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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유빈 Jun 05. 2022

물음표 살인마 ‘재능’을 다루는 방법

재능이라고 한번 우겨봅시다 | 메이저 아르카나 1번 마법사

다음 질문에 대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답변을 고르시오.

"참 재주・재능이(가)  많으신 것 같아요. 어쩜 그렇게 다 잘하세요?"

① 아니에요. 저 사실 못하는 것도 많아요.

②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③ 저도 못하는 거 있어요. 저는 못하는 걸 못해요!

④ 그걸 알아보시다니 정말 대단하신데요?

⑤ 저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렇게 말씀하시죠?


보기 및 해설

① 아니에요. 저 사실 못하는 것도 많아요.

소심했던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대부분 1번으로 답했다. 과학 문제를 잘 풀어서 천재라고 치켜세우는 칭찬에도 나는 미처 못 풀었던 국어 문제를 떠올렸다. 내가 공부왕찐천재라서 한 소리도 아닐 텐데, 나는 그 말들을 다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들뜨진 못했다. 엄마 아빠가 어디 가서 잘난 체하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나는 나를 깎아내려야 한다는 뜻으로 오해했다. 말은 그저 말뿐인 줄 알았는데 정말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내가 괜히 께름칙해져서 이 말버릇은 성인이 되고 그만뒀다.  누가 그러는데 이게 한국인의 대표적인 말버릇이라고.


②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 번호를 골랐을 것 같다. 스스로를 낮추지 않고, 칭찬해준 사람의 성의에 걸맞게 감사할 줄 아는 담백한 답변이다. 그런데 왠지 나는 이 대답이 선뜻 입 밖으로 잘 안 나온다. 상대방에게 거리를 두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단순히 높임말이라서 그럴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라는 말도 뭐 그것까지 고마워하나 싶다. 칭찬하고 그 칭찬에 감사를 표하는 일에도 나는 한 번의 마음먹기가 필요한 사람이다.


③ 저도 못하는 거 있어요. 저는 못하는 걸 못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고? 네. 그게 바로 접니다. 이 두 마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는 결코 내 자랑만이 아니다. 그냥 '못한다'라는 말을 반복한 말장난으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심산이다. 이렇게 말하고 또 혼자 꺄하하 웃는데 대부분 이 대목에서 이 사람이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어쩔 줄 모르고 어색해하는 사람에게 나는 어쩔 수 없이 묵직하게 상처받았다(하지만 곧잘 잊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처럼 외향적일 거라는 오만에서 비롯된 대사다. 몇 번 대차게 망한 기분을 느끼고 나서 이제 아무한테나 안 한다. 이제는 주로 나를 예뻐해 주는 사람 앞에서만 재롱떠는 식으로 덧붙인다. 대부분 되게 귀여운 녀석이군. 하고 반응해주신다. 그런 반응에 힘입어 앞으로 상대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④ 그걸 알아보시다니 정말 대단하신데요?

누구에게나 정답일 수 없지만 나는 이게 가장 나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하다는 거리감 느껴지는 표현 없이 가볍게 상대를 치켜세울 수 있다. 나의 멋짐을 알아보다니 당신도 꽤나 멋진 사람인 걸~?이라는 능청스러운 느낌으로 말한다.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는 손가락 총을 쏴 보이기도 한다. (이건 너무 엔프피스러워서 아무한테나 추천 안 함)


⑤ 저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렇게 말씀하시죠?

이 보기는 결코 웃기기 위해 넣은 것이 아니다. 가끔 불쑥 내 속의 흑염룡이 날뛸 때, '네가 뭔데'라는 생각으로 찾아오는 한 마디다. 살다 보면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가 꼭 있다. 그때는 호의가 호의로도 안 느껴지고, 지금 내 상태가 시궁창인데 네가 뭘 알아? 너는 머리가 꽃밭이냐?라는 극단적인 반응이 툭 나온다. 이럴 때는 대체로 쉬어야 한다. 여행을 가거나, 친구나 가족을 만나서 스스로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소용없다면 정신과나 전문 상담소를 찾아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오늘의 카드를 설명하기 위해서 먼저 장황한 보기 및 해설을 늘어놓은 이유가 있다. 우리가 가진 재능이 재능답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태도가 필요하다. 맞아! 그건 나의 재능이야!라고 흔쾌하게 말할 수 있어야 우리는 진정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게 내 재능이라고? 그럴 리 없어'라고 부정하거나, 1번과 5번의 태도를 지닌 사람에게 타인이 높이 산 재능이 스스로에게도 같은 의미를 가질지는 미지수다. 재능은 불필요한 겸손 또는 오만 앞에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기도, 곧 터질 듯 허상의 몸집을 부풀리기도 한다.


오늘의 타로카드 1번 마법사는 다재다능함, 잠재력, 능숙함을 상징한다. 그는 원하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늘 자신에 차 있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는다. “어쩜 그렇게 다 잘하세요?”라고 물으면 이 카드는 아마도 3번(저도 못하는 거 있어요. 저는 못하는 걸 못해요!)과 4번(그걸 알아보시다니 정말 대단하신데요?) 즈음의 답을 내놓을 것이다. 마법사가 마법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과 동시에 어깨를 곧게 펴고, 손을 높이 쳐들어 마음만 먹으면 내가 가진 재능을 완벽하게 펼쳐주겠다는 태도를 보여준다.


나는 이 카드를 뽑은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되는 주식’이라고 답한다. 연애든 인간관계든, 업무든 사업이든 이 카드를 뽑은 사람에게 안될 것은 없다고. 그리고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  ‘이렇게 잘 될 거라고 이미 알고 있지 않았어요?’라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확신이 없었거나, 확신이 있어도 남들에게 내비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경우가 많다.

