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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pr 29. 2024

마라 맛 마라톤

둔한 자의 10킬로 마라톤 대회 참가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런닝 앱인 런데이로 4년째 달리기를 해오고 있는 사람! 그러나 4년째 30분 남짓 달리기만 해온 사람! 

 

 4월 28일 반기문 마라톤이 열렸다. 몇 년째 3킬로 정도씩만 뛰던 사람이지만 과감하게 10킬로에 도전했다. 11년 전에 아무 운동도 안 하는 사람으로서 저 마라톤 대회 5킬로에 참전한적이 있다(그렇다. 나에게는 출전이 아닌 참전!). 그때 친구와 설렁설렁 걸어서 마라톤 대회를 마무리 하고, 행사장을 다니며 잔치국수랑 삶은 계란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세상에, 11년 만에 나는 진짜 뛰는 사람이 되고 말았구나라고 말하기에는 3.3킬로가 제일 많이 뛰어본 정도. 페이스는 말하지 않으련다. 그저 나 혼자만이 이건 걷는 게 아니야, 뛰는 거야라고 느낄 정도의 페이스.


  걷지 않고 10킬로를 뛰는 것이 목표. 그리고 1시간 30분의 교통통제 시간 내로 들어오는 것이 목표. 징징거리며 차에 쫓기며 들어올 수는 없어!


  3주 전부터 평소와 다르게 달리기 거리를 조금 늘려봤다. 3킬로, 그 다음 5킬로, 그 다음 7킬로. 와우, 유리 같은 나의 체력은 5킬로부터 거부하기 시작하는데. 5킬로를 뛰던 날, 체하기까지 해서 근무 시간 내내 썩어가는 동태눈으로 기신기신 근무했다. 원래는 10킬로를 한 번 뛰어보고 대회에 나가려 했으나, 그거 뛰면 대회 당일 쓸 체력이 없을 거라는 주변의 만류에 4킬로를 뛰고 이틀 휴식 후 대회에 나갔다. 그러니까! 체계적인 훈련 따윈 1도 없는 내 감과 내 체력에 맞는 준비를 하고 대회에 나갔다.


  날씨는 쾌청하고, 또 뜨거웠다! 팔천 명이 넘는 참가자! 반기문 총장님 얼굴도 보고-내가 실물로 본 사람 중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 아닐까?-, 김일중 아나운서도 보고- 목소리 너무 좋으세용!- 나는 그러니까, 신이 났다!


  젊은 러너들은 젊어서 멋있다. 나이가 있는 러너들은 나이가 들어서 멋있다. 어린이 러너들은 말할 필요도 없어, 흑흑. 러너들은 다 멋있다. 쫀쫀한 근육을 가진 러너들 너무 멋있어, 살집이 있는 러너들, 뭐 어때, 내 친구들. 이런 형편없는 페이스를 가진 나도 주변에서 도대체 왜 뛰냐, 왜 아무도 안 시키는데 맨날 뛰냐는 소리를 듣는데, 여기 그런 소리 듣는 사람이 수천 명이 모였다. 아이, 신나. 


  그리고 내가 태어나서 본 쇼츠를 입은 사람 모두를 합쳐도, 오전에 본 사람보다 적을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마라톤 모임이 있구나! 정말 취미의 세계는 무한, 나만 할 거 같은 어떤 취미에도 수많은 멤버들은 존재하는 법! 


  나는 10킬로를 뛰어본 적이 없는 10킬로 도전자. 평소 뛰는 모습, 그대로 세팅하고 뛰자. 나는 런닝하면서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들으며, 런데이 어플을 켜고 뛰는데 그거 그대로 하자. 자, 팟캐스트를 켜자! 안 켜지네? 런데이 어플을 켜자. 아하, 안 켜지네! 나는 뛰는 시간이나 거리의 숫자가 뚝뚝 떨어지는 걸 봐야 뛸 수 있는 사람이라구!!! 사용자 폭증으로 인한 현상이었나? 스마트폰의 어떤 어플도 열리지 않았다. 


  나는 옛날 사람이라 이어폰을 사용하는데, 어플들이 켜지지 않은 상태로 이어폰 줄을 쥐고 출발했다. 1킬로를 뛴다. 평소 3킬로는 뛰니까 이 정도는 뭐, 할만하지 않니? 응, 못 하겠어! 난 호수나 개천의 그늘 아래서 뛰었다구. 이런 땡볕이라니. 삽시간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나를 앞서고, 나는 긴 시간 동안 한두 명을 앞지르는 화려한 레이스가 시작 되었다. 


