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미오름을 벗어나니 채소밭이 이어진다. 이곳 역시 시흥리와 마찬가지로 당근, 감자, 무가 주 작물이다.
당근은 원산지가 아프가니스탄이란다. 미나리과의 두해살이풀인 당근도 당연히 꽃말이 있다. '죽음도 아깝지 않으리'라 당당히 외친다. 아프간의 탈레반 전사가 생각난다.
당근밭 뒤로 지미봉이 보인다.
감자가 흰색 꽃을 피우고 있다. 감자꽃이 이렇게 청초하대니. 화려하지는 않다. 맑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 지역의 볼리비아, 멕시코, 페루 등지에서 야생종으로 자라던 감자는 이제 전 세계에서 재배하는 주요 식량작물이되었다.
하얀 감자꽃. 화려하지는 않지만 맑고 깨끗하다.
채소밭 사이에 간간히 펜션, 민박집들이 나타난다. 아직 본격적인 마을은 아니다. 어느 펜션 마당에 협죽도가 활짝 피어 있다. 종달리 삼거리 근처에서 앞서 가던 젊은이가 길을 놓치고 이곳저곳을 살핀다. 아내는 젊은이에게 길을 가르쳐 준다. 올레길을 걸을 땐 카카오맵이 편리하다는 것도 함께 알려준다.
카카오맵은 제주올레와 제휴하여 올레꾼의 든든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정해진 코스를 벗어났다 싶으면 카카오 맵으로 확인한다. 실시간 나의 위치인 빨간 점이 올레길을 나타내는 파란 점선 밖에 표시되면 길을 벗어난 것이다. 금방 길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종달1교차로를 건넌다. "안녕! 여기는 종달리"하며 올레꾼을 반기는 건물이 눈에 띈다. '종달 미소'라는 한식 뷔페다. 종달리는 제주올레의 첫 마을이다. 외지 올레꾼의 방문이 잦아지면서 마을은 새로 단장한 집들이 많이 보인다. 마을 이름만큼이나 예쁘게 꾸민 카페, 빵집, 소품 가게들이 올레꾼들의 눈길을 잡는다.
종달초등학교. 종달로를 건너니 단소 소리가 들린다. '중림 중림 무황 무황 태~황태황 무림 중림 중림' 음악시간인가 보다. 종달초등학교는 1921년 종달사숙으로 개교하여 올해 2월 72회 졸업생을 배출한 유서 깊은 학교다.
종달초등학교 전경
종달초등학교 뒤편의 책 약방. 쓴 약 대신 달콤한 그림책. 문방구 겸 책방이었던 것 같은데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야기를 전하는 이와 듣는 이의 이야기도 정서적 역동성을 다양한 창작물을 통해 살려 낸다. 종달리의 자연과 역사, 문화가 지닌 가치가 소멸되지 않기를 바라는 시작의 말이 유리창에 쓰여 있다. 벽면의 낙서는 점점 늘어간다.
문방구 겸 책방이었던 것 같은데 벽면의 낙서는 점점 늘어간다.
종달리 마을의 중심은 종달리 사무소 앞 사거리다. 보통의 마을처럼, 정자나무 밑에 공덕비가 몇 기 서 있고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종달리 옛 소금밭을 소개하는 안내문이다. 염전 체험시설도 있다.
종달리 마을
종달염전. 제주 소금 생산의 주산지였던 종달염전은 제주 최초의 염전이었다. 제주도의 염전은 16세기 이후 형성되었다고 보며 종달 천연염은 조정에 진상할 정도로 품질이 우수했다고 전해진다.
종달마을 주민은 '소금바치', '소금쟁이'라 불려지기도 했을 정도로 온 마을 사람들이 소금 생산에 종사했다. 해방 후부터 염전은 (쇠퇴하여 자취를 감추고) 간척사업으로 옥답이 된다. 갯벌이 염전으로, 다시 염전이 논이 되었다가 지금은 버려져 갈대밭으로 변하였다.
옛 종달리 염전터였던 갈대밭(위)과 내수면(아래)은 철새들이 찾아든다.
옛 염전터인 밭담 길을 지나 해안가로 나오면 올레21길 종점인 종달 바당을 만난다.
