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어때서?

< 아홉 살, 1996. 9. 26. 목요일 >

by 장난감공장

< 아홉 살, 1996. 9. 26. 목요일 >

#어머니 #소심함 #용기

#소소한 용기가 필요할 때



추석이라 할머니 댁에 갔다. 엄마가 시장에 가자고 하셨다. 걷다가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탈 때 엄마가 "이 버스 중앙시장 가요?" 물어봤다. 사람들이 쳐다봐서 창피했다. 엄마에게 가는 길도 모르냐고 뭐라고 했다. 엄마는 "길을 모르면 물어볼 수도 있는 거지 그게 어때서?"라고 대답했다.






나는 어릴 때 성격이 소심한 아이였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 어려웠고, 모르는 게 있으면 누가 물어볼까 봐 걱정부터 앞섰다. 발을 다쳐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이 내 발톱을 보고 '발톱을 안쪽까지 깊숙이 자르는 애들은 소심하던데, 너도 소심하지?'라고 했던 충격에 가까운 질문을 지금까지 기억한다. 조금 더 커서도 성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깜빡하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대출 기한이 지나면 그것을 반납할 때 한 소리 들을까 봐 책을 계속 연체했다. 도서 반납함이 생겼을 때 그 안도감이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엄마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불편한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도하곤 했다. 남에게 길을 물어본다든지, 시장에서 물건 가격을 흥정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것들은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엄마는 당신이 어린 나이에 세차장에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일 했다. 자신보다 몇 살 더 어리지 않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대학교 강의실을 청소했다. 공공 근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며 보도블록을 깔았다. 나라면 혹시 누가 볼까 싶어 하지 못할 일들이었다.



그런 엄마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있었다. 시각장애인 사무실에서 운전원으로 근무하시던 중이었다. 복지 시설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군청 직원들과 접촉이 잦았다. 그러던 중 운 좋게 군청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의가 있었다. 엄마는 들뜬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이력서를 적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적던 종이를 슬며시 치워버리셨다. 학력 란을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게 어때서'라고 하기에는 그 벽이 크게 느껴지셨던 것 같다.


food-3222859_1920.jpg
입사지원서.jpg





고등학교 시절 나는 사관학교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성적은 한 번도 바닥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야 한다는 걸 받아 들어야만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시도도 못해본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자신감이 바닥이다 보니 집에 연락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주말에 어머니가 하숙집에 다녀가시던 날, 일부러 학교 자습을 핑계로 얼굴을 보지 않았다.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다 하숙집에 돌아갔을 때 깔끔하게 정돈된 방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 위에는 동네 빵집에서 사 온 빵들이 한가득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익숙한 글씨가 보였다. "지금 좀 못하면 어때? 나중엔 잘할 수 있을 거야."



'어때서?' 정신이 떠오르는 메모였다. 사실 성적이 좀 모자라다고 사관학교에 지원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또 시험이 당장 내일인 것도 아니고, 준비할 시간이 남아 있었다. 다음 날 나는 학교에 가서 주변 친구들에게 사관학교에 지원할 것이라고 알렸다. 생각보다 기분이 괜찮았다. 아무도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한 친구는 나에게 '사관학교 기출문제집'이라는 두꺼운 책을 선물해줬다. 자신은 눈이 나빠 지원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 책으로 공부해서 합격하라는 것이었다.



'공부 좀 못하면 어때서'가 통했다. 1차 필기시험을 턱걸이로 합격했다. 다음에 있던 면접, 체력검정, 신체검사 등을 통과했다. 마지막 단계인 수능시험도 무사히 마쳤다. 사관학교에 최종 합격했고, 멋진 정복을 입고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이력서는 이제 여러 자격증들과 경력으로 가득 차 있다. 학력 란에는 대졸을 적으실 수 있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야간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10년 가까운 시기를 공부하신 덕분이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셨을 때 주변에서 이야기가 많았다. 조금은 부정적인 시선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늘 그래 오셨듯 "직장에 다니며 늦은 나이에 공부하는 게 어때서?" 하고 넘기셨다.



그런 모습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사관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도 '어때서'를 외치는 태도는 도움이 많이 되었다. 특히 극복하지 못할 것 같은 힘든 상황을 마주했을 때 비교적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비행훈련에서 낙오되었을 때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도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비행을 못 하게 된 게 어때서? 다른 일을 더 잘 수 있어.", "지금 하는 일을 잘 못하면 어때? 처음엔 다 그럴 수 있는 거잖아."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는 말이었다.



아직도 소심한 성격은 잘 극복이 되지 않는다. 한국을 떠나 남의 나라 말로 공부한다는 게 쉽지 않다. 수업 시간에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손을 들고 질문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한다. 아이와 공원에서 놀다 아이스크림 차가 왔을 때 셰이크가 얼마인지 물어보는 게 망설여진다. 그럴 때면 마법 같은 그 말을 다시 떠올려 본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거면, 나를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잠시 창피한 게 어때서 생각한다. 그 덕분에 오늘도 아이와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눠 먹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vw-2532708_1920.jpg


keyword
이전 04화수분크림을 환불하신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