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있는 아빠와 같이 놀지 못하는 사연

< 열한 살, 1998. 1. 19. 월요일 >

by 장난감공장

<열한 살, 1998. 1. 19. 월요일 >

#아버지 #야속함 #가장의 무게

#부모가 된 후 내 부모님이 다시 보일 때



아버지는 나와 동생이 아주 어릴 때부터 카센터(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셨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그 일을 접으셔야 했다. 일자리를 찾아 나서셨고, 다른 지역에 있는 카센터에서 직원으로 일을 시작하셨다.



나와 동생은 아버지가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주말이나 주중에 하루 쉬는 날이 주어지면 집에 오실 수 있었는데 우리는 그날이 좋았다. 동네 시장에 가서 떡볶이를 사 먹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약숫물을 받으러 갔다. 철물점에서 사 온 재료로 장난감을 만들어주시기도 했다. 학교 운동장에 가는 것도 좋았다. 우리는 매달리지도 못하는 철봉에 가볍게 올라가 턱걸이를 하는 아버지를 보면 항상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아버지가 카센터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살던 곳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지역에서 새롭게 가게를 차리실 계획이었다. 정든 곳을 떠난다는 게 슬퍼서 며칠을 안 가겠다고 울었지만 카센터 옆에 우리가 살 집을 짓는다는 말에 금방 기분이 풀렸다. 사실 그 집이라고 한 것이 가게에 딸린 조그만 방 두 개였지만, 다시 가족이 함께 살 수 있게 되어 좋았다. 우리 가족은 그곳으로 이사했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카센터의 공구를 늘리며 살림살이도 함께 늘려 나갔다.






비좁고, 차를 고치는 소리가 조립식 벽을 타고 들리는 집에 살았지만 아버지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게 좋았다. 정신없던 개업식을 마친 다음 날, 나와 동생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와 동네를 한 바탕 쏘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아빠 우리 같이 놀러 가요" 하고 얘기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러자"라고 대답하는 대신 "지금 차 고치느라 바쁘다"라고 말씀하셨다. 기대하던 반응이 아니어서 어리둥절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같은 대화가 오갔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었을 때 우리는 아버지가 날카로워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같이 살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아버지는 옆에 있지만 멀게 느껴졌다. 자연스레 어머니가 우리를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냇가에 갈 때도, 장을 보러 갈 때도 아버지 없이 셋이 다녔다. 괜스레 아버지와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이면 질투가 나기도 했다. 집에 돌아갔을 때 차를 고치고 있는 아버지가 보이면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친구분들이 우리가 사는 곳에 놀러 오셨다. 대뜸 아버지에게 가족들과 함께 바람을 쐬러 나가자고 했다. 연고도 없는 곳에서 일에만 매달려 있는 아버지와 그 가족들에게 주는 깜짝 이벤트였다. 차 밑에서 나온 아버지와 친구분들 사이에서 한참 동안 실랑이가 있었다. 결국 고치던 차를 마무리 짓고 가겠다는 아버지를 남겨두고 우리는 먼저 강가로 갔다. 물놀이도 하고, 음식을 준비하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하지만 해가 지고 어둑해질 때까지 아버지는 오지 않으셨다. 다 타버린 모닥불처럼 타들어가던 속은 차갑게 식어갔다. 그날 이후로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먼저 놀러 가자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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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출근을 할 때부터 아이가 보고 싶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상하게 그런 날은 일이 많아 일찍 퇴근을 할 수 없다. 집에 가서 아이와 동네를 산책하겠다는 약속은 야근 때문에 지키지 못한다. 속상해하고 있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내 몸과 마음도 지쳤지만 그런 모습을 집에 가져가고 싶지 않다. 현관문 앞에서 한참을 들어가지 못하고 서 있다 보면, 카센터에서 같이 살던 그날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나처럼 현관문 밖에 서서 감정을 추스르고 집에 들어갈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가족들을 데리고 새 가게를 열었을 때 그곳은 너무나 개방된 공간이었다. 손님에게 사과하는 모습,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인상 쓰는 모습, 바빠서 허둥대는 모습을 여과 없이 가족들에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일터와 생활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아버지의 삶은 딱했다. 일어나서 문 하나만 열면 바로 정비 공간이 펼쳐졌다. 아버지의 일터였다. 새벽에 보험회사 출동 전화라도 받게 되면 수시로 현장에 나갔다. 쉰다는 건, 돈을 벌지 못하고 있음을 가족들에게 알리게 되는 눈치 보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신의 숨을 공간을 찾는 대신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를 달랬다. 학교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고 돌아오던 어느 날은 카센터 구석에 농구 골대가 놓여 있었다. 폐타이어 휠과 목재, 철근 등으로 만들어진 골대였다. 겨울에 동네 논에 물이 얼어 동생과 미끄럼을 한참 타고 왔을 때는 썰매가 만들어져 있었다. 대보름에 쥐불놀이를 하라고 깡통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것을 동네 형에게 빼앗겨 울고 있으니 가서 찾아와 주시기도 했다. 우리의 어리광보다 손님의 말에 먼저 몸을 움직여야 했지만, 우리가 나중인 적은 없었다.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아버지는 여유가 생겨 나를 기다리지만 지방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고향에 잘 가지 못한다. 가끔 명절이나 생신 때 집에 가면 아버지는 슬며시 산책을 하겠느냐고 물으신다. 아버지를 따라 늘 가던 길을 걷다 보면 작은 놀이터가 나온다. 우리는 시간이 지났지만 익숙하게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그때 왜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셨느냐고 묻지 않는다. 아버지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론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치열한 일터에서 식구들이 함께 살던 것도 이제는 다 지난 일이다. 흔한 말로, 지나고 보니 아버지가 지셨던 삶의 무게가 이해가 된다. 그러니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같이 못 놀아 준걸로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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