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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많은 수월봉

올레12(하), 고산에서 용수 절부암까지

by 정순동

해안을 따라 서귀포시 전역을 지나온 올레길은 앞내창을 건너서 한경면 고산리로 넘어간다. 제주시 권역으로 들어서는 첫 마을이다.




제주도는 크게 북부와 남부를 나누어, 위쪽은 제주시와 아래쪽은 서귀포시로 구분되어 있다. 제주시에는 서쪽부터 시작하여 한경면, 한림읍, 애월읍, 제주시, 조천읍, 구좌읍이 있다. 그리고 추자면과 우도면. 서귀포시는 서쪽부터 시작하여 대정읍, 안덕면, 서귀포시, 남원읍, 표선면, 성산읍이 차례대로 위치하고 있다.



수월봉을 오르다.


수월봉 기상대의 둥근 건물을 바라보면 밭 사이의 농로를 걷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마늘밭은 수확철이다. 마늘대를 베어서 밭고랑에 눕혀 놓았다. 한장동 마을회관을 지나간다.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를 보더니 느릿느릿 새소리가 들리는 나무 그늘로 들어간다. 할머니 두 분이 추담 밑에 씨마늘을 말리면서 대화를 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겠다.

한장동 마을의 강아지가 새소리 들리는 나무 그늘로 들어간다.

점점 고도가 높아진다.

들녘에는 보리가 익어가고 있어 바람에 황금물결처럼 일렁인다. 반대편 밭에는 감자꽃이 하얗게 피었다. 산기슭에는 띠가 바람에 흔들리며 공동묘지에 누워있는 망자에게 봄소식을 전한다.


국가 기후관측시설을 알리는 표지판이 초원 너머로는 출입을 통제한다. 올레길은 까마귀쪽나무 터널을 통과하여 수월봉으로 올라간다.

수월봉에서 본 차귀도


수월봉은 약 18,000년 전 뜨거운 마그마가 물을 만나 폭발적으로 분출하면서 만든 고리 모양으로 생긴 화산체 일부다. 수월봉에서 분출된 화산재는 기름진 토양이 되어 신석기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만들었다.


오름이라기보다는 뒷동산 같은 나지막한 오름이다. 해발 77m의 수월봉 정상에는 띠, 억새, 까마귀쪽나무, 해송 등이 서식하고 있다.

수월봉의 고산 기상대

고산 기상대.

수월봉은 바람이 많기로 유명한 제주도에서도 가장 센 바람이 부는 곳이다. 이곳에 우리나라 남서해안 최서단의 고산기상대가 있다. 제주도 서부지역의 기상을 관측한다. 고산기상대는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이나 장마전선이 반드시 거치는 '기상재해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널찍한 초원에 기다랗게 올라간 건물, 고산기상대의 커다란 구형 조형물이 이색적이다.


앞으로 푸른 바다에 아름다운 모습의 차귀도가 떠 있다. 꼭대기에 하얀 등대가 아름다움을 더한다. 바위에도 산기슭에도 동굴이 나 있다. 멀리 용수포구와 풍력발전기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차귀도

수월봉 아래 바다 쪽으로 약 2km 이어지는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에는 물수리, 매, 바다직박구리, 흑로, 가마우지, 칼새 등이 살아가고 있다. 낭떠러지 아래 길, 엉알길로 올레는 이어진다.



주상절리와 녹고의 눈물


수월봉 해안절벽의 다양한 지층을 보며 걷는다. 수월봉의 또 다른 매력은 해안 풍경이다. 화산 지형의 원형이 잘 보존된 지층이 해안을 따라 길게 드러나 있다.


화산재와 화산탄이 뒤섞이며 쌓인 아름다운 수월봉 지질공원에도 일제는 갱도진지를 파 놓았다.

화산재 지층이 기왓장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고 다양한 크기의 화산암괴들이 박혀있다.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분출물이 쌓인 화산재 지층이 기왓장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고 다양한 크기의 화산암괴들이 박혀있다. 드러난 지층을 보면 화산활동이 얼마나 격렬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수성 화산체의 세계적인 연구지로 알려진 수월봉 일대는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다.


수월봉 해안에는 검은색 용암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이 용암은 수월봉 화산재 지층 아래에 놓여 있어, 용암이 먼저 흐르고 그다음에 화산재가 쌓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표면에는 육각형으로 갈라진 절리가 거북등 모양을 하고 있다.

거북등 절리

절리는 액체 상태인 뜨거운 용암이 고체 암석으로 굳어지면서 부피가 줄어들어 형성된 것이다.


녹고의 눈물. 벼랑 곳곳에 샘물이 솟아올라 흘러내린다. 이 약수터는 누이를 목 놓아 부르는 동생, 녹고의 눈물이라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이렇다.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려고 오갈피를 찾아 수월봉을 오르던 누이 수월이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다. 동생 녹고도 슬픔에 한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죽고 만다.'


