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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은 마을 무릉도원

올레12길(상), 무릉에서 신도까지

by 정순동

무릉외갓집에서 용수포구 절부암까지 들과 바다, 오름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지평선이 아스라이 보이는 들녘에서 마을기업을 보고 사회적 연대를 생각하는 길, 햇빛과 바람이 많은 들과 바다에서 재생 에너지를 생각하는 길이다.


해안을 따라 서귀포시 전역을 돌던 올레길은 제주시로 넘어간다. 수월봉에 올라 차귀도를 바라보며 걷는 엉알길과 '생이기정 바당길' 풍광은 화산섬 제주의 백미다.




출발점인 무릉외갓집은 인지도에 비해 대중교통 수단으로는 접근이 싶지 않다. 관광지 순환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서부 관광지를 연결하는 순환버스 820번은 동광 환승정류장에서 양방향으로 각각 4대의 차량이 배정되어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관광지 중간중간의 중산간 마을로도 연결되어 주민들의 출퇴근용으로도 이용되고 관광지 순환이 종료되면 심야버스로 투입된다.


인향동 마을회관 쪽으로 730여 m 떨어진, 걸어서 10분여 거리에 820-1번과 820-2번 순환버스 정류장이 있다.



무릉도원과 무릉외갓집


무릉외갓집. 무릉2리의 농부들이 공동 출자하여 설립한 마을기업이다.

무릉이란 지명과 외갓집이라는 보통명사가 어우러져 어감에서 어렴풋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땅과 계절의 기운을 받고 자란 제철 농산물을 정성을 다해 수확하고 엄선하여 가정으로 직접 배달하는 회원제 농산물 배송 서비스를 2009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무릉외갓집은 무릉2리 농부들이 공동 출자하여 설립한 마을기업이다.

올레 리본은 중산간서로를 건너서 4.3 위령비를 지나 무릉도원으로 들어선다. 무릉도원 올레 권역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무릉도원의 권역은 대정읍 무릉 2리부터 신도 1, 2, 3리를 그 권역으로 하고 있다. 녹남봉 아래 신도 1리가 도원마을이다. 무릉과 도원을 합쳐서 무릉도원이라 이름을 지었다.


무릉도원.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있는 이상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어의 ‘유토피아'와 같은 뜻이다. 참 멋있는 이름이다. 옛날 물 좋고 농사가 잘 되어 살기 좋았던 마을을 의미하고 있다. 지금도 채소농사가 잘 되는 마을이다.

물 좋고 농사가 잘 되어 살기 좋았던 마을, 무릉도원. 지금도 채소농사가 잘 되는 마을이다.

폐교를 개조한 제주자연문화체험골을 지나간다. 한동안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활기를 잃어가던 체험골이 심기일전한 모습으로 활기가 넘쳐 보인다. 제주올레12코스 시작점을 이곳으로 옮겼다.

폐교를 개조한 제주자연문화체험골, 제주올레12코스 시작점을 이곳으로 옮겼다.

등나무 터널을 지나 마을로 들어간다. 마을 입구에 항아리, 맷돌, 절구통과 돌로 예쁘게 꾸며 놓은 집이 눈에 띈다. 마당에 접시꽃이 피어 있다. 연자방아에 올레12길을 안내하는 화살표를 그려놓는 친절까지 베푼 '그늘집 쉼터' 카페다. 인사말도 잊지 않는다.


영, 오십대강? 오잰허난, 복삭 속았수다.

(오셨습니까? 오시느라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그늘집 쉼터

무릉도원 학당이 맞은편에 있다. 제주어 교실이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는 말을 하면서 이를 제주 사투리라 하면 이곳 사람들은 정중히 정정한다. 제주어라고. 정규 교육과정에서도 제주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한 달 만에 제주 방문하여 무릉외갓집과 무릉도원 학당을 찾았다. 제주도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농촌마을을 재생시키려는 마을 주민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무릉도원 학당의 제주어 교실, 주민들은 제주도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지평선이 보이는 더없이 넓은 들판,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군데군데 농업용수를 저장하는 물탱크가 높이 세워져 있다.

비닐하우스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가도 가도 황토색 밭이 이어지는 농로.

걷기에 고단한 길이다.

농지 곳곳에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서 있다.

간간히 들판에 묘지가 있는 것이 변화라 할까.

평지교회를 지나 신도 생태연못에 도착하기까지 사람을 볼 수 없다.

넓은 밭과 태양광발전 패널, 공동묘지가 단조롭게 반복되니 긴장이 풀린다.



'녹남봉 아저씨'가 가꾼 굼부리


녹남봉을 오른다. 호박밭과 멀구슬나무가 오름 입구에서 올레꾼을 반기며, 무미건조하던 12코스에 변화를 예고한다. 제주어로 나무를 '낭' 또는 '남'이라 한다. 예전에 녹나무(농낭, 녹남)가 많아서 녹남봉이다

녹남봉은 해발 100.4m, 비고 50m인 작은 오름이다. 정상부에 움푹 파인 둥근 굼부리가 있다. 굼부리를 마을 사람들은 '가매창'이라고 부른다.


굼부리 안쪽에 꽃밭을 조성해 놓았다. 함박꽃이 수줍은 듯 피어 있는 꽃밭이 있다. 그 밭 언저리에 홍자색의 자란이 피어 있고, 올레 리본과 색깔이 비슷한 벤치가 몇 개 놓여 있다. 벤치에 앉아 꽃을 감상한다. 정년퇴직한 분이 이곳을 가꾸고 있어 '녹남봉 아저씨'라 부른다고 산책 나온 동네 어르신이 귀띔한다.

