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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랑

스피커

by 밝둡 Mar 27. 2025

오전 5시는 그가 보통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다. 일어나기 위해서 벽으로 붙어 있던 몸을 굴렸다. 벽에 붙어있는 건 어느 때부터 생긴 잠버릇이다. 찢어진 도배지가 꽃이 피듯 사각거리면 그는 잠에서 깬다. 오전 5시는 찢어진 도배지가 꽃이 피는 시간이었다. 도배지가 찢어진 건 소리 때문이다. 좁은 방 열린 문과 가까스로 옆으로 자리한 스피커가 있다. 그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방 곳곳을 부딪쳐 돌고 돌아 벽을 더듬고 찢어진 도배지 사이로 스며들었다. 오전 5시는 기상음악이 울리는 시간이다. 오전 5시는 그가 1년 전 기상음악을 설정한 시간이다. 1년 전의 오전 5시는 미리 일어나 있던 그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한 시간이다. 매일 오전 5시에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고, 어쩔 땐 이미 타놓은 커피잔을 손에 들고 있었다. 곧 들어올 아침햇살을 맞아 활짝 창을 여는 시간이다. 오전 5시는 그의 심장이 두근대는 시간이었다. 설레는 마음과 벅찬 행복이 가득 차 있는 오전 5시다. 1년 전 그의 오전 5시에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은 활짝 열린 창을 통해 동네로 향했다. 생명의 온기를 담은 잔잔함이 동네를 채웠고, 그의 문 앞에는 향기가 났다. 새벽 골목 곳곳을 도는 할머니의 발걸음에 안정감을 주었다. 나는 매일 아침이 참 행복해라고 그는 오전 5시에 소리 내어 말하곤 했다. 


저녁 10시는 그가 보통 눕는 시간이 되었다. 저녁 10시는 그가 형식적인 하루를 덮는 시간이다. 닫힌 창을 다시 한번 닫는 시간이다. 저녁 10시에는 이미 멈춰 있던 것들을 위한 시간이다. 내일의 멈춤과 텅빔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저녁 10시에 모든 불을 껐다. 매일 저녁 10시는 그가 정상에 놓인 조각 같은 잠자리에 닿기 위해 기어오르는 시간이다. 가끔 그는 쉬었고, 그 상태로 멈췄다. 멈춘 상태의 시간이 지겨워했고, 바닥에 째깍거리듯 낙서를 했다. 매일매일 초침으로 새긴 낙서들이 그에게 흘러갔다. 그는 밤동안 그렇게 새겨진 낙서와 대화한다. 우물우물거리듯 말했고, 작은 소리를 들으려 베개로 귀를 덮었다. 


오전 5시는 스피커가 그를 부르는 시간이다. 음악이 흐르고, 스피커 사이에 껴있는 갈색 머리카락이 한 올 그가 추었던 춤을 춘다. 벽에 붙어 있던 그가 힘들게 몸을 돌리는 모습을 보는 시간이다. 머리카락 한 올이 춤을 추다가 그가 낙서하듯 찢은 도배지 사이로 스며드는 시간이다. 갈색머리카락 한 올이 찢겨진 도배지가 새긴 낙서를 읽으려 춤을 추는 시간이다. 몸을 돌린 그가 죽은 눈으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매일 오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은 그가 음악을 끄는 시간이다. 지속적인 반복을 위한 그의 행동이, 스피커에서 매일 나오는 음악의 반복이, 벽에서 붙은 몸의 꿈틀거림이, 그의 부지런하고도 지긋지긋한 반복이 무참하게 하루하루를 정복했다. 


스피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갈색머리 한올이 너풀거린다.


https://youtu.be/8FKB0HBAtrQ?si=5NwsxI8CKYtju57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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