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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성적인 회사원 May 29. 2023

[1] 회복의 시작

기존의 치료 방식으로는 어려운것 같아요. 사람을 소개해 드릴께요.

나는 서울 영등포역에서 무궁화 호를 타고 조치원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청주중앙공원이다.




청주 중앙공원은 Netflix 드라마 '더 글로리' 의 촬영지로 써 주인공 문동은이 복수를 위해 바둑을 배우는 곳이다. 더 글로리는 정말 감정이입을 많이 하면서 보았다. 왜냐하면 '학교폭력 피해자'인 문동은과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인 내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였다. 




나와 문동은은 둘 모두 힘이 강한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였고,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다. 그리고 가해자에게 복수를 성공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결말이 새로운 복수를 하는 방향인걸까?' 

'모든 복수를 끝 마친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녀가 더 이상 복수를 위한 삶이 아니라, 이제는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한 삶을 살아 갔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마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상처를 심하게 받은 사람이 일상으로 돌아가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현재에 영향을 주고 그대로 반영이 된다. 전문용어로는 '트라우마' 라고 한다. 




드라마 이야기를 하자면, 문동은은 학창시절에 고데기로 팔을 지져지는 괴롭힘을 당한적이 있다. 뜨거운것으로 자신의 살이 지져지는 고통을 겪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가 구워지거나 지져지는 소리를 들으면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실신을 하게 된다. 드라마에서는 삼겹살을 굽는 소리를 듣자 문동은이 실신을 해버린다.



이렇게 충격적인 고통은 내 안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어떤 스위치가 켜지게 되면 그 사건이 떠오르면서 공황이 온다. 몸을 움직일 수 없거나, 갑자기 손이 벌벌 떨린다거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른다거나 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나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잘 알고있다.




직장내 괴롭힘 신고 및, 정신적손해배상으로 인한 민사소송. 이 1년간의 긴 싸움은 나의 승리로 끝났다. '복수를 완성했으니 다 된거 아닌가?' 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복수에 대한 기쁨도 잠시였다. 나 역시 문동은 처럼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나는 언제 또 사람에게 상처를 받을까봐 두려워 인간관계를 어려워 하고 있다. 




법적으로 할수 있는 모든 복수를 다 하였지만, 여전히 당시 기억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당시의 기억은 나의 현재에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있다. 앞서 말한 트라우마 이다.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이 현재에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특히 인간관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트라우마로 인해 새로운 회사에서 적응이 매우 힘들었다. 왜냐하면 괴롭힘 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분 나쁜 농담을 한다거나 무례한 행동을 한다거나 하는 사람들은 어딜가나 존재 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의 행동은 나의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지금 말한 것은 큰 트라우마 에 대해서 말한 것이고, 작은 트라우마도 여럿 있다. 나도 모르게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이 스위치가 켜진다. 그리고 생각이 멈추게 된다. 뇌가 정지된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이러한 상황이니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리가 있나.



나는 아직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상담사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상담사는 1년간의 치료에도 여전히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는 나를 안타깝게 쳐다보더니 나에게 한 사람을 찾아가 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여기서 회사원은 나 이다.






상담사 : 회사원님.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합니다만, 솔직히 이야기 드리는게 좋을 것 같아서 말씀 드려요. 제가 더 이상 도와드릴 수 있는게 없는 것 같아요. 

회사원 : ......  


상담사 : 1년간의 치료에도 여전히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는 걸 보니, 기존의 치료 방식은 어려울것 같아요.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과 위로하는 방식으로는 회사원님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회사원 : 상담사님, 저는 치유가 안되는 것인가요?! 저는 이제 일상으로 못돌아가는 거에요??!! 계속 이 기억을 가지고 어렵게 살아가야 하나요...



상담사 : 음... 그런 것은 아니에요. 제가 진행한 것은 프로이트의 자유 연상법이라고 해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방식이에요. '내면의 상처받은 어린아이' 라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회사원 : 네, 선생님과 상담 받으면서 조금 공부해 봤어요. 내 기억속의 상처 받은 어린아이를 돌보고 다독여주면서, 회복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지요?


