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나는 ADHD 14화

ADHD에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서야 수용할 수 있었다

나는 ADHD EP14.

by 소양

맨 처음 ADHD 판정을 받았을 때 꽤나 기뻤다.

왜냐하면 마치 병명도 모르는 채로 아프다가 처음으로 병명을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가 꽤 심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물론 이 패턴이 ADHD 환자에게는 꽤 흔한지, 관련 책을 읽어보면 하나같이 함부로 ADHD환자임을 얘기하지 말라고 한다.

지금은 나도 그 말에 100% 동의한다.

왜냐하면 득이 될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초반에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단순히 내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기쁨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이상하게 보이는 행동들을 '변명'할 수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으로서 행동에 대한 책임을 'ADHD'라는 허수아비를 만들어서 전가시키는 것이 썩 좋은 방법이 아니란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이 생각보다 없고 ADHD라고 해서 더 봐줄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판정을 받고 나서부터 어떻게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내가 ADHD를 '판정'받은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자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ADHD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게 되었다.

'ADHD환자로서 무언가를 한다'가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한다'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가 있다고 하던데, 나에겐 ADHD를 받아들이는 5단계가 있었다.

[기쁨 -> 부정 -> 슬픔 -> 지침 -> 수용]

물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행동들을 하며 많은 시행착오를 해봤지만 말이다.


처음엔 나의 이해되지 않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다음엔 점점 나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인지하게 되자 부정하고 회피했다.

시간이 더 지나자 부정하기도 힘들었고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슬펐다.

거기서 더 시간이 흐르자 내 원래의 모습을 회피하고 숨기고 슬퍼하는 모든 것들이 지쳤다.


'아 그냥 그대로 존재하고 싶다. 모든 것이 지친다.'

신기하게 그러자 그때부터 진정한 나의 모습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부정적이라고 생각이 들만한 나의 모습들을 억지로 감추지 않는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는 것들을 드러내진 않지만,

예전같이 내 에너지를 갉아먹으면서 억지로 가면을 써서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안 되는 것도 억지로 부여잡으면서 당장의 성과를 위해서 장기적인 결과를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려놓고 있다.


그러니 마음이 참 편하다.

그러자 오히려 내 모습에 대해 사람들이 안 좋게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들도 덜하다.


물론 지금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진짜 변화는 행동을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변화는 크지 않은 요즘이지만 조금씩 계획들을 실행해보고 있다.

남들보다 다소 뒤처지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내 할 일을 그저 하루하루 내 템포대로 해보고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만 내 인생에선 이게 가장 적합한 길임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다.


ADHD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ADHD를 수용하게 되었다.


keyword
이전 13화현실과 동떨어진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