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입학 전이었다.
주말 오후였고, 엄마는 몸이 좋지 않아 나는 아빠와 교복을 사러 갔다. 아빠는 내키지 않아 했다. 교복값을 듣고 아빠는 표정을 구겼다.
교복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아빠는 교복을 환불하자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아빠는 교복을 환불하자는 말을 되풀이 했다. “너 그냥 학교 안 다니면 안 되냐? 꼭 고등학교까지 다닐 필요가 있느냔 말이야.”
나는 침묵했다.
고교 입학 전이었다.
어느 오후, 학교 행정실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이 입학금 납부 마감일인데 아직 납부가 되지 않았다고, 납부를 하지 않으면 입학이 취소된다고 했다.
엄마는 수화기 너머의 말을 듣고 떨리고 불안한 목소리로 대답할 뿐이었다.
엄마는 전화를 끊고 바로 밖으로 튀쳐나갔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아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도 외투도 걸치지 않고 집에서 입고 있던 낡고 늘어진 옷을 입고서.
엄마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돈을 빌리러 다녔다. 성당을 같이 다니는 사람 몇 명이 같은 아파트에 살았는데 엄마는 그들에게 돈을 빌려 나의 학교 입학금을 납부 마감 시간 직전에 겨우 냈다.
비슷한 처지에도 돈을 빌려준 여자들.
나를 위해 동네를 돌아다니며 돈을 빌린 엄마.
집으로 돌아온 엄마에게서 차가운 공기와 가쁜 숨결 그리고 탄식이 느껴졌다. 하늘의 노을은 어둠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때의 아빠는 미쳐있었다.
아빠는 고장 난 백혈구처럼 적혈구 같은 붉은 우리의 사랑을 병균을 일으키는 세포 취급을 하며 먹어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