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이의 눈썰미
올해는 전담교사가 되었다.
전담교사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그 이유를 말하자면 복합적이다.
우선 아이들은 전담교사를 중요한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전담교사에게 잘못한 게 있어도 조금만 버티면 어차피 그 사람의 통제에서 벗어날 테니까 문열고 들어올 때의 태도가 담임선생님과 함께 있을 때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한마디로 영향력이 미미하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전담교사를 피한 건 아니고, 담임으로서 이렇게 저렇게 학급경영을 하는 것이 나로서는 재미가 있었고 생활지도를 하면서 쌓는 아이들과의 깊은 래포 형성에 대한 뿌듯함도 있었다. 그리고 동학년이라는 든든한 내 편을 가지게 되는 것도 큰 이유로 작용해서 지금까지는 담임을 선호해왔다.
하지만 작년 테러에 맞먹는 학부모와의 갈등으로인해 나는 많이 피폐해져 있었고 도저히 담임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전담교사가 되었다.
담임이 아닌 전담교사가 되니 처음에는 좀 어리둥절했다.
하나하나 보살필 내 아이가 없었다. 쉬는 시간이 진짜 쉬는 시간이었다. 담임교사에게는 쉬는 시간이 과장을 조금 보태어 폭탄이 터지는지 안터지는지 혹은 숨어있는 폭탄은 없는지 잘 살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기해야 하는 오히려 수업시간보다도 더 경계심을 품어야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전담교사는 쉬는 시간에 교실에 아이들이 없었다. 진정한 쉬는 시간이었다. 물론 아이들이 일찍 전담 수업실에 오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그냥 일찍 수업을 시작해버리면 된다.
당연히 1인1역이나 학급보상, 생활지도 문제, 학부모 상담 등도 없다. 그래서 정말 그냥 "수업"만 잘하면 된다. 행정업무를 배제할 수는 없으나 학생과 관련된 일에서는 정말 수업만 잘하면 되는 거다. 그래서 요즘 나는 학교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교재연구로 할애한다. 맡은 교과도 과학이기 때문에 사전실험에, 필요한 준비물 요청, 대체 실험 등 오로지 수업 만을 위해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하루는 6학년 통합탐구 단원을 가르치는데 자료 변환 차시를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실험관찰 교과서를 아주 싫어하는데, 이유는 오로지 실험관찰의 문항 흐름대로만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답답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책을 활용한다. 그 날도 지금까지 했던 실험 내용을 구체적인 표나 그래프로 변환하기 위해 나는 공책을 꺼내라고 했다. 다만 아이들이 그래프 직접 축을 그리는 것 까지는 40분 안에 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서 사전에 내가 그래프 축을 그려두고 라벨지에 복사해서 수업시간에는 아이들에게 라벨스티커를 나누어 주었다. 그래프 축은 그려져 있었고 아이들은 빈칸을 채우고 그래프 축에다가 값에 맞는 그래프를 그린 후 라벨스티커를 떼내어 공책에 붙이면 되어 간결했다. 나는 이런 간결한 수업 흐름을 아주 좋아한다. 그 때 전교에서 가장 유명한 금쪽이가 말했다.
"와. 이거 쌤이 직접 그린 거에요? 수업에 진심이시네요."
어이없게도 매번 모든 과학 시간에 나의 참을성을 시험하던 금쪽이가 나의 노력을 치하해주었다. 나는 인정하는 말에 굉장히 약한 편이어서인지 이 아이의 말이 나를 북돋아주었다.
"맞아. 선생님은 수업에 진심이야. 그러니까 열심히 해줘."
그 이후로도 금쪽이는 매 시간 내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시험을 하는 굉장한 탐구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아이 덕분에 내가 수업 준비에 더 진심이 된 것도 사실이라 너무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담임선생님을 응원하며 오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