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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제가 이렇게 나이가 들었습니다."

올레1길(하), 성산일출봉과 광치기 해변

by 정순동

시흥리 해안로, 성산일출봉, 수마포, 터진목를 거치는 후반부 바당올레는 광치기에서 마친다. 40년 만에 성산일출봉을 오른다. 매표소 인근의 잔디밭은 갯쑥부쟁이가 뒤덮고 있다.

매표소 인근의 잔디밭은 갯쑥부쟁이가 덮고 있다.


40년 만에 오른 성산일출봉


제주도를 대표하는 경이로운 풍광을 꼽으라면 성산일출봉과 산방산을 꼽는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는 성산일출봉이다. 산 모양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요새와 같다 하여 원래는 산 이름을 성산(城山)이라고 불렀다. 마을 이름도 성산읍 성산리다. 성산은 일출이 장관이라 영주십경(瀛州十景)의 일경(一景)으로 꼽혀서, 예부터 일출봉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곳의 마을 이름과 구분이 필요하기도 하여 공식 명칭이 성산일출봉이 되었다.

식산봉에서 본 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의 생성과정과 해안지형의 변화

약 5000년 전 얕은 바닷속에서 현무암질 마그마가 분출되어 만들어진 섬, 성산은 수천 년을 지나면서 파도에 깎여 크기가 작아졌다고 본다. 화산재와 깎여 나간 물질들이 동쪽 연안에 퇴적되어 본섬과 이어지는 육계사주가 생겼는데 터진목이다.

성산일출봉의 생성과정과 해안지형의 변화

성산일출봉의 위상

성산일출봉은 화산지질 및 지층구조를 단면으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지형으로 지질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빼어난 경관과 수성화산의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420호로 지정(2000년)되었다.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올라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다. 대한민국 자연 생태관광 으뜸명소, 한국 관광 기네스 12선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등경돌. 성산일출봉 등반로 주변에는 독특한 모습을 한 바위들이 많다. 이 바위를 지나면서 주민들은 네 번씩 절을 하는 풍습이 있다. 제주섬을 창조한 설문대할망에 두 번, 항몽 삼별초의 김통정 장군에 두 번의 절을 한다.

등경돌

이 바위에 얽힌 두 가지 전설. 설문대할망이 이 바위 위에 등잔을 올려놓고 불을 밝혀 밤낮으로 흙을 날라 섬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그 첫째 이야기고, 삼별초 김통정 장군의 이야기가 두 번째다. 김통정 장군은 성산에 성을 쌓고 나라를 지켰는데 등경돌 바위에서 심신을 단련하고 그 아래에 앉아 바다를 응시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연유로 옛날 주민들은 이 바위를 신성하게 여겨 바위 앞에서 마을의 번영과 가족의 안녕을 축원하는 제를 올렸다고 한다.

성산일출봉 정상

성산일출봉의 굼부리

해발 180m인 성산일출봉 정상에 긴 지름이 600여 m, 짧은 지름이 500여 m, 깊이 82m, 면적 2.64㎢인 거대한 굼부리가 있는데, 워낙 넓어 완만하게 느껴진다. 굼부리 주위에는 99개의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풍란과 춘란을 비롯한 150여 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거대한 굼부리 주위에는 99개의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룬다.

요절한 천재 시인 김민부의 '기다리는 마음'이 일줄봉을 조재로 지어졌다. 또 이곳은 이장호 감독의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 촬영지이기도 하다. 한때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은 넓은 초지를 억새와 띠가 차지하고 있다.


환상적인 육계사주 해안지형

일출봉까지 왕복 50분 정도 소요된다. 고등학생 단체 팀과 함께 올라 다소 혼잡했지만 오르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나누어져 있어 서로 엉키지는 않는다. 해안절벽에 서 있는 기암들을 구경하면서 일출봉을 내려간다.

고성리 육계사주

수마포, 터진목, 광치기, 섭지코지로 이어지는 육계사주가 끊어질 듯 이어진다. 햇빛을 받아 불타오르는 듯한 바다가 환상적이다.

수마포, 터진목, 광치기, 섭지코지로 이어지는 육계사주

수마포. 수마포에는 스쿠버다이버들이 물속으로 뛰어든다. 낚시꾼들이 방파제에 붙어 있다.