인스타그램 스토리 질문 기능으로  ‘재능의 정의’를 물어봤더니 친구에게서 돌아온 답변이다. 재능은 남이 나를 인정해주는 부분이라고 했다. 맞다. 재능은 타인의 인정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나만 아무리 주구장창 재능이라고 우겨도 남들이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다. 재능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어떤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대로 물음표 살인마가 된다. 너 이거 진짜 잘해? 이게 재능이야? 진심임? 지칠 때까지 물어본다. 이건 아주 사람을 미치게 하는 재능의 킬링포인트다.


나도 글을 쓰면서 물음표 살인마의 무한 공격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듣던 나는 글쓰기가 둘도 없는 재능이라 여겨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고 졸업해서 글 쓰는 일로 돈을 번다. 나의 이력을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뭔들 잘 쓰겠거니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도 치명적인 글쓰기 결점이 있었다. 바로 읽기에 완전 젬병이라는 것. 책 한 권 읽는 데 일주일이 꼬박 걸렸고, 읽는 시간을 제한하면 남들과 같은 글을 읽고도 다른 의미로 오해했다. 읽기가 안 되면 자연히 쓰기도 달린다. 글은 쓰고 나서 잘 읽고 고쳐야 좋아진다. 글로는 날고 기는 애들이 온다는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고 나니 나의 결점은 더욱 명확하고 잔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이따위로 읽는 네가 정말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진심으로?


글이 계속 쓰고 싶긴 해? 열심히 쓰니? 죽도록 쓰는 거야?


재능이 없다는 의심에 좌절하면서도 뭐라도 써서 내놓으면 좋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못 썼다고 생각하는 글도 돈이 되었다. 어찌 됐든 성과가 나오니까 이게 내 재능인가? 그저 대학 졸업장이 재능으로 둔갑한 건가? 혼란스러웠다. 꽤나 오랜 시간 그 간극을 오가다 보니 이제는 그냥  ‘글쓰기가 내 재능이구나, 열심히 읽어야겠다’ 상태가 됐다.


여전히 글쓰기를 자주 가로막는 장애물은 당연히  ‘와 나 뒤지게 못 쓴다’는 생각이다. 모두가 노잼이라고 손가락질할 것 같고, 내 재능은 시궁창에서 건져 올린 구정물보다 못해 보이는 그런 순간들이 손가락을 굳게 만든다. 그럼 나는 일단 한 번 우겨보자는 마인드로 쓴다. 어차피 사람들의 인정은 무얼 보고 이뤄지나? 내가 빚어놓은 결과물이다. 재능인지 노력인지 모를 것들로 빚어놓은 무언가를 두고 사람들은 판단한다. 사람들은 내가 잘 읽지 못한다는 걸 모른다. 남몰래 혼자 책 읽기 훈련을 하고, 맞춤법 검사기를 몇 번씩 돌리고도 수차례 지적받는다는 사실을 대체로 모른다. 짜잔 하고 세상에 내놓은 것만이 심판대에 오른다. 재밌는 건 그 짜잔이 꾸준히 지속되면 남의 눈엔 재능이 된다는 사실이다. 쓰레기 같은 글을 짜잔 하고 내놓아도 지속성만 있다면 어딘가에서는 재능으로 어필된다. 남이 나를 보는 시선 자체를 바꿀 수는 없어도 그 앞에 뭐라도 내놓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훔쳐올 수는 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나 이거 잘하는데, 그래 보이지 않아? 꽤 멋지지? 이런 식으로 내 재능을 끼워 파는 것이다. 나는 이 방법으로 여태 잘 쓰고 있다.


“나는 특출 난 재능이 없는 것 같아. 어떻게 해야 내 재능을 찾을 수 있을까?”

최근 나에게 이런 고민을 토로하는 친구들이 많다. 얘기를 좀 더 들어보면 대부분은 재능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었다. 재능은 탯줄 끊고 세상에 나올 때 부여받은 천부적인 능력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막 악상이 떠올라서 정신을 차려보니 교향곡 한 곡이 뚝딱, 글감이 떠올라서 키보드에 손을 맡겼더니 소설책이 한 권, 달싹거리는 몸을 음악에 실었더니 프리스타일 배틀 원톱이 되는 그런 능력만 재능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재능이 없다. 쬐금 잘하는 걸 계속했더니 좀 더 잘하게 된 것이고, 잘한다 소리를 들으니까 더 잘하고 싶어서 시도하고 노력해서 더더 잘하게 된 것이다. 그 마지막 결과물을 보고 저 사람은 재능이 있구나 판단한다는 걸 우리는 잊고 산다.


마법사 카드는 다재다능함을 의미하는 카드지만 아직 그 대단한 재주로 결과물을 내지는 못한 상태다. 자신감이 넘치는 마법사도 가끔 삐끗해서 토끼로 만들 것을 돼지로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법사가 아닐까? 원래 돼지로 만드려고 했어요!라고 우기면 다들 그렇구나 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 뚝딱 토끼를 만들어 보이면 될 일이다. 난 사실 잘 못해요. 왜 나한테 뭐라 그래요? 구시렁거릴 것까지도 없다. 


그래서 내 재능에 내 인생의 힐링과 킬링을 걸지 않으려 한다. 나는 남들의 인정에 기대어 글을 잘 썼다가도 못 쓰는 와리가리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겸손과 오만으로 내 그릇을 더 작게 줄이거나 과장하고 싶지도 않다. 평가는 쉽고, 실행과 완성은 어렵다. 지금까지 이 글을 줄줄 써 내려간 실행력만으로 재능이다. 아니라고? 그럼 내가 또 다른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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