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기준, 공간 침범

by 이순미

폭력의 기준, 공간과 침범

나는 춤동작 중심 통합예술심리상담사이다. 유경숙과 박선영 두 교수님이 주관하는 <청소년을 위한 폭력예방교육 평화소통움직임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폭력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두 분이 이야기했다. “인간관계에서 뭔가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뭔가 개운치 않고 불편한데, 왜 불편한지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런 상황에 공간개념을 가져오면 관계에서 경험하는 찝찝한 기분을 설명할 수 있다. 내 공간에 이 사람이 침범했구나. 그래서, 내 기분이 좋지 않구나. 모든 폭력은 다른 사람의 공간을 그 사람의 동의나 허락 없이 침범할 때 일어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로써 나도 폭력의 기준을 명료하게 세울 수 있었다.


공간은 첫 번째로 물리적 공간이 있다. 물리적 공간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각자의 몸이다. 구타 등 신체적 폭행은 다른 사람의 몸 공간을 강제로 침범하여 물리적으로 가격한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몸 공간을 그 사람의 허락이나 동의 없이 성적으로 침범하는 일은 성추행과 성폭행이다.


이 공간개념으로 폭력을 이해하자 한 가지 영상이 떠올랐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미투운동이 일어날 때였다. 2018년 1월 어느 날 JTBC에 S검사가 출연해서 8년 전 동료 장례식장에서 본인이 느닷없이 당한 성추행건을 미투 했다. 2010년 10월 30일 한 장례식장이었다. S검사는 빈소 식당에 동료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당시 법무부 장관이 빈소를 찾았고, 장관 옆에는 선배 A 검사가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그 A검사가 S검사의 엉덩이를 만졌다. 은밀한 공간도 아니고, 사방이 트여있는 장소에서 그런 일을 당해, 모욕감과 수치심이 컸다.

하지만 S검사는 검찰 이미지 실추를 우려해, 간부들을 통해 대신 사과를 받기로 정리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사과는 없었다 한다. 오히려 갑자기 감사에서 지적을 받고, 검찰총장 경고를 받고, 결국 인사발령까지 당했다한다. S검사는 검찰 조직의 행태에 너무 분해서, 문제제기를 하려고 했었지만, 주변 반응은 이랬다한다.

[너 하나 XX 만드는 건 일도 아닐 거야. 지금 떠들면 널 더더욱 무능하고 문제 있는 검사로 만들 거라고. 어차피 이길 수 없어. 입 다물고 그냥 근무해라.]

결국 S검사는 그렇게 자포자기했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8년이 지난 오늘, 이 얘기를 다시 꺼낸 것인가? S검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에게 일어난 불의와 부당을 참고 견디는 것이 조직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드러내야만 이 조직이 발전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되었습니다.]

S검사는 그 사건 이후 충격으로 유산까지 했다고 기억한다.


나는 검찰조직에서 제기된 이 미투사건을 떠올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 집단이자 정의구현을 임무로 하는 검찰조직에서도 성추행이 일어났다? S검사는 그 일을 겪을 때 너무 당황스러워서 현실감이 없었다 한다. 만약, 내 몸을 나의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이 침범하는 것은 명백한 폭행이라는 기준이 있었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피하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좀 빠르게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주변인들도 바로 말리고 저지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의 허락이나 동의 없이 그 사람의 몸을 만지는 것은 그 사람 몸 공간의 침범이고 성폭력의 시작이라는 기준이 우리 사회에 없었구나.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도 폭력의 기준이 뚜렷하게 잡혀있지 않으면 대처가 쉽지 않겠구나.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 기준을 공유하지 않으면 폭력 피해자는 혼자서 오랜 시간 동안 고통받고 회복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쓰겠구나. S검사는 지성인이고 자존감이 높고 용기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고 본다. S검사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 또는 생존자들 중 어떤 이들은 트라우마에서 회복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이 일을 해야겠구나. 자라나는 아이들이 폭력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갖게끔 가르쳐야겠다. 기준을 가진 아이들은 자신을 더 잘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 어른들이 폭력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공유하면 좋겠다. 그러면, 서로를 대할 때에도 자라나는 아이들을 대할 때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자식이든 학생이든 더 존중하는 태도로 대하게 되지 않을까? 공간 침범이 폭력의 시작이라는 개념을 어른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아이들과 아울러 어른들과도 폭력예방교육으로 만나고 싶었다. 어른들도 즐겁게 놀면서 폭력예방법을 배우면 우리 사회의 폭력이 빨리 줄어들 것 같았다. 어른들과 만나려고 연구하다 찾은 길이 글쓰기다. 따라서 이 글은 부모님과 선생님께 드리는 초대장이다.


