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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의 문을 연다

올레1길(상), 시흥에서 종달리로

by 정순동


‘말미오름에서 섭지코지까지’, 제주올레의 문을 연다.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2007년 9월 8일 올레1코스를 개장하였다. 시흥리에서 종달리로 살짝 건넜다가 다시 시흥리로, 서귀포에서 제주로 살짝 건넜다 온다. 오름으로 시작하여 마을을 지나 바다로 이어지는 올레다. 전반부는 말미오름과 알오름을 오르고, 종달 염전이 있던 종달 마을을 거친다. 후반부는 시흥리 해안도로, 성산일출봉, 수마포를 거치는 바당올레로 너럭바위가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광치기 해변에서 일정을 마친다.


제주올레 대장정을 시작한다.


제주올레 시작점

'맨 처음 마을'이란 뜻의 시흥리(시흥초등학교와 시흥리 버스정류장 중간쯤)에서 제주 올레 상징인 '간세'가 올레의 시작을 알린다. 신임 제주 목사가 초도순시할 때, 맨 처음 둘러보는 마을이 시흥리였다. 그 시흥리에서 제주올레 27개 코스 437 km의 대장정을 시작하여, 섬을 한 바퀴 돌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서 끝난다.


올레길은 당근, 감자, 무 등을 재배하고 있는 밭담길로 이어진다. 당근 밭에는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며 물을 품는다. 밭담 밑에 핀 들꽃들을 살피느라 시작부터 시간이 지체된다. 분홍색 별나팔꽃이 돌담을 뒤덮고 있다. 자투리 밭에는 흰색과 보라색의 도라지꽃이 피어 있다. 흰색 꽃이 핀 백도라지, 꽃이 겹으로 된 겹 도라지도 보인다.


거대한 성채와 같은 말미오름


올레 시작점에서 말미오름 쪽으로 1km쯤 떨어진 곳에 올레1코스 공식 안내소가 있다. 다시 80m 정도 올라가면 말미오름 들머리다. 들머리 쉼터의 처마 밑에 리본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말미오름은 운동기구도 마련되어 있는 시흥리 주민들의 쾌적한 산책로다.

올레1코스 공식안내소(왼쪽), 쉼터(오른쪽)

영남 지방에서 보통 망개나무라고 부르는 청미래덩굴이 소나무를 감고 올라 뒤엉켜 있다. 의령의 특산물인 망개떡을 싼 싸개가 이 나무의 잎이다. 옛날 늦은 밤, 망개떡 장사가 외치던 '망개떡 사려, 망개~떠어억'하는 소리가 생각난다. 잎은 낙엽이 지고 열매가 빨갛게 익었다.

말미오름 들머리(좌), 청미래덩굴(우)

외륜산 화구벽. 경사가 만만치 않지만 오르막이 길지는 않다. 300m쯤 오르면 외륜산 화구벽에 올라선다. 능선 길 북쪽은 굼부리다. 굼부리 안쪽의 비탈진 곳에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능선 길 남동쪽은 화구벽이 절벽을 이루고 있다.

거대한 성채 같은 외륜산 화구벽

화구벽을 따라 평탄한 능선길이 5, 6백 m 이어진다. 초지에 강아지풀을 닮은 길갱이(수크링)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가을의 향연'을 펼치는 갈색 길갱이 사이로 가을은 깊어 가고 있다. 우리는 여유롭게 능선을 걷는다.

화구벽을 따라 형성된 평탄한 오솔길

말미오름 정상(해발 126.5m)에 서면 시흥리 들판, 오조마을 내수면과 식산봉, 성산일출봉과 성산항 일대가 가까이 보인다. 검은 돌담을 두른 밭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모습은 형형색색의 천을 곱게 기워 붙인 한 장의 조각보처럼 아름답다.

시흥리 들판, 오조마을 내수면과 식산봉, 성산일출봉과 성산항이 보인다.
고성리, 수산리 일대. 대수산봉(오른쪽)과 소수산봉(왼쪽)이 보인다.


화구원에 생긴 알오름, 전형적인 이중화산


습지에 핀 들꽃. 말미오름을 내려와 알오름을 오르는 사이에 습지를 지난다. 물은 보이지 않고 '가을 향기'를 물씬 풍기는 꿀풀과의 한해살이풀 꽃향유와 '겸양'을 미덕으로 여기는 제비꽃이 보라색 천지를 만들어 놓았다.

꽃항유, 제비꽃, 서양금혼초, 쑥부쟁이(위 왼쪽부터 시계침 도는 방향으로)

또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쑥부쟁이의 꽃 색깔이 자주색을 넘어 유난히도 푸르러 '숨은 아름다움'을 살며시 내비친다. 유럽 원산의 서양금혼초가 '나의 사랑을 드릴게요'하며 깔끔한 노랑꽃을 고추 세운다.


알오름을 오른다. 알오름은 이름처럼 새 알을 닮은 오름이다. 띠가 허리춤까지 자라 바람에 맞추어 춤을 춘다. 초가지붕을 잇는 건축 자재로 쓰이던 띠다. 가을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바람에 일렁이는 띠가 가을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알오름 정상(해발 143.6m)에 서면 코끼리 모양을 한 성산일출봉, 그 앞의 식산봉과 성산리, 오조리, 시흥리의 들판과 광치기 해변이 다가온다. 동쪽 바다 건너 소가 헤엄치듯 나아가는 우도, 서쪽으로는 한라산과 제주 동부의 크고 작은 오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은 지미봉이 솟아있고, 종달리 마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본 성산일출봉, 광치기와 그 앞의 식산봉, 오조리, 시흥리, 성산항이 보인다.
우도와 시흥리 해변
다랑쉬오름, 아끈다랑쉬오름, 윤드리오름, 용눈이오름 등의 제주 동부 오름군
지미봉 아래 종달리 마을

알오름 정상을 내려서서 띠가 하늘거리는 사잇길을 지나간다. 솔밭에 닿는가 했더니 이내 무밭, 당근밭, 감자밭이 펼쳐진다. 사실 이 지역은 말미오름의 화구원(중앙 화구와 외륜산 사이에 있는 평평한 땅)이다. 종달리 쪽에서 올라오면 경사가 완만하고 알오름만 도드라질 뿐 전혀 오름이라 느끼지 못하고 밭을 지나간다.


종달리 마을에서 찍은 사진을 확대해 보자. 중앙의 알오름 밑에 밋밋하게 누워있는 능선이 화구벽 둘레길인 외륜산이다. 말미오름과 알오름은 전형적인 이중 화산이다. 중앙의 분화구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외륜산이 말미오름이고, 분화구 가운데 알오름이 우뚝 솟아 있다.

종달리 마을에서 본 말미오름과 알오름

오름을 벗어나 종달리 마을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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