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거주자가 되기란, 서류준비부터 해외생활 테스트
여행자에서 거주자로의 여정.
그 나라의 이민국을 거쳐,
장기 체류를 할 수 있는 신분을
받아야만 마침내 진짜 거주자가 된다.
태국인 남편을 둔 나에게는
배우자 비자라는 선택지가 있었다.
한국에서 국제결혼을 했던
몇몇 친구들을 봐왔기에 배우자가 있으면
한쪽의 나라에 정착하는 게 쉬울 거라 믿었다.
그런데 웬걸,
결혼 서류를 준비하는 것부터
모든 게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약혼식은 국제결혼이라는 문턱 앞에서
감정적으로 거치는 테스트였다고 한다면,
혼인신고와 태국 비자는 통과해야만 하는
좀 더 공식적인 결혼 시험 같았다.
필요한 서류들을 번역하고 공증받아서
준비를 하는 데 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가 많은 관계로
한국여권 소지자는 혼인신고가 불가합니다"
증인이 되어주실 시부모님과
하루 종일 시간을 버리고
세 번째 들린 구청에서까지
혼인신고 인터뷰 거절을 당한 그때,
더 이상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없었다.
그동안 쌓였던 태국생활의 스트레스,
행정 절차를 준비하며 쌓인 답답함과 화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고 시부모님 앞에서
남편에게 목청을 높여 화를 내버렸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해?"
남편도 역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온 스트레스가 컸는지
나에게 역으로 화를 냈고
그 뒤로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십여분 간의 큰 다툼 끝,
시어머니의 만류로 혼인신고도
하지 못한 채 부부싸움만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시어머니가 수소문한 끝에
방콕의 한 구청에서 인터뷰를 잡아줬고
태국에서의 혼인 신고식을 제대로 치렀다.
한국 대사관에서 한국 혼인신고까지
무사히 마쳤고 드디어 태국 거주비자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준비했다.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던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역시나 태국 이민국에서
한국인이라고 비자 인터뷰를 잡아줄 수 없다고 했다.
태국의 관행적인 비용을 내고서야,
우리는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인터뷰를 가까스로 잡았다.
그리고 대망의 이민국 방문과 인터뷰 날.
지금 생각해도 이때만큼의 결혼위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약속 시간을 잡고 가서도
반나절을 기다려서야 이민국 경찰을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각종 서류 뭉치와 수십 개의 도장들,
펜으로 가득한 어지러운 이민국 책상뒤로
나이가 지긋하신 중년의 여성분이
심각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진짜 결혼한 관계가 맞나요?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얘기해 보세요."
데이트하던 시절의 사진들과 진술서,
한국과 태국 양국의 혼인서류 그리고
양가 가족들이 찍힌 약혼식 서류까지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보고도
이민국 경찰은 계속해서 우리의 결혼을
의심하며 질문을 퍼부었다.
"아기는 없나요? 임신 중이라면 결혼을 증명하기 더 쉬울 텐데."
"네...? 그게 무슨..."
남편이 더 말을 이어가려는 나를 멈추었다.
선 넘는 질문과 말에 속이 부글부글 끓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지만 모든 힘을 다해
끝까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남편은 태국에서 지냈던 기간은 짧지만,
태국어와 영어가 가능해서 최대한
태국어로 이민국 경찰의 비위를
맞춰주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한 시간여의 인터뷰가 끝나고,
차에 올라타 운전대를 잡았다.
"결혼을 증명하려면 임신이라도 하라는 말이야? 이 모든 서류를 내고도 우리가 결혼하는 걸 의심한다고? 태국 진짜 이해 안 돼. 왜 내가 이런 불법 결혼 사기꾼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거냐고!!!"
남편은 화를 내는 내 말을 듣고도,
태국 절차니까 어쩔 수 있겠냐고 네가
이해하라는 식의 반응이었다.
여권도 마침 있겠다,
그냥 이대로 공항까지 가서
태국 생활이든 결혼이든 뭐든
다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남편과 나는 결혼할 운명이었던 건가,
방콕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없던
이 시절 나는 가고 싶어도
한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지인을 대동해 이민국에서
진짜 결혼이 맞는지 한 번 더
증인 인터뷰가 있었고,
집으로 실태조사를 나와
화장실과 옷장까지 열어보며
철저한 이민국 심사가 끝이 났다.
어쩔 수 없이 비자를 받아야만 했고,
그 과정 속 몇 번의 더 큰 부부싸움을 지나
가까스로 태국 거주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영주권이라는 개념이 따로 없고,
태국 배우자를 두어도 1년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태국.
태국에서 비자를 한다는 것은
결혼 시험을 일 년에 한 번 치르는 느낌이다.
모든 게 아직도 아날로그인 이곳에서
매년 같은 서류로 같은 비자를 연장해도
이민국 직원을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추가로 요구하는 서류가 꼭 생긴다.
한 번은 이민국에서 화가 가득한 내 표정을 보고
줄 서있던 미국인 할아버지가
30년 전엔 서류가 200장도 넘었는데,
지금은 30-40장이면 되니 참 편리해졌다며
자기처럼 웃으며 비자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나를 격려해 주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내일 있을 비자 연장을 위해
서류를 준비하는 중이다.
미국 할아버지처럼 30년의 테스트를
거치면 나도 웃으며 비자 연장을
하러 가는 날이 올까, 그때까지
태국에 살 수는 있을까 모든 게
아직도 불확실하다.
이번은 6번째 비자,
그리고 난 오늘도 방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