공간을 더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가 삼차원 물리적 공간이다. 집안팎 공간, 학교 교실, 복도, 거리, 빌딩, 공원, 도로, 차 등이다. 물리적 공간 중에 가장 기본인 각자의 몸공간은 따로 떼어놓고 보자. 여기에 더해 감정과 생각의 공간도 있다. 감정과 생각 공간을 침범하는 일을 통틀어 언어폭력으로 볼 수도 있다. 또 휴대폰이 일반화되면서 디지털 공간 폭력이 생겨났다. 디지털 공간에서 폭력은 일차적으로 언어폭력이면서 내용은 감정폭력일 수 있다. 또는 디지털 공간에서 채팅하다 만났는데 실제 공간에서 대면 미팅으로 이어진 후 성폭력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시간도 공간에 포함시켜야 할 것 같다.


우리 어른들이 자녀의 생각 공간을 존중하지 않는 예다. “나는 책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 아이가 자신의 꿈을 말했다. 부모가 “작가가 돼서 어떻게 먹고 산다고? 착실하게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경우 생각의 공간을 침범한 거라고 볼 수 있다. 아이가 “밥맛이 없어요” 하는데 어른이 “참, 호강에 겨운 소리다. 우리가 클 때는 먹을 게 없었다” 무심코 한 얘기지만, 어른으로부터 이런 말을 자꾸 듣다 보면 아이는 ‘내 감정은 틀렸나 보다’ 하고 자신의 체험과 기분을 신뢰하지 않게 되고, 표현할 때 주저하게 된다.

어른들 사이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다. 어느 날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과 식사하면서 대화하고 있었다. 얘기 중에 내가 “나는 떡국 끓일 때 파와 달걀 외에 집에 있는 각종 채소, 무, 당근, 미역 등을 그때그때 있는 대로 넣어 끓인다”라고 했다. 그중 한 지인이 “그게 떡국이야? 개죽이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랬다. 남이 떡국에 뭘 넣고 끓이든,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지? 하지만, 당시에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그냥 넘어갔다. 돌이켜 보니, 내 의견 내 생각의 공간을 침범당한 경우다. 그 이후 그 동기에게는 마음문이 닫혔다. 아, 이 사람과는 만나면 미소 지으며 인사만 나누고 지내자. “그게 떡국이야, 개죽이지”라는 말이 잊히지 않았다. 또 있다. 시부모님과 아파트 한 통로에 사는 주부 이야기다. 시어머니가 수시로 집에 와서 냉장고문을 열어보신다고 한다. 이 또한 물리적 공간의 침범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몸공간으로 돌아가자. 초등학교 6학년 반에서 학교폭력예방 수업을 하면서, 공간개념을 설명한 후 “여러분은 집에 자신만의 공간이 있나요?” 물었다. 한 여학생이 대답했다. “아니요, 없어요” “왜요, 내 방이 없나요?” “방은 있는데, 가족끼리 친해야 한다고 방문을 닫지 말라고 해요” 박선영교수가 말했다. “아이들이 집에서 침범당하면, 집 밖 다른 곳에 자기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다” 6학년이면 사춘기이라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해진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 아이방에 들어갈 때도 물어보는 게 좋다. 노크하지 않고 불쑥 아이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도 자녀의 공간 침범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몸의 침범을 많이 당한 사람은 자기 몸의 경계가 약해지고 따라서 다른 사람의 경계도 쉽게 침범할 수 있다. 구타당하거나 성폭력의 경우를 뜻한다.


침범 또는 폭력의 반대말은 존중이다. 공간은 내 공간, 네 공간, 함께 쓰는 공동공간으로 나눌 수 있는 데 이렇게 나누는 것은 공간을 잘 나눠 쓰기 위해서다. 존중을 연습하기 위해 나는 학교폭력예방법 교육을 할 때 다양한 공간놀이를 한다. 아이들이 자기만의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보면서 공간 감각을 기르고, 더 나아가 심리적인 공간 감각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

모든 갈등은 공간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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