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물네 살, 2011. 2. 1. 화요일 >
< 스물네 살, 2011. 2. 1. 화요일 >
#어머니 #고집 #억척스러움
#받은 선물이 아까워 쓰지 못하는 어머니를 볼 때
어머니의 얼굴에는 주근깨가 많다.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하셨다. 그 시절의 다른 장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일찍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일했다. 기숙사에 살며 옷을 만들어 번 돈은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쓰였다. 그러다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을 하시고도 그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첫 직장은 세차장이었다. 선캡으로 가려도 땡볕이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 이후도 비슷한 일을 하셨다. 대학교에서 청소도 하고, 도로에 보도블록을 깔기도 했다. 그게 어머니의 얼굴에 주근깨가 많은 이유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고향에 들렀다.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에게 어머니는 이것저것 차려 주셨다. 마주 앉아 식사를 한 게 오랜만이었다. 문득 어머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주근깨만큼이나 점이 많았다. 아무 생각 없이 얼굴에 점을 좀 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잠시 멈칫하셨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했구나 싶었다. "그럴까?" 하고 진지하게 대답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아들 졸업식에 가야 하는데, 혹시 점박이 얼굴이 아들을 불편하게 하진 않을지. 가족이 꽃을 들고 사진이라도 찍어야 하는데 자신이 초라하게 보이는 건 아닐지.
그 대화가 발단이 되어 식사를 마치고 어머니와 함께 시내에 있는 피부과에 갔다. 설 연휴를 앞둔 병원에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어머니의 차례가 되고 상담이 시작되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는 병원비를 내기 위해 접수대에 가서 비용을 물었다. 점 한 개에 5천 원, 큰 건 만 원이라고 했다. 머릿속으로 계산해보니 10만 원 정도 나올 것 같았다. 그 정도는 충분히 내드릴 수 있었다.
어머니는 예상보다 금방 나오셨다. 마취 연고라도 바르려면 조금 더 안에 계셨어야 할 시간이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병원에 오기 전보다 어두워 보였다. 이상한 생각에 점을 안 뽑을 거냐고 묻자 '그냥 집으로 가자'는 말을 하시고 먼저 병원 밖으로 나가셨다.
병원에서 나와 걸어가는 어머니는 말씀이 없으셨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조금 떨어져 걸으며 생각했다. 의사는 얼굴의 점의 개수를 셌을 것이다. 그리고 비용을 안내했을 것이다. 순간 그 말을 들었을 어머니의 감정이 이해됐다. 어머니는 점박이가 된 자신의 얼굴이 서럽고, 그것을 없애기 위해 10만 원이나 되는 돈을 쓰는 것도 아까우셨으리라.
그렇게 길을 걷는데 화장품 가게 하나가 보였다. 중고등 학생들도 많이 가는, 흔히 로드샵이라 불리는 가게였다. 나는 어머니의 팔을 붙들고 끌었다. 저기에 잠시 살 게 있으니 들르자고 했다. 어머니를 이끌고 간 그곳의 조명은 야속하리만큼 밝았다. 어머니 얼굴의 점들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 같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수분 크림을 두 개 들었다. 그리고 얼굴에 붙이는 팩을 집히는 대로 담았다.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아까 담았던 화장품 봉투를 내밀었다. 선물이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표정이 병원에서 만큼 좋지 않았다. 뭐하러 이걸 샀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말하지 말고 세수부터 하고 오라고 했다. 어머니는 억지로 얼굴을 씻고 나왔다. 소파에 누우시라고 했다. 그리고 팩 하나를 뜯어 얼굴에 붙여 드렸다. 금방 떼어버리실 줄 알았는데, 그 팩을 붙이고 어머니는 가만히 누워 계셨다.
그렇게 모자는 팩의 설명서에 쓰여 있는 시간만큼 나란히 누워 이야기했다. 학교 생활 이야기, 졸업하면 하게 될 일들. 어머니 얼굴에 주근깨가 생겨가며 일한 시간이 결국은 아들의 대학 졸업을 위한 시간이라는 생각에 서글펐다. 다 큰 녀석이 훌쩍이고 싶지 않았다. 팩을 떼어드리고 나서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수분 크림 뚜껑을 세게 열었다. 그리고 크림을 손에 듬뿍 찍어 어머니 얼굴에 치덕 거릴 정도로 발라드렸다. "아들 졸업식에 예쁜 얼굴로 오셔야죠. 뜯은 거니까 환불하지 말고 다 쓰세요".
졸업식이 끝났다. 시원 섭섭한 시간들이 교차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졸업식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다 조용히 동생에게 물었다. 어머니가 수분크림을 잘 바르고 계시냐고. 동생은 "형, 그거 엄마가 진작에 환불했지."라고 대답했다. 그날 뜯었던 수분크림은 그대로 두고, 남아 있던 하나를 들고 가게에 가서 환불하셨다고 했다. 왠지, 그럴 것 같았다.
그런 어머니가 야속했다. 얼굴에 박힌 점을 빼는 것 대신해서 산 화장품이었다. 남들처럼 백화점에서 산 값비싼 것도 아니고, 그저 쉽게 사서 쓰는 크림이었다. 바닥에 남은 걸 벅벅 긁지 않아도 될 그런 것. 그러나 집에 도착해 어머니의 방 한구석을 보았을 때, 속상한 마음은 가라앉고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들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를 물건들이 박스도 뜯지 않은 채 잔뜩 쌓여 있었다. 주방용품이며 세면도구, 휴지, 수건 같은 것들이 언제 쓰일지 알 수도 없이 먼지만 타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그것들을 뜯어서 좀 쓰지 그러냐고 했다가 어머니에게 한 소리 들었던 기억이 났다. 이미 필요한 게 차고 넘치는 데 왜 새것을 꺼내냐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절약하고 억척스럽게 사신 태도에 내가 감히 할 말은 없다. 음식이 자꾸 눌어붙는 프라이 팬을 쓰며 불편했던 것도, 김칫물이 벌겋게 들어 있는 플라스틱 통을 박박 닦아 쓰던 것도 어머니였다. 뙤약볕에서 일을 하고 집에 왔을 때 얼굴이 따끔거리면, 당신이라고 크림 하나 바르고 싶지 않으셨을까. 자식의 입장에서 마음이 불편하다고 한들 그렇게 살아오신 삶에 잔소리를 할 수 없다. 덕분에 여유롭게 커왔지 않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일한 지 꽤 되었다. 자주는 못 해도, 특별한 날에는 어머니께 좋은 것 하나쯤 사드릴 수 있다. 선물을 드리면 자신은 차고 넘친다고, 대신 아이에게 뭐라도 하나 더 해주라고 말씀하신다. 자식에게 그만큼 하셨으면 됐지, 손주까지 신경 쓰면 언제 자신을 챙길 거냐고 한 소리 하고 싶어 진다. 그러나 그 말을 속으로 삼킨다. 대신 수분크림을 뜯어 얼굴에 발라드렸던 것처럼, 옷에 붙은 태그를 뗀다. 영양제의 뚜껑을 사정없이 열어젖힌다. 아까우셔도 어쩔 수 없다. 이제는 그 정도는 누리셔도 된다. 더 이상의 환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