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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하울 Dec 22. 2022

별속의 당신을 보다

 기억은 이토록 뜬금없다.

물기가 걷혀버린 습습한 바람에 떨잠처럼 흔들리는 천변의 풀을 보았을 때, 앞서 걷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저 떨구어진 내 눈에 그이의 신발 끝이 보였을 때 기억은 양해도 없이 불쑥 머리를 헤집고 들어선다. 공중에서 배회하던 빛이 볼록렌즈로 모아져 목표지점을 타격하여 태워버리는 것처럼 염치도 없이 튀어나온 조각난 기억들은 늘 하나의 대상으로 모여 태워지곤 했다. 나는 뒤축이 낡은 구두를 신고 노을이 내리는 저녁을 건너오시는 내 할아버지의 환영을 꿈속에서 자주 마주쳤다. 어쩌면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새것이란 것을 가져 본 적 없었을 것 같은 할아버지 인생이 나는 살면서 오래오래 아팠다.     

  가을이 오는 마당엔 국화가 별처럼 반짝였다.

한쪽 뜨락에 할아버지가 애지중지 아끼는 여러 개의 국화 화분이 가을마다 꽃을 피웠다. 가을걷이할 땅 한 평 없었던 가난한 할아버지에게 국화는 유일한 사치였다. 털실을 풀어놓은 듯 복슬복슬 노랗고 하얀 꽃 덩어리와, 작은 꽃잎이 겹겹이 펼쳐졌던 황금빛 송이들. 쌉싸름하고 독한 향기에 취해 나는 할아버지 몰래 국화 한 송이를 잘라 코끝에 바짝 대고 향기를 맡는다. 향기를 먹을 수 있다면 국화는 분명 혀가 아리도록 쓴맛일 거라고 상상해본다. 잘라낸 꽃송이를 잡고 뱅글뱅글 돌렸다. 국화는 족두리를 쓰고 손을 흔들며 파도를 만들어내던 부채춤을 닮았는걸. 만국기 날리던 운동회날 장구와 북소리가 유난했던 음악에 맞춰 부채를 흔들면 시작점을 알 수 없는 일련의 움직임이 만들어졌고 운동장 구석구석에선 박수가 터졌다 그 순간만큼은 어린 가슴이 괜히 꽃처럼 일렁였다.      

  마당이 깨끗이 정리돼 있을 때 꽃은 더 아름다웠다. 그래서 일요일에 가끔 마당의 풀을 뽑아야 했다. 나는 안소니가 나오는 캔디를 보아야 했고 동생들은 배를 깔고 엎드려 그저 빈둥거리고 싶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잡초 뽑기는 지루하고 피곤한 노동이었다. 더군다나 뒷마당의 응달지고 축축한 흙 속에서 가끔 긴 몸을 꼬면서 튀어나오는 붉은색 지렁이는 잡초를 움켜쥔 손을 자꾸 움츠러들게 만들어서 싫었다.      

  마당에 웅크리고 앉아 해찰하는 어린 동생들 사이로 할아버지는 바빴다. 풀을 뽑고 여루에 물을 담아 텃밭에 뿌리고 화분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일요일 오전을 보내셨다. 마당의 잔풀을 뽑아내다 문득 고개를 들면 할아버지 모습은 늘 한가지 형태로 굳어버린 듯, 한 가지 색으로 뭉개져 버린 듯 같은 형상으로 기억된다. 통이 넉넉한 회색빛 바지와 구멍이 송송 뚫린 낡은 런닝을 입고 뒷굽이 닳아버린 구두를 신은 당신은 파란 여루를 들고 뒤돌아 서 있다. 그리고 당신은 늘 어딘가를 향해 걷고 계신다.     

  나는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직장을 다녔다. 어쩔 수 없이 가족들이 도회지로 떠나버리고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와 고향 집에 남았다. 나는 늘 그곳이 그리웠다. 그곳은 내가 지칠 때 언제라도 돌아가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면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게 숨겨주던 안전한 동굴 같은 곳이었다.

  시골은 아랫목처럼 따뜻한 소리를 가진 언어다. 할아버지는 아득한 소리를 낸다. 세상의 모든 언어가 침잠하여도 홀로 돋을새김 되어 아득한 우주 끝자락에 닿을 단어 할아버지. 시골과 할아버지를 합쳐 부르면 난 어김 없이 그곳으로의 회귀본능이 생겨버린다. 마음에서 시골집이 부르면 나는 온갖 핑계를 대고 찾아갔다. 시골집 현관 앞엔 언제나 할아버지 낡은 구두와 당신이 애지중지 아끼시는 국화가 나란히 놓여있다. 구두코는 닳았고 뒤축은 접힌 검정 구두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절약이었고 쌉쌀한 향기를 품은 황금빛 국화는 구두의 주인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소비였다. 저 오래되고 낡은 신발을 신고 당신은 정적이 흐르는 시간을 이겨내고 계셨으리라.     

  어느 해였을까. 며칠간의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날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끌고 터미널로 나를 배웅하셨다. 할아버지 자전거가 낮은 소리를 내며 굴렀다. 내가 가고 나면 당신은 또 몸이 아픈 할머니 대신 행주를 들고 밥상을 나르실테지. 자꾸 눈물이 났다. 가난한 당신의 인생이 서러웠고 아무렇지 않은척 뒤돌아서야 하는 내 마음도 서러웠다. 고개를 숙이고 자꾸만 옷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는 나를 보시곤 할아버지께서 가만히 말씀하셨다. 

“할아부지는 괜찮어.”

나는 아무런 말을 못했고, 괜찮다는 그 말은 세상에서 가장 아픈 위로가 되었다. 그날 내가 탄 영동행 버스는 시골집 앞을 지났다. 할아버지는 노을이 지는 신작로 위에 자전거를 세우고 떠나는 손녀딸을 기다리셨다. 나를 태운 버스는 아무것도 모른 채 무심히 달렸고 나는 차창에 붙어서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드는 할아버지가 안 보일 때까지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주렁주렁 메달린 기억의 열매속에서 나는 무엇을 보는가. 

기억은 이토록 뜬금없이 아무 상관 없는 풍경 속에서 삐져나오고 할아버지와 마지막으로 걸었던 기억은 세월이 가도 사위지를 못해 별처럼 반짝이는 국화 향기에 가슴이 아리다. 하지만 해 지는 신작로에서 영동행 버스 속의 나를 오래도록 바라봐주신 그 쓸쓸한 따뜻함은 아린 가슴을 조심히 쓸어주곤 한다. 사는 동안 가끔 세상에 지칠 때면 당신의 가난한 사랑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아보곤 했다. 50의 나는 비로소 그날 80의 당신에게 대답한다. 

“할아부지 제 인생도 괜찮아요. 내 할아버지로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기억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우리를 다시 살게 해주는 국화처럼 빛났던 당신의 사랑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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