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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성적인 회사원 May 29. 2023

[2] 뭐 이런 상담사가 있지...

스승과의 첫 만남

청주중앙공원의 압각수 밑 밴치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나는 약속시간 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하였다. 




청주압각수는 약 900년 된 은행나무이다. 압각수라는 이름은 나뭇잎 혹은 그 뿌리의 모양이 오리발 모양에 가깝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리발이라니?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은행잎의 노란색과 오리발의 노란색이 비슷하게 생기긴 한 것 같다. 높이는 30m, 밑둘레는 8.6m이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나무를 실제로 보니 그 크기에 압도당하였다. 그렇게 나무를 구경하는 와중에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검정 베레모에 위아래로 등산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상담사가 소개해준 그 분인것 같다. 아직 약속시간 30분 전인데, 이렇게 일찍 오실 줄을 몰랐다. 




순간 내가 일찍 도착해서 정말 다행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을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가? 그래도 30분 일찍 오시다니, 나나 이 할아버지나 시간 관념이 남다르다.




등산복을 입고 등장하신 이 분은, 내가 상상한 멋진 분위기의 스승님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등산화에 등산복이라 지하철에서 늘 볼 수 있는 모습이였다. 이러한 속 마음을 숨기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나는 약속 시간에 일찍 오는 사람을 정말 좋아한다. 존중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회사원 : 안녕하세요~

스승님 : 어~ 그래그래, 너구나 전화한 애가



회사원 : 네 맞아요. 아직 약속시간 한참 남았는데, 일찍 오셨네요.

스승님 : 너야 말로 일찍 왔잖아. 원래 이렇게 약속시간에 일찍 오나?? 



회사원 : 네 맞아요. 보통 최소 20분 전에는 도착해서 기다려요.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해서요.

스승님 : 요즘 애들 답지 않게 예의가 참 바르는구먼, 너 조금 마음에 들것 같다.

회사원 : 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인지 어떻게 아셨나요?

스승님 : 딱 봐도 우울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는데 어떻게 못 알아봐! 나 우울해요~ 하고 광고를 하고 다니는구만. 멀리서 봐도 알아 볼수 있었어 

회사원 : 하하핫...




내가 평소에도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고 다니나보다. 다른 사람에게 직접 들은 건 처음이다. 그런데 그럴 수 밖에 없다. 요즘은 사람을 경계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눈치를 더 많이 보기도 한다. 그리고 무언가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축 처진 어깨와 힘 없는 눈빛으로 다닌다.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에요~' 라고 말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이렇게 다니면 일단 사람들이 나를 조금 더 잘대해 주는 느낌이 든다.



할아버지는 '하하핫' 하고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나를 잠시 지긋이 보더니 한 말씀 하셨다.



스승님 : 평소에도 그렇게 실실 웃고 다니냐?

회사원 : 네 가급적 웃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스승님 : ... 너 보니까 왜 우울한지 사이즈가 딱 나온다. 시간당 10만 원, 1주일에 1회. 우선 선금 10만 원

회사원 : 네?? 시간당 10만 원이면 너무 비싼 거 아닌가요??



시간당 10만원이라고?? 상담의 경우 정말 전문적이고, 멋있게 인테리어 된 곳에 받을 경우 시간당 10만원이다. 이렇게 상담실도 없고 길거리에서 하는데 시간당 10만원이라니!!! 그리고 소개 받아서 왔는데 돈 이야기 부터 하는게 말이 되나??



스승님 : 나 원래는 더 비싸. 네가 일찍 오고 공손하게 인사해서 싸게 해 주는 거야. 그리고 사람은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면 믿지를 않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만만하게 생각을 하지. 그래서 고개를 끄덕끄덕할 뿐 실행에 옮기지는 않아. '맞는 말 하네?' 하고  행동에 옮기지는 않지. 너도 경험이 있을걸?

회사원 : 저도 말이에요??

스승님 : 나에게 올 정도면 유튜브나 책들을 통해서 엄청 공부했을 것 같은데 맞지?

회사원 : 네 맞아요. 회복하기 위해서 정말 많은 공부들을 해왔어요.

스승님 : 유튜브나 책들에 있는 내용 중에 틀린 것은 없어. 네가 그중 하나라도 꾸준히 했다면 분명히 네가 겪고 있는 문제 상황은 더 나아졌을 거야. 그런데 너는 하지 않았어. 고개만 끄덕끄덕 거리고, 해야지~ 라는 마음만 먹고 실천하지는 않았지. 그러니 여기에 왔지. 왜 그런지 알아?




