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로는 이른 아침에도 늘 차가 북적거린다.
어쩌다 조금만 늦게 길을 나서도 차가 밀려서 맘이 조급해진다.
지난주 아침에 학원을 가야 하는 아들놈이 늦장을 부려 허둥지둥 길을 나섰다. 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차선을 바꿔가며 달리다가 신호에 걸려 짜증이 훅 올라온 순간이었다. 뜬금없이 도로의 돌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8차선 도로 복판에 멜론 만 한 돌이 떨어져 다행히 차선에 걸쳐 있었다. 저 큰 돌은 대체 어디서 떨어져 저기 누워 있는 걸까. 저것이 염치가 있었으면 이 아침에 제집도 아닌 곳에 누워 방해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저도 모를 이유로 도로 복판에 떨어져 오도 가도 못하는 꼴이 당황스럽다.
코로나가 지구 전체를 때리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발적 격리자가 되었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세상이 왔고 적잖이 당황했지만, 호모사피엔스는 영리했다. 비대면 세상에 맞춰서 여러 대안이 나왔고 사회는 그 대안들에 길들어갔다.
이 세련된 방식들을 처음 대할 때 나는 조금 놀랐고 조금 신기했고, 그 신속한 편리함에 감탄했다. 그리고 당황했다. 아주 오랜만에 카페에 갔을 때였다. qr 코드로 전자 출입명부를 확인해야 했다. 처음 본 그 신기한 물건 앞에서 나는 서툴렀고 나의 허둥대는 꼴이 뒷사람에게 치부를 들킨 것처럼 등짝이 따꼼거렸다. 키오스크를 처음 만났던 날도 그랬다. 무심한 척 주문을 눌러대다 ‘현금 계산은 직원에게 문의해 주세요’란 문구를 미처 보지 못하고 몇 번이나 다시 눌러대다가 결국 주문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생각 없이 31 아이스크림을 구경하다 ‘요구하고요, 요거랑요’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상냥한 젊은 사장님이 키오스크 앞으로 나를 데려가서 ‘여기서 요렇게 주문하시면 돼요’ 하면서 친절하게 손으로 눌러가며 대신 주문을 도와주었다. 순간 나는 태어나 처음 보는 문명 앞에서 그저 고개만 주억거리며 새로운 세상에 감탄을 마지않는 개화 시기 조선인이 되고 말았다.
배민 앱을 처음 깔고 주문지 주소 변경이 서툴러서 한참을 헤맸을 때. 프랜차이즈 식당에 갔던 날 동글동글한 로봇에게 주문하고 확인 버튼을 안 눌렀을 때 나는 이 신기하고 편리한 세상이 무섭도록 낯설어지곤 했다.
안전하다는 이유와 경제적 이유로 무인 계산대 설치가 늘어나고 식당에 태블릿 PC로 주문하는 시스템이 많아졌다.
아날로그를 낭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나날이 진화하는 시스템은 가끔 곤혹일 때가 있다. 사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디지털이 주는 편리함과 효율성에 감탄이 터진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이곳저곳에서 마주치는 이 세련된 시스템 앞에 설 때면 마치 거대 공룡 앞에서 쭈그러드는 변변찮은 생물체로 전락해 버리는 걸 어쩔 수 없다.
주말 아침에 도로에 떨어진 그 돌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어쩌다 이 아침에 자동차가 득실대는 곳에 떨어져 도로의 훼방꾼이 되었을까. 여기에 와서 이 도로를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결코 남들에게 방해를 주고 싶지 않지만 나를 발견한 운전자들이 천천히 나를 피해 가는 모습을 볼 때 미안함에 몸이 쪼그라드는것같다. 내 뜻과 상관없이 나는 방해물이 되고 말았다.
공룡 같은 키오스크 앞에 섰을 때, 나는 어찌할 줄 모르는 그 도로의 돌덩이가 되어 의도치 않은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민망하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잠시 멈칫하던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젊어져 버렸고 나는 세상과 엇박자를 내며 자꾸 허둥거리게 된다. 기계의 그 편리성과 정확성을 인정하면서도 너무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세상은 느리게 아날로그로 살아가는 내게 가끔은 당황스럽다.
그날 아침 도로 한복판에 떨어진 돌을 생각하니 제 뜻과 상관없이 방해물이 되고만 그 허여멀건 몸뚱이가 당황한 나를 보는 듯 괜히 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