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헤어지자.” 서로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연인일지라도, 이별의 순간은 찾아오고야 만다. 남녀 중 누가 먼저 결별에 관한 말을 꺼냈느냐와 상관없이, 내뱉은 사람이나 들은 사람이나 그 순간부터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다. 마음의 정리. 정리의 사전적 의미는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이다. 마음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던 애정의 조각들을 한데 모아 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도파민이 분출되던 순간, 느꼈던 설렘, 서로로 인해 울고 웃었던 기억, 서운함과 애증의 감정들 모두가 결국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니 말이다.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에 대한 감정의 정리를 시작한다. 애를 쓰다가 시간이 흘러도 끝내 안 되면 상대방을 붙잡기도 한다. 깨끗이 잊지 못하고 어딘가 끌리는 데가 있는, 그것은 미련이라는 감정이다.
미련의 크기가 크든 작든 한 톨이라도 남아 있다면 정리는 불가능하다. 나 또한 그랬었다. 우리는 C.C.였다. 서른한 살 결혼하기까지 9년간 얼마나 헤어짐을 반복했었던가. 서로의 가정환경이 너무나 달랐기에 주변에서도 머리채 잡고 뜯어말렸던 결혼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국 이뤄졌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답은 하나다. 그놈의 미련 때문에. 도저히 끊어내지 못하는 서로의 우유부단한 성격 덕분에. 좋게 표현하면 정이 많아서다.
돌이켜보면 이별을 성취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입맞춤 한 번으로 무너지곤 했었다. 앞에 놓인 거대한 장벽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은 계속 우리가 이어질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그 얼마 되지 않는 경우의 수에 승부를 걸고 꽃길을 상상했다. 우리 결혼은 몇 번이고 엎어질 뻔했다. 주례와 축사 문제로 양가 부모님의 감정이 크게 상했을 때, 마침내 이별을 고하러 간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나는 미련이란 얼마나 절절한 감정인지 수차례에 걸쳐 깨달았었다.
아들이 일곱 살이 되도록 나는 둘째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했었다. 다섯 번의 시험관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어도 꽃피는 봄이 오면 살포시 희망에 젖곤 했다. 나이 서른아홉에 조기폐경 진행 중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단념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나는 둘째 임신을 대비하여 아기 옷과 장난감, 육아용품 따위를 모두 보관해 두었었다. 애초에 그만두겠다고 다짐했지만, 그것들에 손대는 것조차 힘겨웠었다. 자꾸만 눈물이 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되는 대목에서 내게 아직도 미련이 남았음을 알았다.
완전히 포기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1년 동안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아기 옷을 팔았다. 돌 때 샀던 전집과 지금은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상자 속에 넣어 정리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마음속을 살폈다. 정말로 괜찮은지, 아프진 않은지, 눈물이 나진 않는지 점검했다. 때때로 가슴이 찌르르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잠깐 정리하기를 멈춘 채 멀리 하늘을 응시했다. 내게 주신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떠올렸다. 하나밖에 없어서 귀한 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엄마, 이제 혼자 잘 수 있어요.” 어느새 아이가 이만큼이나 자랐다. 넓은 집이 아니기에 아이 방에 침대를 들여놓으려면 집 전체를 정리해야 하는 형국이었다. 이번 일을 기회 삼아 내 안의 둘째 바라기 흔적을 완전히 지워 보기로 했다. 베란다 장 속 깊이 묻어놓은 아기 옷 상자를 직접 꺼냈다. 혹시 필요한 일이 있을까 봐 남겨 둔 기저귀 깔개, 유축기, 이유식 기계 등도 한 자리에 모아두었다.
혹시 아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지, 남편이 내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일그러진 모양이었다. “이리 와.” 남편의 따뜻한 품에 안겨서 얼굴을 묻고 조금 울었다. 그래도 예전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한 톨의 미련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담담할 수 없었으리라. 아기도 없는데, 언제까지고 아기용품을 장 속에 가득 채워 넣고 살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미련은 온통 과거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지칭하기도 한다. 현재 이뤄질 가망이 없는 과거의 일을 꼭 붙들고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미련한 사람이다.
연인관계에서든 둘째 문제든 미련을 끊어내야 나아갈 수 있다. 그동안 집 일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눅눅한 어제의 그림자를 걷어내자 비로소 눈부신 새 공간이 보인다. 두 번 다시 과거에 발목 잡혀 살지 않으리라.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더 나은 길을 찾을 것이다. 말끔하게 정리된 이 장소에서 말이다.
단정한 풍경 속 포근한 침대에 누워, 나직하게 책 읽는 소리를 듣다 까무룩 잠든 아이. 형제가 있는 집이라면 왁자지껄할 이른 저녁에 고요히 글 쓰는 여자의 모습이 아른하다.
그동안 집 일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눅눅한 어제의 그림자를 걷어내자 비로소 눈부신 새 공간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