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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Mar 10. 2024

봉숭아 학당, 본디아 16

선생님은 할머니 아니에요.

 개학이 시작되고 두 달이 되어간다. 

몇 번의 쪽지 시험을 치고 다시 학급 반을 성적순으로 나눴다. 곧 다가올 시험접수에 대비해 수준별 수업이 여러모로 나을 듯했다. 성적이 제일 뒤쳐지는 학생들을 4교시 D반으로 몰았다. 나는 이 반을 봉숭아학당이라고 불렀다.  

   

 종종 행정업무가 밀려 쉬는 시간에 바쁘게 처리할 경우가 많다. 눈은 노트북에 고정시킨 채 손은 빠르게 움직인다. 오늘도 봉숭아학당의 학생들은 교실 입구에서 깍듯하게 인사를 하며 들어온다. 눈을 맞추며 인사를 받아주다 보니 결국은 서류 작업을 끝내지 못했다. 이런 날에는 인사를 적당히 패스해도 좋으련만, 나의 상황을 알리만무한 학생들은 마냥 해맑게 웃으며 “선생님, 안녕하세요.” 인사한다. 친구가 학창 시절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담임선생님에게 몹시 서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나는 가급적 인사하는 학생들과 아이컨택을 하려고 애썼다. 숙제를 안 해오거나 단어시험에서 점수가 형편없는 녀석들을 보고 있노라면 혈압이 올라간다. 그러다가도 땡땡이 안치고 꼬박꼬박 출석하는 모습에 매일매일 나의 기분은 리셋된다.     


 어느 날, 존칭어에 대해 학습을 했다. 한국어에는 어른에게 사용하는 어휘가 별도로 있으며 쉽게 접근하기 위해 예시를 들면서 설명했다. 나이와 연세라는 파트에서 맨 앞에 앉은 녀석이 자신 있게 “선생님은 연세” 말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없거나 틀리는 경우가 많은 D반에서 어쨌든 틀리지 않은 표현을 대답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선생님은 연세 아냐. 선생님은 할머니 아니에요. 연세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사용해요.” 내가 토라진 척하니 학생들이 까르르 웃었다. 퇴근길 차 안에서 동료 교사들에게 오늘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데 고쌤이 

 “선생님은 이 나라 할머니들에 비하면 젊으신 거 아니에요?” 

 “잉잉잉, 선생님 말이 더 비수를 꽂네.” 한바탕 폭소를 터트렸다. 근래 과도한 학교 행정 서류 문제로 하루 종일 지치고 녹초가 된 선생님들에게 본의 아니게 웃음을 선사했다.    

 

 연세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시간은 언젠가 다가오겠지. 아마 그때는 동티에서 오늘처럼 고군분투하며 울고 웃고 한 일상들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나를 이쁘게 나이 먹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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