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만약 납치를 당한다면?
일단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녹음을 킨다. 그리고 지금부터 하는 행동과 말은 전부 거짓임을 밝힌다. 후에 최대한 범인과 동화되어 동정심을 일으킨다거나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처럼 좋아하는 척을 해 당황하게 만든다. 물론 행하는 모든 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상관없다.
별다를 게 없던 날 메모장을 켰다. 단순한 공포심에서 비롯된 유서였다. 평소와 달랐던 걸 꼽자면 그날은 내가 혼자 집에 있었고 수리기사가 오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 수리기사의 평이 동네에서 좋지 않다는 걸 내가 알고 있다는 것, 수리기사는 내가 혼자 있는 걸 알고 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이 이야길 보고 누군가는 나를 과대망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나의 이런 정신은 누가 만들어냈을까. 사회 혹은 남자들이 만들어낸 병이 아닌가. 약물을 투여하면 괜찮아질까? 사회는 그대로인데 치료받는다고 정말 괜찮아지는 것이 맞는가?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보호받지 못하는 국가에서 남자들은 평생 상상조차 하지 않을 생각들을 여자들은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매일 여성을 상대로 한 혐오범죄 기사를 마주한다. 고층 건물에선 죄 없는 여성들이 떨어져 죽고 또 어디선가 타당치 못한 이유로 죽임을 당한다. 아마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디선가 폭력이 행해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친구, 연인, 가족으로 살아갔을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찾아보려 애쓰지 않고 뉴스만 틀어도 나오는데 어떻게 정신이 온전할 수 있을까.
심지어 그 흔한 영화 예매조차 편히 하질 못한다. 혼자 영화를 보기 위해 예매를 해놓으면 그 많은 빈 좌석 중에 내 옆자리를 예매한다. 자의식과잉이 아니라 흔한 일이다. 몰카 방지 카드를 들고 다니며 당신들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에어비앤비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자차를 뽑아도 괜히 해코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여자 티 나는 물건을 놓지 말라고 한다. 대체 어디까지, 얼마나 더 조심해야 하는 거지?
우리에게 은색 봉고차가,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가, 헤어질 때 조심하라는 인사가 어떤 의미인지 모를 것이다. 나는 최근에도 조심히 들어가라는 말을 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호신용품도 똑같다. 경중을 따지긴 그렇지만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면 자연스레 우리의 입에선 호신용품 이야기가 나온다. 나도 불안한 마음에 호신용으로 나온 작은 망치를 여러 개 구매해 지인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다. 하지만, 호신용품임에도 불구하고 정당방위로 인정되는 제품은 얼마 없다. 그래도 구매한다. 죽기보다 나은 선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