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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Jun 11. 2024

백제의 향기가 아름다운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부소산성

부여 1

백제 사비기 왕궁의 배후산성인 부소산성을 다녀온다. 부소산성은 평상시 왕궁의 후원으로 이용하다가 유사시에는 왕궁의 방어거점이 되었다. 

부소산문 앞 주차장에 주차하고 탐방을 시작한다. 부소산문→ 삼충사→ 영일루→ 군창지→ 반월루→ 궁녀사→ 낙화암→ 고란사→ 구드래공원→ 관북리 유적지→ 정문 앞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을 정하여 둘러본다. 

부소산성은 서쪽으로 백마강을 끼고 부여의 가장 북단에 자리한 해발 106m의 부소산 정상부에 축성한 핵심 도성 방어시설이다. 산성 내부에서는 다수의 건물터가 발견되었고, 슬픈 이야기를 간직한 낙화암도 이곳에 있다. 

위기로 치닫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던 백제의 세 충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의열문, 충의문을 지나서 삼충사에 성충, 흥수, 계백 세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탐방로는 사비길로 불린다. 부소산성은 계곡을 품으면서 외곽을 두르는 포곡식 백제 산성, 통일신라시대의 사자루와 반월루 테뫼식 산성, 조선시대의 군창지 테뫼식 산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성 산성으로 조사되었다. 

부소산 동쪽 봉우리에 세워진 영일루. 왕이 계룡산 연천봉의 일출을 보며 나랏일을 구상하였다는 알려진 2층 누각이다. 

옛 백제의 태자들의 산책길로 추정되는 태자천을 품은 아름다운 소나무 숲, 태자골 숲길을 천천히 걷는다. 청솔모가 상수리나무를 오르내리며 재주를 자랑한다. 

백제부터 조선까지 군사용 곡식창고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군창지」다. 불에 탄 곡식이 발견되어 발굴 조사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들어내었다. 백제시대의 주춧돌, 토기, 기와조각 등과 조선시대의 분청사기, 백자 조각이 발견되어 오랜 기간 군 요충지로 사용되던 곳으로 추정된다. 

백마강이 반달모양으로 끼고 도는 서남쪽 언덕 위에 세워져 부여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반월루」 . 누각에 오르니 중년의 여자가 책을 읽고 있다. 

'반월성에 기대서서 멀리 바라보니 떼지어 날던 기러기는 간데 없건만 갈대 우거졌던 옛 구룡평야는 벼 이삭이 바다를 이루고 ~~' 1972년 누각을 세울 때 쓴 '반월루기'가 누각 대들보에 걸려있다. 갈대밭이 논으로 변했다던 구룡평야는 50년이 지난 지금은 시가지로 변했다. 

부소산은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됐을 만큼 아름다운 숲을 갖고 있다. 그 중 가장 사랑받는 태자골 숲길로 다시 들어선다. 궁녀사로 가는 길이다. 

부소산성 곳곳에 백제고도문화재단에서 백제왕도 핵심유적 발굴조사가 한창이다. 이곳 발굴현장은 궁녀사 바로 옆이다. 

궁녀사.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던 날, 백제 의자왕 20년(660)에 낙화암에서 꽃잎처럼 산화한 삼천궁녀들의 충절을 기리며 세운 사당이다. 

사당 안밖의 뜰에는 빨간 꽃을 피운 석산이 심겨져 있다. 석산은 중국 등 동아시아가 원산지인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애절한 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 슬픈추억, 체념, 단념, 독립'등의 꽃말을 가진 석산과 나라 꽃 무궁화를 많이 심어 놓은 것이 궁녀의 슬픈 사연과 연관이 있는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자루는 그냥 지나친다. 백화정 가는 길에, 가까이 자라는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 함께 보내서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된 '연리지'을 만난다. 사랑나무라고도 부른다. 

백화정. 백제 멸망당시 낙화암에서 몸을 던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 여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 건립한 육각지붕의 정자다.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낙화암 정상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백마강가의 높이 40m의 절벽으로 궁녀의 죽음을 아름다운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한 후세 사람들의 표현으로 낙화암이라는 절벽 이름이 이어져 온다고 볼 수 있다. 유람선 황포돛대를 타고 보는 절벽의 붉은 글씨의 낙화암은 천박해 보인다. 

낙화암 아래 백마강가 절벽에 자리잡은 고란사. 낙화암에서 절개를 지킨 백제 여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고려시대에 건립한 절로 알려져 있다. 고란초와 고란 약수로 유명한 우물 고란정이 법당 뒷편에 있다. 살펴 보았지만 고란초는 보지 못했다. 

선착장에서 기와를 얹인 황포돛대 유람선을 타고 구드래 선착장으로 간다. 

관광버스 모양의 배가 백마강 위를 미끌어지듯 달리다. 마치 수륙양용차 같다. 


금강의 일부인 백마강은 '백제의 제일 큰 강'이라는 뜻으로 백제인들은  부소산 기슭을 흐르는 뱃길을 따라 넓은 서해로 나아가 중국, 일본 등과 교류하였다. 

구드래 나루터는 많은 배들이 드나들었던 문화와 교역의 중심지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에서 백제를 '구다라'라고 부르는 것이 구드레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일대에 조각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부소산성 남쪽에 부여 관북리 유적지가 있다.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사비 시기의 왕궁터다. 조선시대 동헌과 객사가 남아 있어 백제 이후에도 지방행정의 중심지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여기서 탐방 일정을 마치고 부소산문으로 이동한다. 


운동 시간 : 1시간 36분  (총 2시간 23분 ) 

걸은 거리 : 5.56km

걸음 수 : 10,238보

소모열량 : 413kcal


날씨 : 맑음

온도 : 28℃

습도 : 47% ( 오후1시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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