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기

박소란의 <한 사람의 닫힌 문>을 읽고

by 조르바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의 표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게 시란 무엇일까?

어렸을 때, 시는 아름다운 꽃이었다

연애편지에 옮겨 적어 마음을 장식하고 싶은

젊었을 때, 시는 뜨거운 불이었다

더이상 아름답지만은 않은 세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는 듯한

나이가 들면서

어릴 때 보았던 아름다움이 흐릿해지고

젊을 때 느꼈던 뜨거움이 식어갔다

그래서 이제 시는 형체도 없고 의미도 모르겠는 바람이 되었다

그저 멀리서 아득하게 들려오는 노랫소리 같은


언제부터인가 시인의 이름을 애써 기억하지 않는다. 리듬감에 취하고 반짝이는 언어에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그 시는 시인이 아닌 나의 것이므로. 시집을 통째로 읽는 일도 없어졌다. 나의 것이 될 시가 그렇게 많을 리는 없으므로.

비대면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박소란의 시를 만난 것은 공교로운 일이었다. 갑자기 닫힌 문들이 많아졌으니.

그의 시는 꽃처럼 아름답지도, 불처럼 뜨겁지도 않다. 그의 시는 꽃 옆의 들풀처럼 새삼스러운 친근감, 꺼진 불이 간직하고 있는 미지근하지만 편안한 온기다. 문 안에서, 그리고 문 밖에서 누군가를 생각하고 자신을 들여다보기에 적당한 그런 외양과 온도. 적어도 나에게는.

시를 읽는다고 시인과 같은 감정을 경험할 수는 없다. 느낌이 있었다고 해도 나만의 것이기 때문에 글로 표현할 수도 없다. 시에 감염은 되었는데 바이러스의 정체를 알 수 없다. 보이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것을 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감상문을 쓸까? 편하게 하자. 차례를 펼치고 눈에 들어오는 제목의 시에서 일부를 인용하는 방법이다. 어쩌면 이런 방법으로도 시인이 들키고 싶었던 것을 눈치챌 수 있을지 모른다.


아무도 예쁘다 말하지 못해요

최선을 다해

병들테니까 꽃은

-'벽제화원' 중에서


나는 고작 이런 게 궁금합니다

귀퉁이가 해진 테이블처럼 잠자코 마주한 우리

그만 어쩌다 엎질러버린 김치의 국물 같은 것

-'심야식당' 중에서


끓는 자리에 누워

물을 생각한다 한 파리한 입술이 스민 물을,

고작 물을

한모금 마신다

-'물을 마신다' 중에서


우연이지만, '고작'이 두 번 나왔다. '고작' 정말 마음에 든다.


당신은

갓 지핀 불의 활활한 조각을 주머니 깊숙이 넣어 가지고

와서

버스를 기다리는 내 손에 슬그머니 쥐여주고는 했다

겨울이었고 밤이었고

나는 그것을 늦은 저녁을 짓거나 흑백 꿈속을 채색하는

데 썼다

-'불이 있었다' 중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개라면, 겁에 질려 맹렬히 짖어대는 창밖 저것이

사랑이라면

-'오래된 식탁' 중에서


시집에 실린 마지막 '시'는 |시인의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더 깊이 '사랑'한다.

는.

우리에게 다시 대면의 시간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사랑을 잊지 말아야겠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요즘, '혼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럴 때는 앙상블보다 '솔로'에 끌린다. 첼로 소리는 파란색이라고 한다. 낮지만 쓸쓸하지 않은 첼로 선율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1prweT95M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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