서귀포시 시흥리에서 시작한 올레길이 제주도 전역을 시계바늘 도는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이곳 종달 바당에서 대장정을 마친다.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해맞이해안로
종달 바당에서 종달해안로를 따라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올레1코스 중간 기착지인 목화휴게소가 있다. 오징어 피데기 파는 곳이 두 곳 있는데 이 집만 손님으로 바글거린다. 네이밍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올레 중간 기착지라는 타이틀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오징어 말리는 풍경
올레를 걷다 보면 바닷바람에 오징어 말리는 것을 종종 본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제주산이 아니란다. 냉동 오징어 사다가 말린다는데 불티나게 팔린다.
해안가 백사장이 인조잔디를 깔아 놓은 것처럼 온통 초록의 해조류로 덮여 있다. 파래가 밀려와 해변을 오염시키고 있다. 해안도로 가장자리에는 꿀풀과의 순비기나무가 '사랑의 기쁨'을 만끽하듯 무리 지어 자란다.
파래로 뒤덮인 해변(좌), 순비기나무(아래)
이제 제주시 구좌읍을 뒤로하고, 서귀포시 권역으로 들어간다. 서귀포시는 동쪽부터 시작하여 성산읍, 표선면, 남원읍, 서귀포시, 안덕면, 대정읍이 차례대로 위치하고 있다.
해안사구에 자라는 벼과의 여러해살이풀, 팜파스그래스가 가을의 향취를 더 한다.
팜파스그래스
시흥 해녀의 집 앞에 자그마한 송난포구가 있다. 방파제를 따라 들어가면 해양 수상스포츠 체험을 할 수 있는 제주 오션파크가 있다. 인공섬으로 만들어진 해양레저 단지이다. 씨워킹, 스노클링도 할 수 있다.
송난포구의 해양레저 단지
오조리 해안가에 있는 오소포연대는 북쪽으로 종달연대, 남쪽으로 협자연대, 성산봉수와 연락을 주고받았던 통신시설이다. 해변지역 언덕에 설치하여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으로 산 정상에 설치된 봉수대와 기능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오소포연대(제주도 기념물 제23호)
오소포연대 인근 카페에는 헤엄치는 물새를 바라보며 담소하는 이들이 많이 보인다. 여기 달맞이 해안도로에서부터 지나온 종달리 사무소까지의 올레길은 휠체어 구간이다.
오소포연대 앞바다에 물새들이 모여든다
오조항과 성산부두를 잇는 한도교를 건넌다.
오조리와 성산리는 분위기가 다르다. 오조에 비하면 성산은 도심지다. 제2공항에 대한 입장도 다른 것 같다. 수협, 선원 복지회관, 해양경찰 파출소, 선구점 등이 모여 있는 성산 부두를 지나 올레는 성산포항 여객선 터미널로 나아간다. 올레는 우도 가는 도항선을 타는 곳을 밑에 두고, 우도가 보이는 언덕으로 이어진다.
오조항과 성산항
동쪽으로 우도가, 서쪽으로 성산일출봉이 다가온다. 온통 갯쑥부쟁이가 둘러싸고 있는 언덕 위에 제단이 있다. 전염병이나 재앙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본단 포신과 생활터전인 바다의 안녕을 보장해주는 별단 용신을 모시는 마을 제단이다. 매해 음력 정초 정일 또는 해일에 지내는 제의는 1,800년대 초중반부터 2백여 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바람의 언덕으로 올라선다.
제단 근처 풀밭에 야영하는 사람도 있는가 보다. 작년과 달리 '야영 금지' 팻말과 함께 출입을 막는 줄이 처져 있다.
갯쑥부쟁이. 국화과, 참취속의 두해살이풀로 꽃말은 '그리움, 기다림'이다.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는 해안 언덕에 이생진 시인의 시비, '시의 바다'가 있다. 혹시 이 길을 지나며 성산포를 노래한 시상이 떠오르면 적어 <시의 우체통>에 넣어 달라고 당부한다. 채택된 시는 성산일출봉 축제 때 낭송한단다.
이생진 시인의 시비 / 시의 바다'
바람의 언덕으로 올라간다. 다른 오름은 잘도 오르면서 오름의 랜드마크인 일출봉 밑에만 오면 매번 마음이 달라지곤 했는데, 이번에는 일출봉 정상을 오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