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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훈 Feb 26. 2023

할아버지의 인종차별 발언이 나는 정답게 느껴졌다.

쎄쎄? 아리가또? 할아버지가 말했다.

멜버른의 브런치처럼, 나는 멜버른의 커피도 영 신통찮은 생각이 든다. 여행 가이드를 보면 하나같이 멜버른에서는 맛없는 커피를 먹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세계 일류라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훌륭한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자꾸 멜버른 커피 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이유는 무언가의 명성이 과할수록 반감이 드는 심리도 분명 있지만 또 한편으론 라테, 카푸치노, 플랫화이트라는 것들의 이름을 당당히 걸어놓고 실제론 그런 구분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뒤죽박죽 만드는 게 우스워서다.

멜버른의 커피가 최고건 아니건, 카페 가는 일이 하루 중 중요한 일과임은 나도 인정해야겠다. 아침 카페의 부산스러움, 몇 푼 안 되는 돈도 돈이라고 소비하는 행위의 짜릿함, 내가 뭐라고 복잡한 주문을 하든 그걸 척척 만드는 사람들, 일을 시작하기 전 커피 핑계로 마지막까지 늑장을 부릴 수 있는 여유 등이 좋아서다.

하지만 몇 푼 안 된다는 말은 이제 고쳐야겠다. 그새 호주의 커피값은 기가 막히게 올라 있었다. 나는 4불 이상으로 나가는 커피는 사치라고 여겼다. 전에는 아주 유명한 카페를 가거나 제일 큰 용량의 커피를 시켜야 4불을 넘곤 했는데 이제는 어디를 가도 그보다 싼 커피를 찾기가 어려웠다. '마켓 레인 커피'라는 유명한 곳에서 커피를 시킨 적이 있었는데 조금 비싸단 건 알고 있었어도 6불이라는 말을 듣고는 세상 달라진 물가를 실감했다. 그것도 주먹만 한 크기의 커피였다. 커피를 비싸게 만드는 다른 이유는 아몬드 우유, 오트 우유 같은 대체 우유 때문이기도 했다. 전에는 커피를 시키면 당연히 소우유를 썼지만 요새는 어떤 우유로 할 거냐고 묻는 일이 많아졌다. 그게 권유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도 대체 우유로 시키길래 나도 아몬드 우유로 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몬드 우유를 쓴 아이스 라테 같은 것을 시키면 6, 7불까지 치솟는 것이었다.

Moonee Ponds의 Queens Park에 있던 귀여운 카페
햇볕 속에서 마시는 커피가 세상 제일의 호사
이게 바로 멜버른 커피의 허상이랄까?

멜버른에서 맞는 처음 아침에 나는 어느 카페에 갈까 하는 궁리에 마음이 들떠있었다. 커피 맛은 다 거기서 거기였으니 최대한 그럴듯한 곳에 가고 싶었다. 돈 한 푼을 써도 재밌고 폼이 나게 쓰고 싶었다. 사라의 차를 타고 사라의 직장이 있는 Essendon에서 내려 나는 Moonee Ponds를 향해 걸었다. 가는 길에 사라가 공원에는 꼭 들러 보라고 했다. 꽤 큼지막한 연못이 있는 Queens Park라는 공원이었다. 물가에 카페 하나가 보였다. 날씨는 따뜻했고 공원 카페가 정겨워 보여 바로 커피를 시키고 야외 자리에 앉았다. 물에서 푸드덕 거리는 오리를 구경하고 주변에서 조잘거리는 어린이들의 소리를 들으니 내가 이 재미 보려고 멜버른에 왔지 싶었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시간은 하염없이 갔다. 그동안 못 봤던 여름 해를 마음껏 쬐고 싶었다.

내 옆자리엔 할아버지들 몇 분이 앉아 있었는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다른 할아버지들이 하나둘씩 더 모여들었다. 의자를 찾길래 내 자리에 있던 의자를 모두 가져가도 된다고 했다. 나도 그만 자리를 뜰 때가 되어 내 의자도 가져가라고 하니 할아버지 한 분이 고맙단 인사를 하며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쎄쎄 Xiexie라고 말하면 부적절한가요?'

중국말은 몰라도 쎄쎄 정도를 모르는 사람이 어딨을까. 그러나 나도 조심스레 대답해야 했다.

'네, 부적절하네요.'

할아버지는 다시 말했다 '만약 아리가또라고 하면요?'

'네, 그것도요.' 나도 다시 대답했다.

어디서 왔냐고 묻는 말씀에 어디 나라라고 말해줬다. 거기선 고맙다는 말을 어떻게 하냐고 묻길래 어떻게 말한다고도 알려줬다. 그러나 쎄쎼나 아리가또 보다는 발음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공원을 나오는 길에 자꾸 웃음이 나왔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시도를 했지만 두 번이나 틀리고 말았다. 중국어나 일본어면 대충 맞았을 법도 한데 할아버지의 운이 나빴다. 동양인이라고 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보는 건 적나라한 인종차별이란 건 할아버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부적절 Inappropriate' 하냐고 점잖게 물은 것이다. 자기도 '고맙다'는 말 정도는 외국어로 할 줄 안다고 좋은 뜻으로 한 시도였으나 상황은 부적절해지고 말았다.

나이가 많은 세대들은 이렇게나마 대화를 시도하는 게 익숙한 사람들인 것 같다. 말실수를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말은 걸어보는 것이다. 그러다 조금의 인종차별이 섞여 나오기도 한다. 거기에 대고 인종차별을 당했다며 분해하고 싶지 않았다. 손을 내밀었는데 그 손이 조금 거칠다고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었다. 반면 젊은 세대들은 인종차별에 대단한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동양인에게 쎄쎄라고 하거나 어디서 왔냐는 말은 절대 금기라는 걸 알고 있다. 현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묻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문화, 언어, 인종의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서로에 대해 물어보는 대화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말실수가 걱정이 돼서 아예 말을 걸지 않는 게 편했다. 그게 할아버지 새대와 우리 세대의 차인 것 같았다. 노인들은 공공장소에서도 금방 대화 상대를 찾는 것 같았다. 그게 정겨워 보일 때도 있지만 가끔 참을 수 없게 성가실 때도 있었는데 헬스장 같은 곳에서 무리를 지어 수다를 떠는 경우가 그랬다. 헬스장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람들은 언제나 나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꼭 다른 사람과 소통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스마트폰이 있으니까. 어색하거나 지루하면 스마트폰으로 뛰어드는 게 우리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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