내가 배우고도 실천하지 않아서 우울한 거라는 갑작스러운 공격과 질문에 머리가 띵 하였다. 




상담사가 이분에게 가게 된다면 싫은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 말했는데 이제 알겠다. 상담사가 말한 쓴소리라는 게 이런 느낌의 쓴소리구나. 팩트 폭격을 정말 쉴 틈 없이 날린다. 이렇게 팩트폭격만 날리는 사람이 시간당 10만 원이라고? 그것도 싸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렇게 팩트폭격을 날리면 더욱더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책을 더 하게 된다. 오히려 반감을 사게 된다. 아마 많은 내담자들이 원망을 하며 도망을 갔으리라. 많은 내담자들이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이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상담사는 나를 믿고 이분을 소개해 주었다. 그래서 공손하게 답변을 하였다.



회사원 : 저도 해보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되었어요.  

스승님 : 어떤 노력을 해보았는데?

회사원 : 음... 책이나 유튜브에서는 무례한 사람에게 역으로 질문을 하거나, 자기감정을 또박또박 말하라고 하더군요. 근데 이미 위축되어 있어서 말을 꺼내지 못하였어요. 과거에 괴롭힘 당하던 기억 때문에 위축이 돼요. 극복하고 싶은데 못하는 이 답답한 심정을 선생님은 모를 거예요.

스승님 : 그것은 네가 문제 상황을 해결할 의지가 없고, 용기가 없어서 그런 거야

회사원 : ......




순간 욕이 나갈 뻔했다. 용기가 없다고?? 당신이 나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인가? 나의 고통을 알기나 하나? 내가 겪었던 일들을 알기나 하나? 당신이 대체 뭐길래 나에 대해 이렇게 함부로 이야기를 하는 건가?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라서 말을 하려던 순간, 스승님이 그다음을 이어서 이야기하였다.




스승님 : 라고 아들러를 배운 상담사는 너에게 이야기하겠지,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 들어보았지? 그 책 에서 말하는 게 이런 거야. 용기를 내라고. 이미 정신적으로 밑바닥에 있는 사람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이미 이 책도 읽어봤을 것 같은데??




아들러? 알프레드 아들러...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은 정말 좋아하는 책이다. 지금도 내 책장에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꽂혀 있다. 그리고 아들러는 정신 상담을 공부하다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 중 하나이다. 하나는 프로이트와 융,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들러이다. 




회사원 : 들어보았습니다. 유명한 책이잖아요. 저도 감명 깊게 읽었어요. 현재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나와 타인을 구분하고,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에요. 내가 원하는 행동이 타인에게 미움을 살 수도 있지만, 그 '미움받을 용기'를 갖추라는 내용이에요. 남의 눈치를 보느라, 남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미루고, 하지 않았던 현재 나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라는 책이에요. 정말 좋은 책이었습니다.

스승님 : 맞아! 잘 알고 있구먼. 책 열심히 읽고, 공부도 많이 했네. 근데 왜 이것은 실천 안 했어?

회사원 : 용기를 내기가 어렵더라고요. 이 전에 살아오던 방식을 바꾸기도 어려웠고, 용기를 내기 전에 위축부터 되었어요. 저는 안되나 봐요.




내가 책의 내용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으시고 스승님은 놀란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아마 자세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은 못하신 것 같다. 그리고 나서  한참을 고민하더니 말을 이어나가셨다.




스승님 : 공부를 많이 했네. 그렇다면 이야기가 쉽지. 너에게는 프로이트의 내면의 어린아이도, 아들러의 미움받을 용기도 적용이 되지 않아.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용되지 않아. 그냥 내면의 어린아이 쓰담쓰담하고, 나는 용기 있다고 스스로 위안 삼고, 괜찮은 척 살아가고 있는 거지. 그러니 나한테 배워야 해. 그러니까 돈 내! 

회사원 : 프로이트와 아들러를 부정하시다니요... 선생님은 저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실 건데요?

스승님 : 부정하는 건 아니야. 너같이 끝자락에 온 사람에게는 적용이 안된다는 거지 내가 가르치려는 건 Fal in 이야. 한국말로 하면 빠지다는 뜻이고.

회사원 : Fall in 이라고요?? 그게 뭔데요??

스승님 : 어허!! 어디서 알맹이만 쏙 빼어먹으려고 하나? 돈 낼 거야 안 낼 거야?