  좀 가니 확성기를 들고 예수를 믿으라는 여자분이 보였다. 이런 데서 종교를 설파하다니 정말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힘들어서 신을 찾게 되나! 2킬로를 지나니 갑자기 몇 명의 남녀가 꽹과리를 비롯한 사물놀이를 신나게 하시는데, 죄송해요, 나는 흥을 잃었어요. 거리에서 손을 흔들어 주시는 할머니들, 죄송해요, 전 손을 들 힘도 없어요, 원래는 웃는 상이예요. 오해 마세요. 아니 근데 그 지점에서 벌써 5킬로를 찍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와우! 뭐죠?


  3킬로 지점에서 힘을 모아 핸드폰을 보니 어플들이 작동을 시작해 7킬로로 맞춰 놓고 뛰기 시작했다. 7.00, 6.99, 6.98. 슬슬 이제 걷기 시작하는 사람들. 7킬로까지 뛰어봤으니 그래도 7킬로는 넘게 뛰고 남은 거리는 걷자. 아이를 달래듯 나 자신을 달래 본다.


  그리고 드디어 물을 준다! 물이 반가운 게 아니다! 나는, 나는, 그게 너무 해보고 싶었다. 뛰다가 종이컵을 낚아채 물을 쫙 먹고, 그리고 그 종이컵을 거칠게 바닥에 버리는 거! 나 이거 너무 해보고 싶었단 말이야~~ 나중에 같이 출전해서 5킬로를 뛴 친구에게 들으니 5킬로는 식수 제공이 없었단다. 어머, 10킬로 나오길 잘했어! 세 번의 식수를 마시며, 매정하게 종이컵을 버렸다. 뭔가 정말 러너같아!!!


  뛰지 말고 걸을까, 누가 알아? 누가 알긴, 내가 알지. 목표했던 7킬로 지점을 지났다. 하지만 알고 있지 않니. 너는 결국 끝까지 걷지 않고 뛸 거라는 걸. 그게 운동 못 하는 내가 가진 유일한 미덕이자 미련한 점이라는 걸. 그냥 끝까지 하는 거.


  자, 이제 1킬로 남았다. 내 앞을 지나갈 사람은 다 지나갔고, 내 주변에서는 걷거나 내 정도의 속도로 뛰는 사람들만이 남았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


  내 뒤에 있던 연세가 조금 있던 남자 분이 갑자기 소리쳤다. “xx! 1킬로 xx 기네~~!” 그걸 들은 주변 사람들이 다 웃었다. 나도 너무 웃겼다. 남은 1킬로 정말 그 분의 욕대로 길었다. 구급차에 타는 몇 명의 사람도 보았다.  


  그리고 저기 끝이 보인다. 1시간 20분 22초. 다행히 울며 차량과 함께 복귀하는 일은 없었다. 근데 또 사람 욕심이라는 게, 물 한 번만 안 먹었어도 10분대 기록이 나왔으려나 싶은 마음. 허허, 누가 내 기록에 관심이 있다고. 잘했어. 언제나 그렇듯 나만의 나의 속도로!


  끝나고 이름과 기록이 나오는 사진 찍는 곳에서 기다린 시간이 런닝의 시간만큼 길었다. 그러나 찍어야 했다! 러너니까!


  잔디는 푸르고, 고춧가루도 상품으로 주고, 메달도 타고, 얼굴은 따가워졌다. 근육이 쫀쫀한 러너들이 시상대 위에 올랐고, 나는 아는 사람이 상이라도 탄 듯, 내가 상이라도 탄 듯 박수를 쳤다. 내가 1시간 20분의 기록인데 수상자는 40분대 기록. 아아, 엄청난 사람들. 


  마라톤이 끝나고 혹시나 몸이 축날까 물회를 한 그릇 먹어 짠 맛 흡수, 자몽에이드와 쿠키 흡입으로 단 맛 흡수! 


  그리고 하루가 지난 지금 워크온이란 어플에서 보니 내가 어제 파워워킹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뭐라고, 이 녀석아? 나 워킹 안 했어! 뛰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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