상담사 : 맞아요. 과거의 마음속 외롭고 불쌍한 아이에게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대화를 하고, 공감하고 위로해주면서, 현재의 나 자신을 치유 하는 방식 이에요. 대부분의 상담사가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식이에요.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어떻게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는지 알게되고,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방식이죠.

회사원 : 그렇군요. 사실 전문 상담사님이 하시는 말씀이라 열심히 노력을 하긴 했는데, 저는 사실 늘 불만이였어요.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을 끄집어 내어서 자세히 설명하는게 항상 너무 힘들었어요.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치유가 되나 싶기도 했어요. 



상담사 : 그랬었군요. 미안해요. 이 방법은 회사원님께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회사원 : 그렇군요... 그래도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 해주시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상담사 : 맞아요. 제가 다른 분을 추천해 드리려고 해요. 저를 도와주신분이기도 해요. 다만 그 분께 가면 많이 힘들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위로와 공감을 해주시는 분이 아니거든요.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듣거나, 하기 싫은 것을 요구 할 수도 있어요. 요즘 말로표현하면 '팩트폭격'을 하시는 분이에요. 괜찮겠어요?



회사원 : 그렇군요. 쓴소리를 하시는 분인가봐요.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해요. 싫은 소리를 들어도 회복에 도움이 된다면 좋다고 생각해요. 

상담사 : 잘 생각 했어요. 회사원님은 '회복탄력성'이 높은 것 같아요.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 말이에요. 그래서 이 분을 소개시켜드리는 것이에요. 강하게 말씀하시는 분이라, 몇몇 분들은 상처를 받고 돌아오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 분은 청주에 사셔요. 연락처는 여기 있어요. 미리 말해 놓을테니 다음주 쯤에 연락해 보세요.

회사원 : 그 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이렇게 대안도 마련해주시고.. 정말 감사해요. 꼭 회복해 볼께요.

상담사 : 그래요, 회사원님이라면 잘 할 수 있을 꺼에요!







프로이트는 정신치료에서 정말 많이 나오는 이름이다. 심리치료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분이 만든 치료 방식이 나에게 효과가 없다니...... '나는 평생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건가?' 라는 좌절감이 가장 첫번째 감정이였다. 




하지만 다행히 상담사가 새로운 사람을 소개 시켜주었다. 오늘은 상담사가 추천해준 사람을 만나러 '청주중앙공원' 으로 가고 있다. 통화를 했을 때 목소리는 지긋한 나이의 노인이였다. 할아버지라고 해야할까나. 무슨 무협 영화속에서 나오는 재야의 은둔고수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신기했다.   




무협 영화의 한 장면 처럼 '나는 지금 스승님 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 지고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내 직장내 괴롭힘 이야기를 상담사에게 들어서 인가?? 일부러 학교폭력에 대한 드라마인 '더 글로리' 의 촬영 장소인 '청주중앙공원' 으로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버스 창가로 사람들이 보였다. 가족과 손을 꼬옥 잡고 도란도란 걷고 있는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행복해 보였다. 그 다음으로는 팔짱을 끼고 웃으며 걷고 있는 연인들이 보였다. 서로 친한 친구인 듯 4명이 같이 활기차게 걷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너무 부러웠다. 모두 내가 잃어 버린 것들이다. 가족과의 유대, 연인과의 사랑, 친구들과의 신뢰...  내가 스트레스로 망가지면서, 주변 인간관계 까지 같이 망가졌다. 나의 고통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이 되었고, 그들은 나를 떠나갔다. 




나는 '스승님'을 만나 내가 잃어 버린 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목적지로 향했다. 나중의 일이지만 여기서 미리 적어 놓고 가려 한다.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간다는 생각은 나의 잘못된 생각이였다. 나는 나에게 없던 것을 만들러 가고 있던 것이다.



타인에게 흔들리지 않는 나 자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가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말이다. 스승과의 만남, 그리고 가르침은 나만의 세계에 fall in 되어 가는 것을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이다. 물론 당시에는 이것을 몰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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