그 후로 사람들은 수월봉 절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녹고의 눈물'이라 부르고 이 언덕을 수월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녹고의 눈물

실제로 이 녹고의 눈물은 해안절벽의 화산재 지층을 통과한 빗물이 화산재 지층 아래 고산층(진흙으로 된 불투수성 지층)을 통과하지 못하여 흘러나오는 것이다.



보는 위치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차귀도


차귀도의 유래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제주의 지맥과 수맥을 끊고 돌아가던 옛날 중국 호종단의 배를 수호신이 침몰시켜 돌아가는 것을 차단하였다 하여 차귀도란다.

차귀도는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대나무가 많아 대섬 또는 죽도로 불렸다. 1970년대 말까지 7세대가 살았으나 지금은 무인도다. 볼래기 동산 위에 있는 차귀도 등대는 고산리 주민들이 손수 만든 무인등대다.


바닷바람에 오징어를 말리고 있다. 반건조 오징어 한 마리를 산다. 이곳은 전설의 섬 이어도를 배경으로 한 김기덕 감독의 '이어도'를 촬영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당산봉의 생이기정 바당길


당산봉. 차귀도 포구에서 차도를 따라 마을을 지나 조금 걸으면 지질 탐방로는 또 다른 수성 화산체인 당산봉(148m)으로 이어진다. 당산봉은 원래 당오름이었다. 산기슭에 뱀을 신으로 모시는 신당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섬풍경 펜션 뒤로 올라 안부에 도착하면 옛 당산 봉수대 터를 알리는 표지석을 만난다. 그 삼거리에서 올레 12코스는 정상을 오르지 않고 서쪽 능선을 따라 용수 포구로 나아간다.



생이기정 바당길을 지나간다.

제주어로 생이는 새, 기정은 벼랑, 바당은 바다를 뜻한다. 생이기정 바당길은 새가 살고 있는 절벽 바닷길이다. 가마우지, 재갈매기, 갈매기들이 떼 지어 산다. 겨울철새의 낙원이라 할 수 있다. 푸른 바다 위에 역광의 차귀도가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깝게 다가온다.


차귀도 포구 앞바다의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 새소리가 햇살을 받아 번쩍이는 해수면과 어우러진다. 글과 사진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세찬 바닷바람을 보리밥나무 숲이 다소나마 막아준다.

생이기정 바당길에서 본 차귀도

용수포구

모퉁이를 돌면 용수 포구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형색색의 집들이 보인다. 서서히 돌고 있는 풍력발전기의 하얀 날개가 눈앞으로 점점 가까워진다.


풀밭 사이의 바당길에서 풀밭과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파도치는 검푸른 바다와 옅은 푸른색의 하늘을 3등분 해 본다.

형형색색의 집들과 서서히 도는 풍력발전기, 짙은 푸른 색의 바다와 옅은 푸른 색의 하늘, 그리고 검은 포구

용수포구 어귀에 방사탑이 세워져 있다. 마을의 허술한 방향으로 사악한 기운이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둥글게 쌓아 올린 돌탑이다. 답, 거욱대라고도 부르는 돌탑 위에 새의 부리 모양을 한 길쭉한 돌이 서쪽으로 열린 바다를 지켜보고 있다.



성 김대건 신부 표착지 기념 성당


한적한 해안 마을인 용수리 포구로 들어선다. 먼저 성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지 기념 성당의 높은 종탑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의 첫 신부인 성 김대건 신부와 제주 천주교회사를 엿볼 수 있는 기념관과 성당이 있다.

김대건 신부 표착 기념관

성 김대건 신부는 라파엘호를 타고 중국에서 천주교를 전파하러 우리나라에 오던 중 풍랑을 만난다. 제주도 용수리 해안에 표착하게 된 김대건 신부는 이곳에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미사와 성체성사를 하게 된다.


기념관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발자취와 천주교가 들어오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억압받던 당시 사용되었던 도구 등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제주 표착지 기념성당. 김대건 신부는 이곳에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미사와 성체성사를 하였다.

기념관 옆에는 작은 성당이 있다. 성당 건물은 성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은 중국 상해의 김가항 성당 모습을 재현해 지었다. 또 이 건물의 지붕은 파도와 라파엘호를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종탑은 용수포구를 상징하여 등대 모양이다.



절부암


용수리 포구에 구실잣밤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꽃에서 비릿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작은 규모의 난대식물대를 형성하여 후박나무,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이 자라고 있는 동산에 절부암이란 바위가 있다. 제단 오른쪽의 돌계단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구실잣밤나무 군락 속에 절부암이 감추어져 있다.

제주도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된 이 바위는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조난당한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통한 사연이 전해오는 곳이다.

당시 판관 신재우는 어부의 아내가 자결한 바위에 ‘절부암(節婦岩)’이라는 글귀를 새기고, 이들 부부를 합장하여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리고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제전을 마련하여 해마다 3월 5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여기가 올레 12코스의 종점이자 13코스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일주서로 용수 교차로까지 올레 13코스를 따라 20여 분 더 가서 오늘 일정을 마친다. 버스 타기가 쉽다. 용수리 충혼묘지 주차장에서 202번 버스를 탄다. 13코스를 여기서 시작할 생각이다. (2022.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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