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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성 Aug 23. 2022

예민한 여자와 둔감한 남자의 결혼생활

중년결혼일기

‘여보~ 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  

‘당신이 먹고 싶은거!’     


‘잉? 그럼 종류라도 말해봐, 한식, 중식, 양식, 일식?’

‘당신이 먹고 싶은 거 먹고 싶다니까... 히잉~’     


남편은 항상 이런 식이다. 얼핏 보면 아내에게 철저히 순종하는 남편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왠만해서는 본인의 머리를 쓰지 않는, 사고의 귀차니즘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당신도 가끔 머리 좀 써봐~’하고 옆구리를 쿡 찌르면 ‘똑똑한 아내 두고 내가 왜 머리를 써?’ 하고 되받는 것을 보면 센스가 전혀 없는 사람은 아니다.     


성질 급한 예민녀인 나와 5년째 같이 사는 남편은 느긋한 둔감남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효율, 가성비를 생각하며 머리를 바삐 굴리는 사람인 것에 비해 남편은 세월아 네월아 하며 별로 고민을 안하고 산다.      


성질 급한 사람하고 살면 곁에 있는 사람이 피곤하다는 것은 불고의 진실이다. 나는 이 사실을 성장 과정에서 친정엄마를 통해 몸소 체험했기에 아주 잘 안다. 예민하고 성질이 몹시도 급했던 엄마는 어디 여행이나 외갓집에 가는 날이면 기차시간 보다 두시간 정도는 일찍 기차역에 도착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날이면 꼭두새벽부터 우리를 깨우고 안일어 난다고 닦달을 하는 통에 거의 잠도 못자고 쫓기듯 나와야 했으며, 기차역에 가서는 쪼그려 앉아 한없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때마다 짜증이 나다 못해 이런 엄마와 결혼한 아빠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애석하게도 내가 어느 정도는 그런 성질을 물려받은 듯하다. 엄마랑 나의 차이가 있다면 엄마는 태생이 부지런한데 비해 낮은 교육수준으로 인해 비합리적인 불안성 성질 급함이라면, 나는 그래도 교육의 힘으로 비합리적 불안성 행동은 별로 없지만 사고에 비해 행동이 게을러 부조화가 가끔 나타난다는 차이가 있다. 


언젠가 본 사주명리학의 내 사주팔자에 ‘가만히 있는듯 보이지만 늘 머릿속이 분주한 사람’이라고 써있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란 적이 있다. 그때까진 나도 딱히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나는 자면서도 머리를 굴리나보다. 나는 칼라꿈을 자주 꾸는 편인데, 언젠가 뇌전문가가 칼라 꿈을 꾸는 사람은 딱히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고 자면서도 계속 머리를 굴리기 때문에 칼라꿈을 꾸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을 듣고 내 상태를 인지하기도 했다.  ‘인디아나 존스’ 저리 가라 할 화려한 액션어드벤처 꿈을 꾸다 깨어나면 '내 꿈을 녹화해서 영화사에 팔 수만 있으면 돈 좀 벌텐데' 하고 아쉽기도 하다.

      

이렇게 예민하고 본능적으로 머리를 항상 굴리는 나와 느긋한 남편이 결혼하고 보니 몇가지 장단점이 존재한다.  


먼저, 성질 급하고 예민한 나기에 남편이 종종 눈치를 보며 맞춰줘야 한다. 해서 때론 남편이 피곤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 반면 알아서 검색해서 결정하고 실행하기에 남편은 그저 묻어가면 된다는 장점이 있다. 가끔 짜증만 참아준다면 대체적으로 같이 살기 편할듯 하다.   


둔감한 남편은 그 둔감함 때문에 때론 답답하다. 사실 심각하게 답답하다기 보다는 내 성격특성에 비해 답답하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여행갈 때나 무엇을 할 때 내가 다 알아봐서 기획하고 리드해야 해서 어쩔 때는 좀 나도 피곤하다. 반면 언제나 느긋하고 긍정적이며 내 뜻대로 따라주기에 딱히 언쟁할 거리가 없다. 특히 이런 성격의 최대 장점이 상대방의 단점을 잘 포착 못해 지적질을 안한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남편의 사소한 실수나 행동이 거슬려 지적하기도 하는데 남편은 결혼 후 한번도 내게 어떤 지적질을 한 적이 없다. 단점이 없는 완벽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바여서 남편의 이런 성향은 예민한 내게 나쁠게 없다. 한마디로 남편은 둔감해서 가끔 답답하지만 둔감해서 편안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남편에게 나는 예민해서 가끔 피곤하지만 센스있어서 일상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예민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이 같이 살면 단점도 있으나 장점도 크다. 부부는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로의 빈곳을 채워주는 관계라고 하지 않는가? 


중년에 만난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이러는 우리가 곧 천생연분이라고 자족하며 산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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