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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제주다운 섬 속의 섬

올레1-1코스(상), 우도 서부지역

by 정순동

가장 제주다운 풍경을 간직한 섬 속의 섬, 신비의 섬 우도. 제주도에 딸린 62개의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이다.

우도 올레를 걷는다. 바닷가 해안길과 밭고랑길, 돌담길, 푸른 초원과 쪽빛 바다를 바라보고 걷는 길이다. ​​


우도는 제주도 동부 성산포에서 북쪽으로 약 3.8km 떨어진 지점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신생대 제4기 홍적세(약 200만 년 ~ 1만 1천여 년 전)에 수면 상승, 지각변동 등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수중 화산섬이다. 우리나라 705개의 유인도 중 우도가 76번째 큰 섬이다.


이 섬은 고려 목종 10년 (1007. 6월) 마지막 화산이 폭발하였다. 바다 가운데서 산이 솟아 나왔다. 탐라 사람들은 산이 처음 솟아날 때 하늘이 캄캄해지고, 땅은 우뢰 소리와 함께 진동했다고 한다. 7일 밤낮으로 폭발이 이어지며 천지가 연기로 자욱했다고 한다. ​​/ 고려사, 세종실록


전포망도(前浦望島). 본섬과 우도 사이의 뱃길에서 바라보는 우도의 경관이 마치 '물속에서 소가 머리를 내밀고 드러누운 모습'과 흡사하여 우도라 불리게 되었다. 그 아름다운 경관을 '전포망도'라 한다. 우도의 자랑인 '우도 8경' 가운데 하나다.

전포망도

우도를 드나드는 뱃길은 성산항과 종달항에서 천진항과 하우목동항 사이를 오간다. 성산항에서는 30분 간격으로, 종달항에서는 1~2시간 간격으로 배가 다닌다. 승선권은 배편과 출항시간이 지정되지 않고 선착순으로 승선한다. 승선인원이 다 차면 예정된 시간 전에도 출항한다. 대합실에서 배 시간에 맞추어 가면 배를 놓칠 수도 있다.

천진항 뱃머리


우도 해녀 항쟁, 우리나라 첫 여성연대 사회운동

우도 해녀 항일 기념비. 포구 정면 로터리에 서 있는 ‘우도 해녀 항일 기념비’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32년 1월부터 구좌면, 성산면의 해녀들이 중심이 되어 일제와 어용 해녀조합의 해산물 수탈에 항거하는 ‘해녀 항쟁’이 일어난다. 총 238회에 걸쳐 연인원 1만 7,000여 명이 일제의 식민지 약탈 정책에 저항한 항일운동으로 우리나라 첫 여성연대 사회운동이었다.

우도 해녀 항일 기념비

기념비에는 당시 우도 해녀들이 불렀던 ‘해녀의 노래’가 새겨져 있다. 힘든 물질로 돈을 벌어야 하는 절박한 생활환경과 험난한 삶의 여정에 대한 인생의 허무함, 식민지 수탈에 대한 저항감이 묻어 나오는 표현이 가슴속 깊은 곳까지 아리게 한다.


이른 봄 고향산천 부모형제 이별코,
온 가족 생명줄을 등에다 지고,
파도 세고 무서운 저 바다를 건너서,
조선 각처 대마도로 돈벌이 간다.

배움 없는 우리 해녀 가는 곳마다,
저놈들의 착취기관 설치해 놓고,
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해 간다,
가이없는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

<해녀의 노래> 강관순


혁우동맹을 조직하여 해녀 항쟁을 지원하다 일경에 체포된 우도 출신 강관순이 옥중에서 쓴 「해녀의 노래」다. 제주도에서 해녀 항일운동의 노래로 널리 불리다가 다른 지역에 나간 제주 해녀들에 의해 전국적으로 보급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천진관산(天津觀山), 하늘 나루터 천진항에서 바라보는 한라산과 주변 오름의 풍광이다. 구름 속의 한라산이 크고 작은 오름들을 보듬고 있다. 오늘은 날씨가 흐려 그 진가가 100% 드러나지 않지만.

천진관산

올레1-1길은 청진항에서 시작하여 섬을 한 바퀴 돌고 원점으로 회귀한다. 로터리에서 시계방향으로 우도해안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전기차를 대여하려는 사람들로 혼잡한 거리가 거의 끝나는 즈음에서 마을로 들어선다. 천진리 사무소, 우도파출소, 천진리 어촌계를 지나간다.

올레1-1코스 시작점이자 종점, 천진항


바람, 초원, 돌담, 등대
가장 제주다운 풍경을 간직한 우도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경계를 지은 밭담과 누렇게 익은 보리밭 사이로 올레는 이어진다. 돌담 밑에는 엉겅퀴가 자주색 꽃을 달고 모여 자란다.

보리가 익어가는 밭담길

우도는 동남쪽에 소머리오름(133m)이 솟아 있다. 그 아래로 섬 전체가 해발 50m 정도의 낮고 평평한 산지의 들판이다. 이 들판을 '물에 뜬 들판'이라는 뜻에서 법정리를 연평리(演坪里)라 불렀다.

물에 뜬 들판, 연평리

연평리는 구좌읍에 속해 있다가 1986년 4월 1일 우도면으로 승격되었다. 네 개의 행정리는 들머리 천진항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천진리, 서광리, 오봉리, 조일리가 차례로 나타난다.


