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준비한 약혼식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

by 이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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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으로의 이사를 결정하고 나서는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서울에서는 다음 해 5월, 방콕에서는 다음 해 9월로 결혼날짜를 잡아두고 예약을 했다.


서울에 있던 나의 첫 사무실을 정리하고
방콕으로 해외이삿짐을 막 부치고 있을 때쯤,
태국으로 출국이 2주 정도 남은 시점에
그때는 아직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우리 올해가 가기 전에 결혼식을 올려야 할 것 같다고 말이다.
이모가 점을 보러 갔는데,
음력으로 2019년에 식을 올려야만 한다고 했다는 거다.


한국과 외국에 사는 내 친구들은 내 결혼식 계획을 듣고
벌써부터 방콕 결혼식에 참석할 생각으로 들떠있었고,
한국에서도 한 달을 앞두고 식장을 새로 구하고
청첩장을 돌리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던 나로서도
시어머니도 아닌 시댁 어른분의 점괘로 인해
결혼식을 당긴다는 건 정말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도 거의 싸우지 않았던 우리는
이 문제를 두고 일주일간의 언쟁을 이어가야 했다.


하지만 시어머니께서도 안 좋은 얘기를 들으시니
그래도 좋은 날짜에 맞춰하기를 원하셨고
결국 우리는 결혼 날짜는 그대로 두고

2부로 구성된 태국 결혼식 중

가족들과 가장 친한 사람들만 모아두고 하는 1부를
약혼식으로 따로 떼어서 올리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태국사람들도
이렇게 1,2부를 다른 날짜로 나눠하는 게 보편적인 거였다.


다이어트는 시작도 안 했을뿐더러,
이미 두 번의 결혼식을 예정에 두고 약혼식을 올린다는 것이
너무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으나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나는 12월 중순에 들어가고
아직 음력으로는 19년도인 20년 1월 초에
직계가족과 태국 친척들, 방콕에 있는 가까운 친구들 몇몇을 불러
약혼식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시댁에 짐을 풀고 약혼식 준비부터 시작했다.


약혼식 장소, 드레스를 빌리는 것부터,
포토그래퍼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찾는 것까지
한국처럼 한 곳에서 다 가능한 게 아니라
몇 날 며칠 검색을 하고 시간을 물어봐서 가까스로 예약을 마쳤다.


우리의 계획과는 다르게 빠르게 진행되어 버린 일정 속에
프러포즈도 못 받고 결혼하는 건가 싶었는데

결혼식을 3일 앞두고 방콕 친구들과 함께 한 저녁자리에서

깜짝 프러포즈를 받았다.


정말 기대를 안 하고 있어서 정말 속아버렸던 나는,
어떻게 준비했는지 물어본다고 영상을 찍으면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반층을 굴러 떨어져 버렸다.


정말 다행히도 어디 한 군데 부러지진 않았으나
허리와 다리에 피멍이랑 타박상을 입었다.

들떠서 영상을 찍다가 소리를 지르며 넘어지는 영상은 휴대폰에 그대로 남아

나중에 친구들에게 웃으며 들려주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었다.


약혼식을 하기도 전 다사다난했던 나날들을 마치고
한국에서 온 가족들과 약혼식장에 도착해서
오늘만 잘 끝낼 수 있길 바랐던 나의 바람.


그 바람이 우습게도,
새벽 4시부터 식장에 도착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레스만 갈아입으면 되는 상황에서
드레스 업체에서 한 시간 반이 늦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화를 내고, 오토바이 택시라도 타고 오라는 말에
업체에서는 드레스가 상할까 봐 차로 가야 한다고
차가 막힌다고 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 아티스트는 먼저 일을 마치고 일어났고,
나는 이대로 그냥 티셔츠를 입고 약혼식을 가는 거구나 하고 있을 때
기적적으로 드레스가 도착했다.


포토그래퍼 역시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식장 입장을 30분 앞두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사진을 찍자고 하고 사진을 찍는데

내 표정은 감정을 누르려 노력해봐도 미소가 나오질 않았다.


프러포즈를 받은 날 계단에서 구르고,
약혼식 시작 전에 드레스는 오질 않고

이 모든 게 약혼식을 하지 말라는 사인처럼 느껴졌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모든 식순을 잘 마치고
태국문화에서는 식을 올린 진짜 부부가 되었다.




가족들이 돌아가고 2주 후,
중국에서는 이름도 없는 질병이 퍼진다 하였고
그렇게 코로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나중에야 웃으며 말하지만,
남편의 이모는 그 이후로 점을 더욱더 믿게 되셨고
우리는 이모 덕분에 일찍 올린 약혼식이 아니었으면
상견례나 양가 부모님의 만남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할 뻔했다.


한국과 태국의 결혼식은 미루고 미루다 취소를 했고,
언젠가 할 줄 알았던 결혼식은 현실에 묻혀 무기한 연장되었다.


모든 건 타이밍이었다.
태국으로의 이민도, 어쩔 수 없이 올린 약혼식도,
그리고 우리의 계획보다 일찍 시작된 부부의 삶까지.


지금 돌아보면 모든 게,
가장 알맞은 순간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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