수마포에서 바라보는 성산일출봉은 일제가 판 동굴진지로 생채기가 나 있다. 일출봉 해안에는 모두 18곳의 자살 특공대 동굴진지가 확인되었다. 이곳 해안 일제 동굴진지는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11호로 지정되었다.

수마포의 스쿠버다이버들


기억과의 전쟁, 터진목 4.3 유적지​

영주 10경 중 으뜸인 성산일출봉과 마주한 성산포 터진목은 4.3 당시 성산면 주민들이 토벌대에 끌려와 학살당한 한과 눈물이 서린 현장이다. 주민 학살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하여 희생자 유족회는 2015년 이곳에 추모공원을 조성하였다.

제주 4.3 성산읍 희생자 위령비
「당신이 남긴 빚으로 인해 팔려가던 검은 밭갈쇠의 마지막 눈빛에서 이별의 아픔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어 울고, 열 살 누나가 학교를 그만 둘 때 현실이 얼마나 혹독한가를 알게 되어 울고, 울고 또 울던 우리가 학교 운동회 날 남들은 아버지 손을 잡고 잘도 달리는데. ㆍㆍㆍㆍㆍ 」​​

<제주4.3희생자위령비 추모글, 2010년 11월 5일>


이 대목에서 읽기를 멈춘다. 유족들의 피눈물 나는 추모글을 더 이상 읽을 수가 없다.

신양 해안사구에 유가족들의 염원을 축원하듯 갯쑥부쟁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해변 왼쪽 모래 언덕에는,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 누나, 형, 삼촌을 꿈에라도 만나길 기다리는 4.3 희생자 유가족들의 염원을 축원하듯 갯쑥부쟁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갯쑥부쟁이의 꽃말이 '인내, 기다림, 그리움'이다.


억울하고 원통하지만 마음 놓고 통곡이라도 할 수 있는 세월이 오기를 말없이 기다렸다. 가슴속 깊이 묻어 두었던 그리움을 한 줄의 글로 담아낸다.

가슴속 깊이 묻어 두었던 그리움을 한 줄의 글로 담아낸다.

"4.3 때 돌아가셔서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제사는 성심 성의껏 지내고 있습니다. 편히 쉬세요"


"벌초도 하고 아버지 산소에 가서. 제 나이 한 살 때 돌아가셨는데, 아버지 제가 이렇게 나이가 들었습니다"


신양리 해안사구

선인장, 문주란, 분꽃, 갯쑥부쟁이가 무리 지어 자라는 해변을 다시 걸으며 격앙되었던 감정을 가라앉힌다.


올레1길은 광치기 해변에서 끝이 난다. 밀물 때라 썰물 때와 해변의 분위기가 다르다. 파도가 밀려와 역사의 흔적을 덮어버린다. 그러나 썰물이 되면 이끼 낀 너럭바위가 드러난다. 평야같이 펼쳐지는 광치기 너럭바위는 저마다 기억하고 있는 사실을 쏴아~ 하며 들려준다.

밀물 때라 광치기 해변에 파도가 밀려와 역사의 흔적을 덮어버린다.
누가 알까
그때 총과 칼 그리고 죽창에
찔리고 찢기고 밟혀 죽임을 당한,
그걸 목격한
저 앞바다의 통곡을,
구천을 맴도는
한 맺힌 영혼의 절규를,
그 아픈 역사의 파편들을,

말 없는 현장의 돌담 벽에
붉은 동백꽃잎으로나 새겨둘까
하얀 국화잎 한 잎, 한 잎 떼어
해해 연연 조각난 세월로 붙여둘까

<4.3희생자성산유족회, 2017. 4월>


4.3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아픈 역사의 조각조각을 모아 현장의 돌담에 동백꽃잎으로 무너져 내리는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말은 없지만 일출봉도, 광치기 너럭바위도, 밀려오는 파도도 그날의 만행을 기억하고 있다.

만행을 저지른 이가 어떤 일을 하고 살았으며, 그의 후예들이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자. 다시는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자. 정신 좀 똑바로 차리고 살자. (2022. 11. 1)


운동 시간 4시간 26분(총 시간 6시간 25분)

걸은 거리 17.5km (공식 거리 15.1km)

걸음 수 28,869보

소모 열량 1,696kcal

평균 속도 3.8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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