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 민송백일장
평일에 열리는 백일장이라니! 평일 백일장은 백일장 매니아인 나로서도 처음이다. 오늘의 백일장은 민송백일장! 제천 세명대학교에서 열린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워서 오전 반가만 냈다. 오전 반가를 냈으니 오후에는 사무실로 돌아가야 할 몸. 십 년째 운전이 서투른 나이기에 이번에도 휴직 중인 남편을 기사로 삼아 기동력 있게 움직였다.
일반부가 평일 백일장을 참가하긴 쉽지 않다. 물론 생업 때문이다. 나도 남편이 휴직 중이 아니었다면 하루 휴가를 내고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기에 참가에 고민을 했을 것이다.
현장 접수를 하려고 보니! 와아, 큐알코드로 현장 접수를 하지 않는가! 이게 무슨 일이야! 주소와 휴대폰 번호를 머리 숙여 적었던 현장 접수 시대도 이제 끝이 나는가!
대학교 캠퍼스에서 열리는 대회는 오랜만이다. 건물 안의 컨퍼런스홀이라는 곳에서 쓸 수도 있고, 야외 아무 곳에서나 쓸 수도 있다. 이번 대회는 중학생부, 고등학생부, 대학‧일반부로 나뉘어 있다. 귀여운 초딩부가 없다니! 그리고 그리기 대회와 같이 열리지 않는다니! 평소보다 조금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초딩만 귀여운가! 그렇다. 초딩만 귀엽다. 컨퍼런스홀에서 제 세상 만난 듯 떠들어대는 고등학교 남학생들의 괴성은 정신을 어질하게 했다. 초딩들도 물론 떠들지만 초딩들이 참가하는 대회는 야외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아서인가 저 멀리 재잘대는 새의 노래 같았다면, 고등학생들의 실내에서의 소음은 없던 시상도 달아나게 할 판이었다.
주제는 운동장! 운동장으로 시를 써라! 대회 전 날 사무실 동생이랑 얘기하다가 그 동생이 자기가 여중, 여고의 피구 에이스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나는 반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둔한 자로서 운동에는 영 소질이 없고, 사십이 넘는 지금도 날아오는 공만 보면 무섭단 생각만 든다. 나는 그 때의 여학생들의 패기가 생각났다. 도대체 피구가 그들의 인생에서 뭐가 중헌디 그들은 이를 악물고 승패를 다루는가. 그들은 얼굴에 독을 품고 공을 내던지고, 날아오는 살상무기라도 본 것처럼 잽싸게 그 공을 피하거나, 피구왕 통키의 후예인양 의연하게 그 공을 받아낸다. 그리고 판정 시비라도 일어나는 날에는…. 몇 명의 여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세상에 그 불 속에 눈물이 흐른다. 불 속의 물이라니. 하여간 눈물을 흘리며 불을 켜고 승패를 따진다.
나는 언제나 그 장면이 무서웠다. 늘 제일 처음으로 공에 맞고 맞은편 줄 밖으로 나가거나, 대부분 경기 내내 공 한 번 쓸어보지도 못 하고 나무처럼 서 있는 아이였지만, 그들을 휩쓰는 그 열기가 무서웠다. 더 무서운 것은 공 한 번 만져보지 못 한 나도 그들에게 휩쓸려 같이 흥분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같이 흥분하고, 같이 좌절하고.
그때의 기억으로 피구를 하는 학생들에 대해 시를 썼다. 아직도 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시를 쓴다. 어떤 강렬했던 장면을 짧게 쓰는 것. 그것이 그냥 내가 시를 쓰는 방법이다. 아마도 끝내 아마추어로 남을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평소에 했던 생각들을 쓴다. 나로서는 산문과 시가 다른 것이 아니다. 주제가 스마트폰이라고 하면 나는 사극에서 벼슬아치들이 왕과 야외(?)에 있을 때 들고 있는 그것이 생각난다(아, 그것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아니면 양반들이 조상의 위패를 들고 있는 모습이 생각난다. 가슴 언저리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쓴다.
가족사진이 주제라면 결혼하기 전 남편이 우리 가족과 가족사진을 찍던 모습을 떠올린다.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우리 엄마와 나를 보며 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번쩍 사진이 찍히면 얘는 우리 가족이 되는 걸까. 그런 식으로 그냥 내가 생각했던 별 거 아닌 생각들을 쓴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시인들이 긴 시간 생각을 다듬는 거랑 비교하면 쉽게 쓰는 거지만, 백일장에서는 시간 내에 써야 하는 게 중요하다. 대략 한 시간 정도 쓴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대회를 나갔는데도 어떤 대회는 대상이나 장원이고, 어떤 대회는 상을 그렇게 많이 주는 대회인데도 끝에 상도 못 타는지 모르겠다, 도통!
그러니까 백일장 수상 비법이 무어냐 묻는다면, 대답은 모르겠다이다. 겸손의 말이 아니구요, 난 원래 겸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요. 진짜 모르겠다. 일단 뭐 많이 타지도 않지만! 그냥 나가고, 그냥 쓴다. 그리고 상 타면 땡큐, 아님 허허, 이 대회는 사람 볼 줄 모르네 그러고 지나가버린다.
민송백일장 참석 이틀 후, 전화가 왔다. 장원을 했다는 기쁜 소식. 아, 근데 개인정보를 물으시길래 괜히 이거 스팸전화 아니여 하면서 꼬치꼬치 따지듯 물었다. 아우, 가만히 있을걸! 전화를 끊고 나서 찾아보니 이미 기사도 났었다. 나는 이 대회가 당일에 시상식을 하기 때문에 시상식에 부르지 않으면 수상을 못 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시상식에 참석한 수상자만 시상하고 수상했다고 다 부르지는 않았나 보다. 어쨌거나 대상 수상자는 시상식 때 이미 사무실에 복귀하여 밀린 일을 이를 갈며 하고 있었다나 어쨌다나.
늘 백일장에서 상을 타진 않지만, 아니 오히려 안 타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래서 수상의 소식은 기쁘다. 나는 여기 사무실에 앉아 늙고 있는 중년의 직장인이 아니라, 그래도 한 편의 시를 쓰고 그것이 누군가가 상 받을만 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일상의 아주 큰 위안이다. 더군다나 오십만원을 탔다! 덩실덩실~~~
아아, 다음 백일장은 어디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