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갠지스의 바람'이 있다. '갠지스의 바람'에서는 간단한 마른안주와 맥주 그리고 양주를 판다.동생이 그곳을 단골로 드나들다,그곳에서 알바를 했었다.'갠지스의 바람'의 낮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그곳은밤과어울렸다. 밝지 않은 조명과 나무로 된 복층 구조가 겨울밤과 잘 맞았다. 유독 힘든 한 주를 보낸 금요일 밤엔 '갠지스의 바람'을 찾곤 했다.내게 '갠지스의 바람'은 김홍의 신춘문예 등단작 『어쨌든 하루하루』의동네 단골술집 '시리어스리' 같은 장소였다.
동생에게 전해 들은'갠지스의 바람' 사장님은 낭만주의자였다. 사장님은 새벽까지 장소를 제공했다. 현 알바생이든 전 알바생이든 거쳐간 이들에게 그곳은 아지트가 되었다.내 상상 속 사장님의 이미지는 아래와 같았다.
일본 영화에 자주 나오는 배우 릴리 프랭키(이름은 이번에 알았다.)
마치 낙담해서 술 마시고 있는 주인공에게(마른 행주로 맥주 컵을 닦으며)'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 뿐이야.'라는대사를 치는 꼬치집 사장님(이혼, 자녀 없음, 취미 : 올드카 정비)이미지였다. 사장님을딱 한번 뵈었다. 사장님은 릴리 프랭키와는 다르게 안경을 썼음에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나는 마침내사장님께 낭만 넘치는 이 공간이 좋다고 전했다. 사장님은 얼마 뒤 공방을 내러 공주로떠났고, 전 알바생이 가게를 인수했다.
'갠지스의 바람'이 특별했던 이유는 신청곡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공간에 있는 낯선 사람들과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순간이 마음에 들었다. 알바할 때 동생은 DJ였다. 신청곡들을 나열해 두고 분위기가 자연스레 이어지도록 재생 순서를 조정했다. 동생이 알바를 그만둔 후 언젠가 함께갠지스를 찾았다. 내가 장난 삼아신청한 인디음악과 아이돌 댄스 음악이 순서대로 나오자 동생은 속상했다. 그날의 알바생은핸드폰만 봤다.
술을 끊고 생활 반경도 바뀐 뒤, 나는 갠지스의 바람에 가지 않는다. 이제 영화 속 주인공에게 예전처럼 공감을 못한다. 한 정거장 미리 내려서 봄과 가을을 걷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계절에 맞는 노래를 추천해 달라고 한지 오래다. 벚꽃 잎이 소설책 위에 떨어져도 별 감흥이 없다. 감정의 파동이 작아졌다. 대전에 갠지스의 바람은 있지만, 그게 '갠지스의 바람'은 아니다. 대신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나에겐 아직 공방이 없는데. 생각해 보니 양주도 몇 병 킵해놨었다. 이미 누군가의 감성을 적셨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