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한 살, 2018. 11. 4. 일요일 >
< 서른한 살, 2018. 11. 4. 일요일 >
#아버지 #서울살이 #자녀와 소통
#열심히 살았지만 삶이 나아질 것 같지 않을 때
일 년에 열두 번 이상을 만나는 친구 가족 모임이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오던 관계가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들 만큼이나 아내들도 서로 친하게 지내 참 소중한 모임이다.
얼마 전에 만났을 때는 직장생활과 서울살이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가 오갔다. 지방 출신인 우리는 서울에 가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레 그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가졌는데, 태어날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좋은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먼 일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남들만큼 열심히 살아왔다. 허무한 감정 때문이었는지 누군가 '서울에서 답이 안 나오면 고향 가서 아버지 일 도와드려야지' 하고 푸념 섞인 말을 했다. 예전에는 웃고 넘길 말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걸렸다.
사실 우리가 느낀 감정에는 그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부모님보다 잘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각자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뭐 하나 그들보다 나은 것이 없다. 내 이름으로 된 집도 없고, 앞으로 벌어들일 수입이 부모님이 평생 버신 것보다 많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아이를 둘 이상 낳을 생각이 없고,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자녀를 우리만큼 키워낼 자신도 없다. 부모님의 사회적 지위는 크고 멀게만 느껴진다.
부모세대보다 못 살게 되는 이유를 생각하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떠올려 본다. 자녀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관점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닮고 싶든가, 닮고 싶지 않든가. 대게 아버지와 관계가 좋은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모습을 닮아간다. 그리고 아버지들의 모습은 성공했거나,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성공한 아버지와 그를 닮고 싶어 하는 자녀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자녀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성취를 이뤄낸 아버지를 보고 배운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그 위치에 갈 수 있는지 방법을 전수받는다. 삶의 태도를 배울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조언과 함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자녀는 그와 소통하며 성장해 나간다. 육아 프로그램에 나오는 어느 유명인 가족의 모습이 그렇다. 한 분야에서 성공한 '슈퍼맨' 아버지가 자녀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성공으로 이끌어준다. 그 속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진다. 요즘 사람들이 누구나 꿈꾸는 모습이다.
반면교사인 경우도 있다. 아버지가 가정 경제를 책임지지 못하고, 자녀들에게 소홀한 경우이다. 주로 전쟁을 겪은 할아버지 세대들에서 볼 수 있다. '육 남매'를 키우기 위해 일용직을 전전하셨지만 집안을 일으키지도, 자녀들과 교감을 나누지도 못했다. 가정 경제를 소홀히 하고 집 밖으로만 돌았다는 식의 관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녀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속으로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자리 잡는다.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 열심히 산 덕분에 경제적인 여유를 갖게 되고, 제법 살만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우리 세대는 성공한 아버지를 닮고 싶어 하지 않는다. 육 남매 중 하나일 뿐인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은 경제적, 사회적 자립을 위해 인생을 바쳤다. 개천에서 난 용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기 위해 잠을 줄이셨다. 그 덕분에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사시며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해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아버지를 닮고 싶은 생각이 없다. 성공한 사람을 닮지 않겠다는 건 곧 성공에서 멀어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자녀 세대는 예전보다 풍족함을 누렸지만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을 때 내 아버지보다 나은 삶을 살지 못하는 자신을 마주한다.
아버지 탓을 해본다. 우리는 아버지가 이뤄놓은 성공이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성공한 아버지는 자신의 주관이 너무나 뚜렷하다. 맨 손으로 무언가를 이뤄낸 사람들이 그렇듯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존감이 강하다. 부지런히 살아야 성공하고, 어렵게 살지 않으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아버지의 잔소리는 길었지만, 대화하는 시간은 부족했다. 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직장과 사업체에 몸을 갈아 넣는 시간만큼 우리와 대화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대화가 없으니 서로의 생각을 이해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고민을 나누고 싶을 때도 있었다. 의지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삶의 정답을 알고 계시는 아버지는 그것을 너무도 쉽게 우리에게 강요하셨다.
성공한 아버지를 닮고 싶어 하지 않은 나 자신을 탓해본다. 우리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려고 한다. 일단 서울에 있는 대학이면 '인 서울'이라는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지방 생활에 코웃음 친다. 흔히 말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그보다는 경쟁이 좀 덜한 회사에서 일을 한다. 월에 몇 백을 벌건 집세나 기본 생활비를 지출하고 나면 손에 쥐는 건 몇 푼도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는 열심히 살았지만 사회가 어려워졌다는 말로 위안을 삼아 본다. 그 순간까지도 고향에 가서 아버지처럼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버지와 다른 방식으로 성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경제적으로 성공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야 잘 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 해외 연구 기관에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한국은 17개 경제 선진국 중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로 뽑았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그리스 등이 대부분의 나라가 '가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때문에 해외에서는 한국에 퍼진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기도 한다.
이런 비판들은 알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속사정을 말하고 싶다. 한국인들이 경제적인 여유를 최우선으로 삼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족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돕고, 어디에 가서 눈치 보지 않게 하고 싶을 뿐이다. 세계적인 부자가 되거나, 자신만의 여유를 원하는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할아버지 세대, 아버지 세대, 그리고 자녀 세대로 넘어오는 동안에도 가족을 위해 돈을 번다는 가치에는 큰 변함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가족을 위해, 특히 자녀를 위해 일을 한다. 다만 돈을 벌기 위한 시간만큼 가족에게 소홀해 자녀와 소통하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다. 자신이 이루어낸 성취를 자녀가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반발감을 느낀다면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 성공한 아버지를 바로 옆에 두고도 멀리서 롤모델을 (심지어 그 사람은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이다) 찾는 건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아버지보다 못 살게 되는 이유는 닮기 싫은 아버지 때문일까, 아버지처럼 살기 싫은 나 때문일까. 정답을 내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경제적인 풍요에만 집중하지 않고 관계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좋아야 자녀가 성공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자녀 세대에 물질적인 풍요와 함께 그들에게 관심을 주어야 한다. 돈도 벌고, 자녀들과 시간도 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앞에서 말한 슈퍼맨 아빠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일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도해야 하고, 그 모습을 응원하고 싶다.
"일 하시는 어머니도 계시기에 '부모님 세대보다 못 사는 이유'가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제 일기에서 나온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기에 널리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식을 위해 열심히 살아주신 어머니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기사 출처>
Laura Silver et al., "What Makes Life Meaningful? Views From 17 Advanced Economies", PEW RESEARCH CENTER, 2021.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