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생긴 새로운 가족
익지 않은 초록색 망고는 단단하고 신맛이 난다.
시간이 지나 망고가 익어갈수록,
속은 부드러워지고 단맛을 가득 품은 노란 망고가 된다.
집을 구하고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만
잠시 지내려 했던 시댁에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6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가족과의 생활 속
불편하고 낯선, 딱딱한 감정을 지나
마음의 문을 열고
익은 망고처럼 부드러워져 갔다.
시부모님께 잘 보이려는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시댁과 진짜
한 가족이 되었다고 느낀 시점은
처음으로 시부모님 앞에서 남편과
크게 싸우고 나서부터였다.
20년 넘게 미국에서 지내던 남편 역시
부모님과 같이 한 집에서 사는 건 새로운 변화였다.
시어머니의 기상시간은 오전 5시.
남편도 나도 아침형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고
출근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
일찍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었다.
오전 5시는 노력으로도 불가능한 시간이었고
나는 오전 7시 반쯤 일어나
시어머니가 아침식사를 준비하시면
상에 그릇을 놓고 상차림을 도와드렸다.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를 하고,
바로 방으로 올라와 조금 숨을 돌렸다.
나는 태국어를 하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시부모님이 영어를 하실 수 있어서
간단히 일상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밥 먹는 동안의 침묵이 어색했고,
같이 거실에서 시간을 보낼 때에는
무언가 대화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크게 짓눌러왔다.
방에만 계속 들어가 있으면
그것도 눈치가 보였고
그렇다고 거실에서 내 집처럼
편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락다운으로 저녁 통금 10시,
시장과 슈퍼마켓만 문을 여는 상황 속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물리적으로 길었다.
사실 아침을 챙겨 먹지 않는 나지만,
초반엔 시부모님의 생활패턴에 맞춰 모든 걸
같이하고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가끔 배달음식을 시켜 먹긴 했지만,
시어머니가 해주시는 태국과 중국식 요리로
모든 끼니를 해결하는 게 일상이었다.
이렇게 한 달을 지내다 보니,
시부모님이 잘해주시는 것과는 별개로
향수병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고
시댁의 공간이 너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이유 없이 남편에게도 약간의 짜증 섞인
소리로 대화를 하는 일들도 잦아졌다.
남편 또한 20년의 세월의 벽을 두고
부모님과 오랜만에 같이 생활을 하며,
어린 아들처럼 대하는 부모님에게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남편 스스로도 자기 몫의
적응을 하느라 나의 미묘한 감정까지
헤아려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한 달 정도가 지나고 나니,
시부모님의 생활 패턴에 우리가 모두
맞추어 생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감을 조금은 내려놓고,
아침을 거르기도 했고 늦게 기상을 하기도 했다.
가족들은 시어머니의 음식을 주로 먹고,
나는 내가 만든 한식을 먹는 경우도 더 잦아졌다.
서로의 생활패턴을 알아가고
각자의 식성과 패턴에 따라 살아가니
이전보다는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었다.
시어머니에게 내가 좋아하는
태국음식을 조금씩 배워보기도 하면서
서로 대화할 거리가 자연스레 늘어났다.
남편은 미국에서의 운전에 익숙해서
도저히 방콕에서는 운전을 못하겠다고 포기했지만
나는 시어머니께 운전연수도 받고
둘의 관계가 조금은 가까워져 갔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
한국이 그립고 시댁살이가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결혼서류와 비자를 준비하던 중,
행정절차가 엉망인 이 나라의 현실을
처음으로 겪게 되면서 남편과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그 과정 속에 시부모님이 함께
동행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당시 태국은 락다운이 완화되며
코로나도 끝나가는 듯했는데
한국은 코로나 발병률이 굉장히 높은 상황이었다.
구청에서 한국 여권을 들고 온 나를 보고,
코로나 위험이 있으니 인터뷰를 못 잡아주겠다고 거절했다.
난 이곳에 이미 두세 달을 거주하고 있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미 관공서마다 말이 다르고
서류 준비로 심적으로 너무 지쳐있던 중에
마치 인종차별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결국 나의 화는 폭발해서,
왜 안되는지 따져 물으라 얘기했지만
남편은 따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 돌아가자고 했다.
구청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평소라면 참았을 남편도
나도 결국 폭발해서 대판 싸우게 되었다.
시어머니가 말려서 상황은 종료되었고
침묵이 감도는 차 안에서 모두 집으로 돌아왔다.
가시방석 같았던 하루가 지나고
정말 이상하게도 오히려 시댁이 편하게 느껴졌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서 나의
모든 장단점을 볼 수 있는 사이다.
근데 나의 단점을 숨기고
장점만 보이려 노력했던 그 부분이
지난 몇 달간 나를 숨 막히게 했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나서야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다니.
그 이후로도 몇 번 이런 상황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빠르게 상황을 해결하고
싸우다가도 다 같이 모여 앉아 밥을 먹는
진짜 가족이 되어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까이 한 집에서
서로의 장단점과 성격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던 경험 덕분에
특히 시어머니와 나의 관계가
편안하고 가족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봐도 쉽지 않았던
시댁살이었지만,
그 시간이 있던 것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