에게 오랜만에 따뜻함 가득 담긴 칭찬을 받았다.

 

 버리지 못해 잔뜩 자리를 차지한 옷장, 어질어질했던 드레스룸이 나눔을 통해 넓어졌다.

 

 쑥스러운 말이지만 엄마와 나, 우리 마음의 공간에서 짐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나움의 행복, 비움의 미학이라는 여유를 가득 채워 넣은 느낌이 낭낭했다.


 여러모로 뿌듯하고 따뜻한 어느 겨울날이었다.


 당근, 고맙다. 다음에 새로운 버전의 나눔으로 또 이용해 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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