녹남봉 전망대에 서니 산방산ㆍ군산ㆍ모슬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굼부리 둘레길을 한 바퀴 돈다. 둘레길에 엉겅퀴가 무리 지어 자라고 있다. 섬꽃마리속의 한해살이풀, 중국물망초도 꽃말처럼 '나를 잊지 마세요'하듯이 파란 꽃을 뽐내고 있다.


전망대가 있어 올라가 본다. 세운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페인트 냄새가 난다.

수월봉이 가까이 다가온다. 한라산과 주변의 크고 작은 오름들이 형형색색의 너른 들판 뒤에 병풍 속 산수화 같이 둘러서 있다. 산방산, 군산, 모슬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옛 신도초등학교와 산경 도예


도원마을로 내려간다. 옛 신도초등학교로 들어간다. 해방 이듬해 마을 사람들이 부지를 마련해 신도공립국민학교로 개교한 신도초등학교다. 47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취학아동이 감소하여, 1998년 인근 무릉초등학교로 통합되어 문을 닫았다.

신도초등학교는 페교되고 도자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자리에 2001년 산경 도예가 문을 열고 도자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교실은 도자기 체험관이 되었다. 잔디가 깔린 널찍한 운동장에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강아지 한 마리가 조용한 교정을 거닐고 있다. 웬만한 초등학고 교정에는 한결같이 서 있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만 꼿꼿이 학교를 지키고 있다.



배움의 횃불을 오랫동안 밝혔던 자리임을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웁니다.


정문 옆에 자세를 낮추고 서 있는 '배움의 옛터' 비석이 폐교의 쓸쓸함을 대변하고 있다.


또 "바람의 아들, 양용은 골퍼 고향 방문 기념 식수"라는 표지석이 나무 앞을 지키고 있다. 타이거 우즈를 꺾고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한 프로골퍼 양용은 선수가 이 학교 출신이다. 양 선수는 골프 연습장의 볼보이로 일을 하면서 혼자서 어깨너머로 골프를 익힌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심어놓은 나무의 잎이 말라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새로운 도원, 신도마을


중간산 지역을 돌던 올레 리본은 신도 바닷가로 내려간다.


도구리(원담). 신도 바닷가에는 용암이 만든 크고 작은 네 개의 도구리가 있다. 도구리는 나무나 돌의 속을 둥그랗게 파낸 소나 돼지의 여물통을 말하는데 신도 바당 도구리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원담이다. 그 속에 파도에 쓸려 온 물고기와 문어들이 갇혀서 산다. 이를 어민들이 잡는다

신도 바닷가에는 용암이 만든 크고 작은 네 개의 도구리(원담)가 있다.

오른쪽으로 큰 도구리가 보인다. 오래전부터 이 신도2리 마을에 내려오는 도구리에 얽힌 전설을 적어 놓은 안내판과 순덕 상과 현수 상인 돌탑이 서 있다. 그 앞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대여섯 살 돼 보이는 오누이가 돌탑을 돌고 있다. 밥 먹는데 약간 거슬리기는 해도 아이들이라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순덕 상과 현수 상인 돌탑이 서 있고, 주변에 원담이 있다.

나중에 안내판을 읽어보니 사정이 이러했다.

순덕은 우여곡절 끝에 용왕의 아들 현수와 결혼을 한다. 순덕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남편 현수를 위해 남편의 고향처럼 복숭아나무를 잔뜩 심어 복사꽃이 만발한 동네를 만들었다. 고맙게 여긴 현수가 아내를 위해 물질하다 쉴 수 있는 장소로 도구리를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도구리를 '인연의 도구리'라 부르고, 용왕의 아들 현수를 만나러 온 신선들은 이곳을 새로운 도원이라 하여 '신도'라 했다고 전한다.


순덕이는 죽고 용왕의 아들 현수는 하늘로 올라갔지만 '신도'라는 마을 이름은 남아 있고, 오가는 연인들은 두 돌탑을 돌면서 소중한 인연을 기리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돌탑을 돌았구나.


바로 옆에 '하멜 일행 난파 희생자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신도2리 해안가와 용머리 해안은 하멜 일행의 표착지를 놓고 진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하멜 일행 난파 희생자 위령탑', 신도2리는 하멜 일행의 표착지를 놓고 진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제주 목사를 지낸 이익태가 제주에서 직무를 수행하면서 보고 들은 풍물이나 시문들을 엮은 책, 지영록을 만들었다. 최근 이익태의 후손이 지영록을 제주도에 기증하여 한글 번역판이 나오면서 표착지 문제가 공론화되었다.


이곳 사람들은 신도리 해변에 서 있는 '하멜 표류기에 대한 고찰'에서 하멜 표착지가 신도2리 해안이라고 주장한다.

계사년 7월 24일 서양국 만인 헤틀리크암센 등 64명이 함께 탄 배가 대정현 차귀진 밑의 대야수에서 부서졌다. 26명이 죽고 2명은 병들어 죽고 36명이 살았다. 검정, 흰색, 빨간색 세 가지 색이 섞인 옷을 입었다. / 지영록 137쪽 <서양국 표인기>, 이익태


1653년 음력 7월 24일은 양력으로 8월 16일로 하멜의 기록과 일치한다.

지영록에 기록된 '대야수'는 고산리 수월봉 남쪽 해안을 대물(큰 물)이라 부른다는 점에서 연관성이 있다.

신도2리에서 본 녹남봉과 한라산이 겹쳐 보이는 풍경은 하멜표류기에 나온 삽화와 일치한다.

신도2리에서 본 녹남봉과 한라산이 겹쳐 보이는 풍경은 하멜표류기에 나온 삽화와 일치하여 신빙성을 더 한다.


제주도 박물관은 지영록과 과거 문헌 고지도를 근거로 하멜 표착지가 고산리 한정동 해안에서 대정읍 신도리 해안일 가능성이 높다며 정식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올레12길(하)에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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