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물아홉 살, 2016. 2. 2. 화요일 >
< 스물아홉 살, 2016. 2. 2. 화요일 >
#동생 #집들이 #기억에 남는 선물
#오래 기억에 남는 선물을 주고 싶을 때
이사를 하고 한참 지난 어느 주말, 창고에 넣어둔 짐들을 열어보고 있었다. 귀중품이라고 적힌 박스를 열어보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상자 하나, 무선 조종 헬리콥터. 무선 조종 헬리콥터?
'이게 언제부터 있었지?'
상자를 열어 안에 들어 있는 헬리콥터를 꺼내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사하기 전 살던 신혼집에 동생을 초대했을 때 받은 선물이었다. 잠시 나던 웃음을 멈추고 건전지를 몇 개 채워 넣고 작동을 해보니 조그마한 녀석이 공중으로 신나게 솟구쳤다. 그렇게 짐 정리를 뒤로 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헬리콥터를 날려보았다. 여기저기 부딪히고, 맥없이 고꾸라지기를 반복하다 드디어 작은 선반 위에 착륙하는 것까지 능숙해지려는 찰나,
"짐 정리 안 할 거야?" 아내의 한 소리에 조종기를 내려놓고 남은 짐을 마저 풀었다.
짐을 풀면서 보니 짧은 신혼집에서의 생활이었지만 살림이 많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매번 집들이를 할 때마다 받은 휴지며 세제 같은 생활용품들이 꽤 되었다. 앞으로 한참 동안은 굳이 마트에 가서 사지 않아도 될 정도의 양이었다. '참 고마운 분들이야. 다음번에 나도 무언가 챙겨 드려야지'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누가 휴지를 가져왔더라?'
집들이라는 것이 초대받은 사람의 집에 가서 그 가정이 행복하기를 같이 빌고 식사를 나누는 뜻깊은 행사이지만, 선물은 참 신기하게 통일되어 있다. 요즘에야 카카오톡 선물하기 같은 기능만 봐도 센스 있는 집들이 선물이 많이 올라와 있지만 '은은한 조명의 무드등'을 선물하기가 애매한 관계라면 생활용품이 최고다. 사실 집들이 선물이라는 게 굳이 누가 줬는지 기억할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초대받은 사람이 현관문에 들어가며 손이 어색하지 않도록 하고, 집주인은 똑같은 걸 몇 개를 받아도 상관없이 두고두고 쓸 수 있는 물건이랄까.
생각 난 김에 동생에게 안부차 전화를 했다.
"그때 줬던 집들이 선물 있잖아, 헬리콥터. 그거 무슨 생각으로 준거야?"
"내가 그걸 가져갔었나?"
"???"
"다음번에 형 이사 간 집 놀러 가면 같이 날려보자!"
선물을 준 동생 본인도 기억 못 하는, 이삿짐 박스에 한참 동안 담겨 있었던 그 선물이 의미 있는 건 재미있는 기억이 만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다 큰 녀석들 둘이 집에서 낄낄 거리며 헬리콥터를 날리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두고두고 오래 쓸 수 있는 휴지도, 세제도, 물티슈도 다 좋지만 가끔은 이런 선물이 오랫동안 그날을 기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