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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성 Aug 07. 2022

결혼만 해본 남자와 연애만 해본 여자의 중년 연애-2

50에 터득한 중년의 연애 교훈

남편은 금요일마다 데이트를 하러 내려올 때 아무 생각 없이 오는 듯했다. 만나서 어디에 갈지, 무엇을 할지... 아무 생각이 없이 내려와 해맑은 얼굴로 내 처분만을 기다리는 식이었다. 꽃 한송이 사온 적도 없었다. 나는 귀국해 다시 정착한지 5년 정도밖에 안됐고 평소 잘 돌아다니는 스타일도 아니었기에 사실 여기 지리를 잘 몰랐는데, 서울서 내려온 나이 지긋한 분을 모시고 다니려니 사실 좀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그렇게 원치 않게도 내가 주도하는 연애가 시작되었다. 나는 원래도 연애에 매우 수동적인 사람이었고 사실 연애가 서툴렀던 것은 매한가지여서 모처럼 남자친구가 생겼어도 마냥 좋은 연애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첫번째 스킨십마저 기획하다"


남편의 연애 무식은 이후 스킨십 없음으로 이어졌다. 남편은 식사하며 술을 늘 마시는 식이었기 때문에 운전을 할 수가 없어 스킨십의 기회를 전혀 만들지 못했다. 내내 식당이나 카페에서 밥 먹고 술 마시며 이야기만 줄창 하는, 중성적 토론방식의 연애가 계속되던 어느날, 나는 어렴풋이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남편을 노래방으로 이끄는 대결단을 내렸다. 단둘이 노래방에 가자는 것이 좀 속보이는 것 같아 창피하기도 했지만 이 남자가 원체 뭘 모르니 나라도 나설 수밖에....   

  

남편은 다행히 노래방에서 스킨십을 시도해줬다. 다만 중년 여성의 아킬레스건인 똥배를 슬며시 잡는 식으로 하필 백허그를 시도하는 통에 불룩한 배에 얹혀진 남편 손길에 소스라치게 놀란 내가 거의 무조건 반사로 손을 세차게 뿌리치는 대참사가 있었지만, 남편은 기특하게도 한번 더 다른 부위를 공략해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최초 스킨십은 역시 나의 주도 아래 성공적으로 실행되었다.    

  

연인 사이에 큰 모멘텀이 되는 첫 여행 역시도 사실 내가 제안해서 이루어졌음을 (자존심 좀 상하지만) 고백한다. 영 연애의 스킬을 모르는 이 남자가 남들 다 가는 휴가철이 왔는데도 그 흔한 여행 제안을 안하는 것이다. 훗날 남편은 이런 식으로 건전한 연애를 한 1년 정도 하다 여행가자고 하는게 예의인줄 알았다고 한다. 에휴~ 옛날 사람! 


나는 하는 수 없이 ‘어디 가까운데 1박2일이라도 여행을 가는게 어떠냐’고 슬며시 제안했다. 남편이 왠 떡이냐 응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이후 첫 여행을 앞두고 나는 며칠동안 불안에 떨어야 했다. 연애 무식인 남편이 또 해맑은 얼굴만 들이밀며 여행지에 오는 것은 아닌지 내심 불안해진 것이다.      


당시 여행을 며칠 앞둔 어느날 결혼한 동네 절친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남자친구한테 아직도 목걸이같은 선물 안받았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설마 첫날밤을 치르면서 금목걸이 조차도 준비해오지 않는 남자라면 사귈 가치가 없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대리운전 불러서 집으로 오라는 것이 아닌가? 그쯤 되고 보니 은근히, 아니 심각하게 걱정이 되었다. 이 남자가 눈치 없이 빈손으로 오면 어쩌나 실로 걱정이 되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18k 아주 가느다란 금목걸이를 사가지고 와서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내 목에 걸어주었다. 무엇보다 대리운전 불러 집에 가지 않아도 돼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그 날 이후 우리 관계가 급속히 진전되었음은 물론이다. 나는 이후 이 남자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결혼을 빨리 하고 싶어졌다.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불안해진 내가 여행 며칠전 남편과 통화하면서 ‘연애한지 오래 되셨으니 젊은 사람들에게 데이트하는 방법을 좀 물어보시라’고 넌지시 채근하기도 한 후였으니 살짝 옆구리 찔러 절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연애할줄 모르는 남자는 가르치면 되는거야"


사실 나는 당시 남편이 답답한 연애 행동을 보였을 때 한동안은 실망하며 연애가 시들해질 뻔했다. 그러다 결국 ‘몰라서 못하는 것은 가르쳐서 하게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남편의 살아온 역사를 헤아려보니 연애 못하는게 이해도 됐다. 이후 나는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가르치며 내가 주도하는 연애를 점차 기획해 실행하는 것이 익숙해지게 되었다. 막상 그렇게 맘 먹고 보니 도전 의식도 생기고 내가 주도하는 연애의 묘미도 슬슬 느껴져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한단계 한단계 서툰 연애의 고개를 넘을수 있었다. 나 역시 연애에 서툴러 이날까지 혼자 살고 있었던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남편과의 연애에서는 그런 순발력과 관용이 생겼는지 두고 두고 신기할 정도다. 남들한테는 이게 별것 아닌 기본기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전엔 한번도 이런 주도적인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될 인연은 이렇게 되는가 보다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무엇보다 중년이 되어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진 덕분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어 스스로도 뿌듯한 일로 남는다.   

 

"문제해결적 관점에서 중년연애의 난제를 풀자"

 

연애하는 상대가 기대한 만큼의 연애 매너가 없으면 자칫 매력이 없어보이기 쉽다. 이는 점차 시들한 연애로 이어져 결국 이별로 막을 내리기 십상인데, 여성들이 흔히 기대하는 그런 연애 매너를 가진 남자는 대개 바람둥이이거나 누군가의 남편이다. 그러니 현실에서 가능한 싱글 중 골라야 하는데, 이때 문제해결적 관점으로 접근해 문제 풀듯 연애를 접근한다면 감정 끙끙거리는 일 없이 서로 조율해 나갈수 있다. 그러다보면 초기엔 안보였던 상대의 장점들도 점차 드러나면서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가 너무 괜찮은 남자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연애 초기 꽃 한송이 사줄줄 몰랐던 남편은 이후 전주의 최수종이 되었다. 점차 능력 개발이 되더니 멋진 프로포즈 이벤트도 기획해 내게 황홀한 청혼도 하고 자주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에 신경쓴다. 아~ 답답하다고 연애를 때려치웠으면 어쩔 뻔했는가? 지난 5년 동안 느껴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알싸한 행복감을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중년에도 연애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해결할수 있는 지혜와 관용이 둘 중 한명에게라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불같은 사랑은 아니더라도 나처럼 서서히 달아오르는 사랑이 중년에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은 중년에 특히 축복이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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