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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유빈 Jun 27. 2022

아주 그대로 있는 6월입니다

홍진경 님의 글을 읽고 나서

방송인 홍진경 님의 글을 좋아한다. 그의 친구 정신님에 관한 글을 읽으면 친구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애정도 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본인만의 감성이 있는 글은 언제나 내 가슴을 뛰게 만든다.


한 트위터리안이 '6월에 꺼내보는 홍진경의 글'이라고 소개한 글이다.


아주 멋진 글이다. 어려운 단어도, 그렇게 현학적인 문장 구조도 아니라서 이 글이 참 좋다. 남들은 잘 모르는 단어를 엮어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글보다도 자주 마음을 울린다.


12월 연말이면 사람들은 한 해를 갈무리하고, 보고 싶었던 얼굴을 마주하려 애쓴다. 해가 가장 짧은 달이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들의 다정함은 나를 늘 돌아보게 만든다. 새해가 밝아오는 1월에는 모든 사람이 새것을 맞이하는 기분이 들떠 있다. 계절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어제 뜨던 해가 또 오늘 뜨지만 그래도 1이라는 숫자만큼 사람을 동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12월과 1월은 붙어 있지만 또 아주 떨어져 있기도 하다. 끝과 끝. 그래서 특별하게 느껴질 때가 많은 달일지도 모른다.


6월은 어떤 달인가. 내가 알고 지내는 곳들에서 이제 올해가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알림을 해 온다. 2022년 올해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신년의 각오는 얼마나 이루었는지 중간점검을 해보라는 의미로 말이다. 사실 '벌써 6월', '정신 차리니 6월', '1년의 반이 지나갔다'라는 충격요법에는 별로 자극을 받지 않는다. 나에게 6월은 아무것도 아닌 달이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여정의 한가운데. 올해가 끝나면 지금의 6월이 어떤 의미였는지 돌아볼 수 있겠지만 6월의 나는 그저 있을 뿐이다. 장맛비를 맞으며 출근하고, 한강공원 나들이에 마음이 시들해지고, 여름에 어디로 휴가를 갈지 계획하는, 뭔가 딱히 하지 않았고 어느 과정에 와 있어서 그다지 감흥도 없는 달이라고 생각했다.


홍진경 님의 6월에 관한 감상을 읽고 멋지다고 생각했던 건 내가 느낀 '아주 그대로 있는 느낌'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아주 그대로 있을 때마다 왜 나는 아직도 이러고 있나 싶었던 적이 많다. 변화와 혁신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나만 이렇게 덩그러니 그대로 있다고. 좀 이렇게 해야 하는데, 이렇게도 시도해봐야 하는데, 나는 너무 느리고 의욕도 없다고 자책하게 되는 때가 많다. 카멜레온처럼 후딱후딱 몸을 바꾸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나는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재고 또 재면서 늘 그대로 있다.


이번 6월에도 역시 아주 그대로 있었지만, 그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여름휴가를 일행의 일정에 맞추어 6월로 떠났다. 20년 동안 지겹게 들락거렸던 대구 본가에서 사흘을 묵고, 지겹지 않도록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통영에 가보자고 계획을 세웠다. 내가 없는 집엔 그간 모르는 식탁과 냉장고가 생겼고 아빠는 무릎이 좋지 않아 다리를 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사귄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떠들었다. 다를 것 없는 이야기들. 어릴 때 우리는 어땠고, 지금의 우리는 어떠하다는 으레 오랜 옛 기억을 가진 친구들 사이에 나올 법한 별 것 아닌 감상들을 주고받았다. 대구에서는 그냥 쉬자, 별거 없을 테니까 그렇게 단정해 놓고 사흘 밤을 내리 새벽까지 놀았다.


하지만 종종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들이 나를 더 북돋울 때가 있다. 스물아홉 나이 동안 나를 지켜봤던 아빠가 대뜸 나에게 '너는 참 어렸을 적부터 인기가 많았어(아니었음)'라고 말해버리는 감상이라든가. 나는 그저 가만히 내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스무 해를 함께 알고 지낸 친구가 "너는 참 (답 없는? 무턱대고 하는? 정확하진 않지만) 용기가 있어. 뭘 하겠대놓구 어느 순간 보면 이미 그걸 하고 있더라."라고 대뜸 말해주는 순간들 말이다. 별 거 아닌 몇 마디가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다. 그런 얘기들이 내가 사는 삶의 현장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말보다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 아홉 살 때부터 아주 그대로 있는 우리 집에서 알게 되었다.


나는 아주 그대로 있지만 그게 내 자랑이에요.

아주 그대로 있는 것들을 어여쁘게 볼 줄 알게 된 2022년 6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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