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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코끝으로 온다

어김없이

by 주경

계절이 왜 코끝으로 오는가. 코끝으로 전해지는 감각과, 그로 인해 형성되는 감성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면서 실존적이기 때문이다. 사진이나 영상에 담아 전달할 수 있는 계절은 풍경과 소리로 제한된다.


내 주관적인 계절 감성에 대한 보편적 공감을 불러오기 위해 음악의 힘을 빌리고자 한다. 계절은 코 끝으로 온다더니 말이다. 음악은 감성을 불러오기에 쉽고 강력한 예술 형식이다. 코끝으로 느꼈던 계절 감성을 음악으로 소환한다. 음악은 사진이나 영상에 비해 비정형적이다. 감상자마다 자신만의 심상을 떠 올 수 있다. 따라서 감상자의 자유와 주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므로, 추천해도 될 것 같다는 핑계를 댄다.



봄 : Nujabes의 Aruarian dance

https://youtu.be/vR-UqOPqGzI?si=5VCXzjHVdzHbXP3p

듣는 순간 말랑말랑 나른해진다.

봄날의 나른한 향을 기억한다. 따스한 봄볕과 그보다 아직 차가운 공기의 온도의 간극에는 나른함이 있다. 나른한 향 안에는 설렘, 따사로움, 가벼움, 들뜸, 간질거림 섞여있다. 이 감정들은 3월, 4월, 5월을 지나며 비율을 달리하며 각각 다른 봄감성을 만든다.



여름 : 김아름의 선

https://youtu.be/WMHkBCAQEmE?si=jmO0381ZyGe5-cc8

여름밤은 시티팝이다. 그리고 시티팝은 김아름을 위해 존재한다.

낮에 담아뒀던 청량한 바다를 떠올리며 돌아오는 차 안에는, 시티팝이 흘러나온다. 규칙적으로 스쳐가는 주홍빛 가로등은 적당한 조명이 되어주고, 살짝 연 창문으로 넘어오는 알맞은 습기로 여름밤 감성이 쭉 유지된다.



가을 : 기리보이의 하루종일

https://youtu.be/YEt_5Fg3PM8?si=bxMf0MG4r6z089_J

밴드 버전도 있지만 그건 여름에 어울린다. 가을엔 오리지널 버전이 어울린다.

가을은 추석즈음 나는 풀내음과 함께 마침내 찾아온다. 어릴 적 성묘 때 가장 짙게 맡을 수 있는 냄새다. 추석 연휴가 주는 안락함만으로도 이미 끝났다. 가을보다 걷기 좋은 계절은 없다. 여름, 겨울과는 달리 옷에 기온보다 취향을 담을 수 있다. 추석 전후의 가을과, 겨울이 오기 전 텅 빈 가을은 다르다. 한 계절임에도 분위기가 나뉜다는 사실도 마음에 든다.



겨울 : 심규선의 부디

https://youtu.be/lV0h6954hmA?si=Le8WLn21Js6ihjJm

이 곡은 연말 연초가 한참 지난 겨울과 어울린다.

겨울은 계절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 코끝에도 찾아온다. 코끝이 아리니까. 나뭇가지 위에 눈이 쌓은 모습을 창 안에서 바라보는 포근한 향으로 느낄 수 있다. 겨울도 분위기가 둘로 나뉜다. 연말 연초 따스하고 아늑한 겨울과 텅 빈 나뭇가지가 적막해 보이는 2월의 겨울 다르다.




가을이 왔으면 한다. 이 글을 쓰면서 계절별 플레이리스트를 보니 가을 폴더만 119곡이 있고, 나머지 계절곡은 23~71곡 수준이다. 나 가을 좋아했네. 사실 내가 바라지 않아도 어김없이 가을은 온다. 어김없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작지만 확실한 위안을 준다. 불확실함이 가득한 세상에서 기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실이다. 가을을 위안 삼아서 미뤄뒀던 산책을 하고싶다. 9월에 가까워질수록 회사문을 나 설 때 숨을 깊게 들이켠다.

* 표지 사진 : <The north clay castle in fall, size : 2988x5312, model : R>

가을의 정북토성, 모델은 나라는 뜻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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