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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물질의 방 Feb 21. 2023

"사랑해" 라는 말의 힘

불교에서는 유위법의 세계와 무위법의 세계로 세상을 표현한다. 유위법의 세계는 참과 거짓, 좋고 나쁨이 존재하는 상대적인 세상으로 좋은 것이 있으므로 나쁜 것이 생긴다고 본다.

법구경에서 "애착이 있기에 슬픔도 생긴다"라고 했고, 매일 같이 실망하는 중대장도 기대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실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유위법의 세상에 나타나는 것들은 모두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고, 공리적으로 나쁜 것도 내게 이익이 된다면 눈 딱 감고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이다.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기반 시설이지만, 혐오시설로 분류되는 발전소, 쓰레기 매립장, 교도소 등이 설치되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그것이 내가 사는 동네 옆이라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진다.

NIMBY(Not In My Back Yard)라 불리는 이런 사회현상은 유위법의 세상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가 본질적으로 가진 철학에서는 무위법의 세상을 전한다. 무위법의 세상에는 좋고 싫음, 많고 적음에 대한 분별이 없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교철학에서는 무위법을 "중도"라고 표현하며, 불교철학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으로 가르치고 있다. 중도(中道)란 '유·무, 고·낙 등 두 가지 대립과 집착을 떠나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 철학에서는 선악과를 따먹은 우리의 조상이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선과 악을 구분하게 되며, 욕심이 생겨났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불교의 중도사상과 성경 창세기에 적힌 선악과에 얽힌 이야기는 비록 표현된 스토리는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위법의 세상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사고하고, 행동한다. "DOING"한다.

무위법의 세상에서 인간은 생각을 멈추고, 일어나는 생각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BEING" 한다.

행동하는 인간은 결코 선/악, 고/낙, 유/무라는 상대적인 결과가 굴리는 수레바퀴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며 살아가다 보면, 나는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다. 돈과 명예라는 물질적인 결과에 집착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이와 반대로 스스로 존재하는 인간이 될 수 있다. 아니다, 놀랍게도 우리는 처음부터 스스로 존재하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불교 설화에 부처가 태어나 스스로 여덟 걸음을 걸은 후 하늘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외쳤다고 전해진다. (과학적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고, 이런 이야기를 토대로 부처가 성스러운 존재라고 포장하는 이들은 불교를 잘못 배운 것이다.)

진짜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하늘과 땅 아래 오직 나만이 존재한다." 무위법의 세상에서 스스로 존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11살이 된 내 아들은 많은 행동을 하고, 많은 말을 한다. 아직은 순수함이 남아 있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유위법의 세상에 적응하는 것 같아 내심 안타깝다. 이런 와중에 나는 아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면, 양면성이 가득한 결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행위를 하더라도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다. 내가 아들에게 하는 행위(DOING)에 대한 칭찬은 유위법의 세상을 공고히 하게 할 수도 있다. 내가 만약 아들이 리코더 부는 것을 칭찬한다면, 아들은 다음에는 더 잘해야 칭찬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될 수 있고, 이는 리코더를 부는 행위의 순수한 목적성을 이탈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행위에 대한 칭찬보다는 존재(BEING)에 대한 칭찬이 본질적일 것이다. 존재에 대한 칭찬은 바로 사랑이다. 아들이 한 행위를 넘어선 존재에 대한 칭찬인 사랑을 표현한다면, 그의 행위가 가진 순수한 목적성을 유지하면서 행위에 대해 칭찬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랑 표현을 통해 존재에 대한 지지를 받은 아이는 유위법의 세상 속에 살면서도 무위법의 지혜를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이 백 마디 말보다 한 마디의 사랑 표현이 가진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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