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 오게 된 이유, 남편과의 스토리
지금에서야 돌아보고 느끼는 거지만, 인연은 정말 따로 있었던 것일까.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나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던 시기는 모순적이게도 그 전의 짧았던 첫 국제 장거리 연애가 끝나고 몇 달이 채 되지 않은 시기였다. 다시는 장거리 연애도, 국제 연애도 아니 연애 자체를 아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 순간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더 먼 거리를 사이에 둔 새로운 연애가 시작되었다.
한국과 미국 17시간의 시차를 두고 시작된 우리의 관계는 몇 년의 시간을 지나 둘 모두 태국 방콕으로의 이민, 그리고 결혼으로 이어졌고 지금은 같은 도시에서 두 살이 되어가는 딸아이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결말이 되었다.
사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 같은 특별하지만 쉽지만은 않았던 우리 만남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첫 만남
뮤지션, 아니 매지션
여느 주말처럼 다를 것 없던 주말, 친한 오빠가 소고기를 사준다고 해서 나갔던 저녁자리에서 서울로 짧은 출장을 왔던 남편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저녁은 친한 오빠의 미국대학교 동창들과 서울 친구들이 같이 모인 자리였다. 남편의 첫인상은 약간 한국인 같기도 했지만 외국인 느낌도 있고 좀 헷갈리는 면이 있었다. 혹시라도 교포라면 실례일까 봐 한국어로 먼저 말을 건넸지만, 못 알아듣는 걸 보고 외국인이구나 싶었다.
어떤 외국인을 가장 처음 만났을 때 나오는 질문 세 가지. 남편과 가장 처음 한 대화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그리고 ‘어떤 일을 하시나요?’와 같은 너무나 정석적인 영어 질문으로 시작했다. 이름과 출신까지는 문제가 아니었는데 직업을 묻는 질문에서 그만 대화의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우리의 첫 대화는 내가 직업을 물은 후 무슨 종류의 음악을 하냐고 물어봤다가, 남편이 실소하며 뮤직 아니고 매직이라고 매지션이 직업이라고 답하는 걸로 끝을 맺었다. 다시 똑같은 상황이 되더라도 나는 또 똑같이 뮤지션으로 알아들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난생처음 듣는 직업에 정말 마술로 돈을 버는 거냐고 초면에 묻기까지 했던 나.
남편과의 연애를 시작한 이후로 친구들이 남자친구의 직업을 물어볼 때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정말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곧이어 이어지는 몇 가지의 공통된 질문들. '너도 마술 할 수 있어?', '마술 때문에 반해서 사귄 거 아니야?', '마술사가 직업이라고?' 등등 하도 같은 질문을 듣다 보니 나중엔 마술 트릭을 하나라도 배워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아직도 마술트릭은 하나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마술에 홀려서 사귄 건 아니라고 꼭 언급하고 싶다.
연애의 시작,
허니문 페이즈 Honeymoon Phase
썸 또는 연애 초반의 설레는 감정들을 느끼는 시기인 허니문 페이즈. 모든 연애가 그렇듯 우리의 장거리 연애도 허니문 페이즈로 시작했다. 패트릭의 서울 출장 이후로 그냥 새로운 친구사이로 연락을 주고받던 우리는, 매일 조금씩 더 길게 연락을 지속해 갔다. 내가 잘못 눌렀던 어느 날의 보이스콜을 기점으로 자연스럽게 메시지는 통화로 이어졌고 통화는 영상통화로 이어졌다.
서울과 라스베이거스의 시차 17간을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하루 종일, 일 하다가 시간이 나는 대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둘 다 각자의 일을 하는 프리랜서였기에 가능했던 걸 수도 있지만, 하루에 5-6시간은 기본으로 한 번은 패트릭이 브라질로 출장을 가던 길 비행기 와이파이로 6시간 동안 통화를 하기도 했을 정도로 둘 다 단단히 서로에게 빠져있었던 것 같다.
장거리 연애의 허니문 페이즈의 단 한 가지 수단은 연락뿐이기에 하루 종일 배터리가 닳도록 연락, 연락 또 연락인 일상이었다. 다시 둘이 만날 날이 언제일지 전혀 상상도 못 했던 그때의 우리는 이렇게 온라인 채팅 친구 같은 사이로 허니문 페이즈를 맞이했다.
마술사 남편을 둔다는 것
처음엔 특별하고 신기했던 마술이, 나에게도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여행을 다니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술사들의 공연을 보고, 눈앞에서 남편 친구들의 트릭을 구경할 일이 많아 이제는 마술사들과 함께 있어도 어느 정도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의 직업은 마술사지만, 일상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평범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술 영상을 보고, 잠을 자기 전까지도 마술사 친구들과 아이디어를 얘기하고 새로운 마술 트릭을 고민하는 부분은 같이 살고 나서 보게 된 모습이라, 처음엔 자기 일을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나 놀랍기도 했지만 남편에게 마술은 단순한 직업이나 취미를 넘어 삶의 중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무대에서는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재미와 감동을 주는 매우 외향적인 이미지이지만, 남편의 평소 성격은 말이 없고 조용한 편이다. 무대 위와 평소의 모습을 둘 다 본 친구들은, 180도 다른 성격에 매우 놀라지만 나에겐 이 두 모습 모두 남편의 모습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음에 어디서 언제 만날 지를 항상 고민했던 둘이, 이제는 같은 도시에서 결혼을 하고 일을 같이 하고 또 아기를 키우고 오늘 저녁엔 뭘 먹을지를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던 두 명이 인연이 되어 결혼을 하고 가족이 된 지금의 일상이 우리 둘에게 일어난 진짜 마술 같은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