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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Oct 03. 2022

걱정 가득 삼시세끼

2015.12. 계간 <니>41호. '삼시세끼'

첫아이를 임신하고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삼시세끼를 제대로 챙겨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난생처음 겪는 아이를 낳을 때의 고통도 근심이지만 그건 요가를 해서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고 하니 시작했었다. 그런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성, 그러다 보니 주말에는 하루 두 끼 먹기도 어려운 생활패턴을 바꿀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나처럼 게으른 아이로 키우지 않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정해진 식사시간에 밥을 먹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골고루 먹여야 하지만 당시 내가 차리던 밥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걱정이 태산 같았다. 




드디어 이유식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시작해야 할 때 냄비며 도마, 칼 등을 아이 전용으로 사고 이유식 책을 정독하고 나서 비장한 마음으로 임했던 기억이 난다. 요리에 서툰 나는 이유식 레시피를 따라 하면서 고기도 처음 썰어보고 다지기, 부치기 등의 방법을 익혔다. 이유식에는 간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평소에 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소금, 간장, 설탕 등을 잘 쓰지 않다 보니 다른 사람들 입에 맞는 음식 만들기가 어려웠다. 아기 음식에는 간을 하지 않아도 되니 걱정거리가 하나 줄고 몸에도 좋을 테니 걱정이 또 하나 줄었다. 여러 번 먹을 양을 하루 날 잡아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때가 되어 데워주기만 하면 되니 참 든든했다. 처음 걱정과 달리 편하게 하면서 이유식을 좀 오래 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 어른과 같은 음식을 먹을 때가 되자 다시 고민이 많아졌다. 아이 아빠는 평일에는 집에서 식사를 못하고 주말에만 시간을 낼 수 있다. 식구가 모여 먹을 때는 그래도 국이나 찌개도 끓이고 반찬도 했다. 하지만 나 혼자 먹을 때는 한 그릇으로 때우는 국밥이나 비빔밥 형식으로 먹고 마는 경우가 많아 아이 반찬이 참 신경 쓰였다. 야채를 꼭 먹여야겠다는 의무감에 브로콜리나 시금치 반찬도 해보았다. 이것저것 만들어 보니 골고루 먹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볶음밥과 그 볶음밥을 볶기 전 재료에 계란을 넣어 전을 부치는 밥전이었다. 이 음식들도 조금 많이 해놨다가 두고 먹일 수 있었다.


요즘은 밥때가 되었는데 비축해놓은 아이 밥이 없으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부엌에 가서 뭔가를 얼른 만들어서 배고프다고 하기 전에 줘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누워있을 때가 꽤 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밥상을 내어도 아이와 타이밍이 잘 안 맞는 경우가 생긴다. 음식을 만드는 중에 배고프다고 하면 다른 걸 간단하게 먹게 하는데 그러면 정작 밥은 안 먹기 때문이다. 아이 배고픈 시간을 내가 맞추지 못했다는 생각은 안 하고 기껏 차려놓은 밥상에 시큰둥해하면 엄마를 힘들게 한 거라고 짜증내거나 윽박지를 때도 있다. 나도 아이도 얼른 먹고 나면 ‘이번 한 끼도 넘어갔구나’ 안도한다.


물론 내 컨디션에 따라 더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몸이 아픈 건 아니더라도 마음에 힘이 빠져서 누워있고 싶을 때는 마지못해 아이 밥을 챙겨준다. 내가 입맛이 없고 요리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는 상황까지 되면 아이는 좋아하지만 식사라고는 말하기는 어려운 간식들을 먹게 한다. 그러고는 마음이 좋지 않다. 내가 엄마가 되기에 부적절한 사람인가 하는 자책감의 늪으로 빠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기운을 좀 차리면 뭔가 잘 차려줘야지 다짐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한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난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밥상과 내가 차릴 수 있는 밥상 사이에서 갈팡질팡 해왔다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남편의 야식습관과 아이의 단 과자, 사탕 선호는 없어져야 할 나쁜 습관으로 생각해왔음을, 그래서 내가 차리고 싶은 대로만 상을 차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끔 가족들에게 먹고 싶은 메뉴를 물어보고 만들기도 하지만 아주 드물다. 무조건 야채는 많이 넣고 기름과 소금, 설탕은 최소한으로 넣는다. 맛은 양념으로 내는 게 아니라 재료의 맛이라는 게 내 믿음이고 그런 음식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이런 건강한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맛보다는 몸에 좋게, 적어도 몸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몸에 좋고 안 좋은 재료들을 알려주는 음식 관련 기사들을 유심히 보고 참고했다. 햄이나 소시지는 몸에 해로운 성분들이 들어있으니 되도록 먹지 않되 먹어야 할 때는 끓는 물에 데쳐서 쓰고, 사과는 껍질째 먹는 게 좋지만 농약의 유해성을 고려하면 무농약 이상으로 먹어야 하고…. 이런 리스트들이 늘어갔다.


어렸을 때 나는 햄도 좋아했고 집에서 라면도 자주 먹었다. 그리고 빵도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아기 때 있던 태열의 영향인지 고3 때부터 아토피가 심해져 몸이 간지러웠다. 그래서 내가 음식을 해먹으면서부터는 인스턴트와 가공식품을 자제했고 첫아이 임신했을 때는 엄마가 먹는 음식으로 아이에게 아토피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라면과 빵도 끊고 김밥도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그렇게 뺄 건 빼고 먹는 밥은 맛은 덜해도 몸에는 좋다는 생각에 꼭꼭 씹어서 먹었고 맛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다. 맛이 없어도 꼭꼭 씹어 먹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또 먹어야 움직이고 일도 할 수 있으니 그렇게 먹고살았다. 언젠가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이 올려진 와플을 먹고 온몸이 행복했지만 금방 후회를 하기도 했다. 


맛보다는 건강한 음식을 먹는 생활이 바람직하고 우리 집에서라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내가 만든 반찬을 비웃는 듯 먹지 않았고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는 주방선생님이 만든 음식과 다르다고 했다. 가끔씩은 나 자신조차 스스로에게 금지했던 음식들을 마구마구 먹고 있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음식을 먹을 때는 (거의) 따지지 않는데 내가 만들려고 하면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만드는 일은 피곤하다는 생각이 깔려있고 내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제일 하기 어렵고 싫은 일이 돼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런저런 집착과 걱정에 맛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음식 맛은 물론이고 즐겁게 요리하는 맛, 함께 나눠먹으며 이야기하는 맛도 말이다. 내 생각이 옳고 아이의 입맛과 건강까지도 다 엄마가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했다.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 나도, 식탁에 앉은 다른 식구들도 맛있게 먹고 맛나게 살았으면 좋겠다.



♥ 정은선 _ 알트루사를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나만 보다가 주변 사람, 이웃,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얼마 전 둘째가 태어나 이제 세훈, 세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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