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별명

< 스물여덟 살, 2015. 12. 12. 토요일 >

by 장난감공장

< 스물여덟 살, 2015. 12. 12. 토요일 >

#부모님 #애칭 #말하는 대로

#긍정의 힘을 믿고 싶을 때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은 중요한 것 같다. 부르는 방식 따라 사람 관계가 보인다. 특히 부부 사이의 호칭은 특별하다. 연예 초반에는 간질간질한 애칭을 부르다가 시간이 지나면 '자기' 정도가 된다. 결혼을 하고 나면 '당신'에서, 아이가 생기고 나면 '누구누구 엄마, 아빠'가 된다. 결혼한 지 한참 되었는데도 서로를 애칭으로 부르는 부부는 주변의 부러움을 사곤 한다.



내가 어렸을 적 아빠는 엄마를 메주라고 불렀다. 메주가 된장을 만드는 재료인 걸 알기 전까지는 엄마 이름이 메주인 줄 알았다. 왜 엄마를 메주라고 부르냐고 물어보니 아빠는 외갓집에 가 보면 메주가 있는데, 아주 못생긴 게 엄마를 닮았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엄마를 메주라고 부르는 아빠가 얄미웠다. 나중에 커서 보니 메주는 무뚝뚝한 성격의 아빠가 엄마를 부를 수 있는 최고의 애칭이었다.



엄마는 아빠를 장발장이라고 불렀다. 장 씨라서 장발장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초등학생 때 내 별명이 장기판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아주 초딩같은 별명이었다. 그런데 엄마에게는 나름의 별명 짓는 철학이 있었다. 외모를 보고 떠오르는 이미지로 별명을 짓는다는 것이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세상 거칠게 생긴 아빠의 모습을 보면 장발장이 딱이었다. 자신을 메주라고 부르는 엄마의 소심한 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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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가 이 정도로 거칠게 생긴 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부른 별명이 심하긴 했네요.





이 유치한 별명 전쟁을 먼저 끝낸 건 아빠였다. 엄마는 길었던 가정주부 생활을 마치고 시각장애인 사무실에서 운전원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새 직장에서 일을 한다는 사실에 엄마는 조금 들떠보일 정도였다. 한편으론 오래 일을 쉬었는데 잘할 수 있을까 긴장하는 모습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엄마가 첫 출근을 하던 날 아빠는 메주라고 부르는 대신 "박 여사 잘 다녀와"하고 배웅해 주었다. 엄마는 눈을 찡긋 해 보였다. 아랫목에서 오래 묵혀둔 것 같은 메주에서 여사님이 되는 순간이었다.



엄마가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셨다. 하시던 카센터를 정리하고 정비공장을 개업하셨다. 장사에서 사업이 되니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평생 기술자로 살아가다 현장일을 멈추고 관리자가 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센터를 할 때는 일이 없으면 자신만 힘들면 되었지만 이제는 챙겨야 할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빠의 별명은 바뀌지 않았다. 그전보다 수염은 더 덥수룩해지고, 사람이 야위어 가니 더 장발장 같아 보였다. 그런데 사실 이 별명은 잘못되었다. 가장 잘 어울리는 별명이었지만, 뚱뚱한 친구에게 삼겹살이라고 놀리는 것은 실례이다. 밀린 월세와 직원들의 월급을 주기 위해 몇 날 며칠 은행을 전전하며 대출을 알아보고 돌아온 사람에게 부르기 좋은 별명이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는 아빠를 복돼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의 별명 철학을 철저하게 어긴 별명이었다. 마치 깡마른 연인에게 그가 건강하고 통통해지기를 바라며 부르는 애칭 같은 것이었다. 처음에 아빠는 몇십 년 만에 바뀐 그 별명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자신과 아무런 연관도 없을뿐더러 왠지 살갑게 느껴지는 그 별명이 성격과도 맞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아빠는 그 별명이 어떻다 생각할 겨를도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엄마는 꿋꿋하게 아빠를 복돼지라고 불렀다. "아이고 우리 복돼지가 고생이 많네", "복돼지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네 오늘은"






시간이 한참 지났다. 박 여사로 불리던 엄마는 23년간 일한 직장에서 운전 일을 마치고 얼마 전 센터장이 되었다. 정말 여사님이 되어 버렸다. 복돼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업은 계속 번창해 공장도 커지고, 직원들도 제법 늘었다. 무엇보다 이제는 직원들의 월급 걱정은 하지는 않는 것 같아 다행이다. 얼마 전 가족끼리 외식을 하다 엄마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빠를 복돼지로 부르기로 한 이유가 있느냐고. 부르는 대로 사람이 변한다는 식의 답을 기대했던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너희 아빠가 복스럽게 생겼잖아?"



나도 아내가 나를 복돼지 같은 별명으로 불러줬으면 좋겠다. 유치해도 올스타, 작가님, 그리고 유행이 지났지만 훈남 오빠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 별명을 내가 짓는 건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아니지, 별명 전쟁을 아빠가 먼저 끝낸 것처럼 내가 아내에게 이름 대신 꽤 괜찮은 애칭을 지어줄 차례이다. 외모를 보면 딱 떠오르면서도 왠지 잘 될 것만 같은, 그런 별명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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