다시 드렁코지로 내려간다.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들판에 소를 방목하고 있다. 느린 걸음을 우보라 하듯이 소들은 천천히 걸으며 또 천천히 풀을 뜯고 있다.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들판에 소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

. 건초를 말리고 있는 풍경도 이색적인 그림이다. 한켠으로는 촐(소여물로 사용할 풀)을 베어 차곡차곡 쌓아 원통 모양으로 돌돌 감아 싼 눌이 널려 있다.

풀을 베어 소여물로 사용할 건초를 말리고 있는 풍경도 이색적인 그림이다.

돌담. 바람, 푸른 초원과 검은 돌담, 등대가 제주다운 풍경이라면, 우도는 가장 제주다운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마을을 돌며 제주도의 옛 돌담길을 걷는다. 우도의 특산물인 마늘과 우뭇가사리를 수확하여 말리고 있다.

우뭇가사리를 말리고 있는 돌담길


​세계 3대 홍조단괴 해변​


서빈백사, 홍조단괴 해변(천연기념물 제438호).

종달리 지미봉이 정면으로 보이는 서천진동 마을 바닷가에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백사장이 있다. 에메랄드 빛의 바다와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져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홍조단괴해수욕장, 서빈백사

백사장에 가까운 바다는 연두색으로 먼 바다와 색의 구분이 완연하다. 이를 우도 8경인 서빈백사(西濱白沙)라 하며 세계 3대 홍조단괴 해변이다. 미국의 폴로리다 그리고 바하마와 함께 세계에서 3곳뿐인 진기한 곳이다.

홍조단괴

홍조단괴는 붉은색을 띠는 석회조류 식물인 홍조류가 둥글게 뭉쳐서 자란 것이다. 홍조단괴해변의 하얀 백사장은 고운 모래가 아니다. 울퉁불퉁 구멍이 뚫린 크고작은 알갱이들이다. 홍조류가 쓸려와 퇴적되어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 버린 상태다. 홍조단괴라 해서 붉은 돌을 찾지만, 붉은빛과 주홍빛은 퇴색되어 희게 보인다.

홍조단괴

병아리 떼 종 종 종. 무덤가에 띠가 무성하게 자라 바람에 하늘거린다. 올레는 콩과의 여러해살이풀 벌노랑이가 잔디밭을 노랗게 뒤덮고 있는 초원을 가로지른다. 노란 병아리 모양의 수많은 벌노랑이가 모여 있는 모습에 동요 봄나들이가 연상된다.

벌노랑이가 들판을 덮고 있다.

하우목동항에 들어서니 한적하던 도로가 다시 번잡해진다. 막 도착한 여객선에서 내린 여행객들이 전기차를 대여하여 무엇이 바쁜지 달리기 시작한다. 마치 호찌민시나 북경의 오토바이 떼처럼 몰려온다.

하우목동항
전기차 대여소
우도의 전기차

오봉리 주홍마을 사거리에서 주홍포구로 가는 해안길을 버리고 오봉리 사무소 쪽 들판으로 오른다. 마을 어귀의 조그마한 돌 동산을 꽃동산으로 만들어 놓았다. 길 걷는 이들이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오봉리 돌동산

다시 들판으로 이어지고 밭담 밑에는 수국이 활짝 피었다. 길섶에는 약간 붉은빛을 띤 보라색의 꿀풀이 널려 있고, 돌담 안 쪽으로는 나비 모양의 홍자색 갈퀴나물이 밭을 덮고 있다.

수국
콩과의 여러해살이풀인 갈퀴나물의 꽃말은 용사의 모자로 꽃이 한쪽으로 치우쳐 핀다.


송악이 돌담을 덮고 있는 오솔길. 고창군 선운면 선운사로 가는 길가에서 노거수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를 보고 감탄했던 적이 있는데, 그것만은 못하지만 돌담과 어우러져 감동을 주긴 충분하다.

두릅나무과의 상록 활엽 덩굴성 식물, 송악이 덮은 밭담 오솔길

상고수동에서 하고수동으로 넘어가는 길은 밭담이 아름다운 곳이다. 어디에선가 이곳의 밭담을 찍은 작가의 사진을 본적이 있어, 나도 그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 욕심을 내다가 그만 낭패를 당한다. 파평윤씨 문중묘지를 조금 지나, 바로 요기. 삼양고수물길 사거리에서.

삼양고수물길 사거리 밭담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운동신경은 확실히 옛날만 못 하다. 돌더미 언덕에 올라가서 돌담을 찍고 뛰어내리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한다. 손에 든 핸드폰 액정은 돌 1cm 앞에서 멈추고. 한 바퀴 굴러 간신히 일어난다. 발목이 시큰거린다. 무릎에 핏빛이 돈다.

늑장을 부린다고 불만인 아내는 '영원한 사랑, 부부애'라는 꽃말을 지니고 있는, 또 한방에서 상춘등(常春藤)이라 하여 지혈에 사용한다는 송악만 남겨 놓고 종종걸음으로 멀리 가고 없다.


갑자기 서러운 감정이 확 일어난다.


다음 이야기는 올레1-1(하)에서 이어진다. (2022.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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