뭔가 사기꾼 느낌이 슬슬 난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본인이 옳다고 주장하기. 처음 보는 용어로 혼란을 주기. 그럴싸하게 이야기하기, 원래는 더 비싼데 싸게 준다는 말까지, 사기꾼들이 하는 전형적인 수법 아닌가? 




하지만 나와 1년 동안 지낸 상담사가 내게 거짓말을 할리는 없다. 상담사가 거짓말을 했을 거면 나를 데리고 2년이든 3년이든 상담 치료를 했을 것이다. 나를 이 사람에게 보낸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다. 10만원이야 다시 벌면 된다. 나는 민사소송하느라 550만원도 사용하지 않았는가. 일단 돈을 드리고 이야기를 더 이어가 보자. 아 잠시만 질문 하나만 해보자. 만나면 꼭 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



회사원 : 잠시만요. 돈은 바로 붙일께요. 그런데 궁금한게 하나 있어요.

스승님: 뭔데??

회사원 : 프로이트의 상담방식의 경우 이 전 상담사 분이 저에게 맞지 않는다고 말한적이 있어요. 모든 상담사가 이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저에게 맞지 않는 이유가 너무나도 궁금했어요. 스승님이 방금 프로이트와 아들러를 언급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



스승님 : 프로이트는 '과거'를 주로 말하고, 아들러는 '지금' 을 주로 말해. 나는 개인적으로 아들러의 '지금'을 더 좋아하는데, 너가 프로이트를 물어보았으니 대답해보마. 너는 지금 겪고 있는 문제는 '과거'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맞아??

회사원 : 네 맞아요.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영향을 주고 있어요. 사람들을 더 이상 믿기가 어렵고, 인간관계가 너무 어려워요.



스승님 : 예전 기억을 떠올리고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의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면 현재가 나아진다는게 프로이트 방식을 선택하는 상담사들의 주장이지. 틀린말은 아니야. 그런데 이 과정을 밟다보면 무조건 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것이 있어. 모든 사람이 직면하게 되지

회사원 : 모든 사람이요??



스승님 : 그래. 이 과정을 밟아가다보면 반드시 부모 탓을 하게 된다. 그리고 부모에게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사과 받길 원해. 사과 받으면 본인이 괜찮아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거지. 나의 내면의 어린아이에게 공감과 위로를 하기 때문에 말이야. 사과를 받고 나면 부모와의 관계도 더 돈독해지고, 일상도 평화로워 질 것이라고 믿어.

회사원 : 맞는 말 아닌가요?? 제가 읽은 책에서도 그렇게 적혀 있었어요. 



스승님 : 부모와 자식 모두 마음이나 감정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다면 맞는 이야기지. 그리고 지금이야 오은영박사님이라는 분이 있어서 육아에 대해서 교육을 해주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게 없었어. 우울증이라는 단어도 최근에 나온 단어야. 그래서 현재 부모들은 이런 지식이 거의, 아니 아예 없어. 이런 사람들에게 사과를 요구하면 어떻게 될까??

회사원 : 반발할것 같은데요



스승님 : 거의 다 반발을 해. 혹시나 사과를 해도 부모는 부모대로 억울한 마음이 남아. 그리고 부모가 사과를 했다고 해보자. 그 사람이 겪고 있는 문제가 해결이 될까?? 아니야!! 현실은 그대로 있어. 여전히 고통받는 삶을 살고 있지. 이렇게 되면 내담자는 더욱 더 부모탓을 하게 되. 과거에 부모가 나를 이렇게 대한 것 때문에 내가 지금 이 모양 이꼴이다 하면서 말이야. 결국 부모도, 자식도 억울한 상황이 펼쳐지게 되. 

회사원 : 듣고보니 그럴 것 같아요. 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한적이 있으니까요.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 부모님을 원망했었어요..




스승님 : 수 많은 내담자들이 이 억울한 과정을 거쳐. 내면의 어린아이 이야기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야. 결과적으로 남 탓을 하게 되는 거지. 이게 잘 이루어졌다고 해도 현실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어.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아. 나는 이게 마음에 들지 않아. 너의 질문에 대해 설명이 되었나??

회사원 : 네 이해 했어요.



스승님 : 그럼 돈내



하핫 나는 다시 멋적게 웃었다. 결국은 돈이다. 돈을 밝히는 분인가? 그런데 설명하는 걸 들어보면 엄청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틀린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


 

회사원 : 계좌번호 주세요. 선금 10만 원 붙 일게요.

스승님 : 자 여기 있다. 어서 붙여. 시간은 지금도 가고 있어




뭐 이런 상담사가 다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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