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간병에 지쳐가는 중년
오늘도 지성씨의 엄마는 허리가 아파 죽겠다고 빨리 와서 자신을 병원에 데리고 가라며 전화기 너머에서 격앙돼 있다. 자식들의 상황은 아랑곳없이 오로지 빨리 자신을 돌보라고 소리치는, 엄마의 이기적인 모습을 볼 때면 솔직히 키워준 엄마지만 정나미가 떨어진다.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 싶어 안쓰럽기도 하지만 걱정되는 마음 한편엔 이번엔 또 며칠을 여기에 매달려야 하는가 싶은 마음에 한숨만 나온다. 이렇게 지성씨는 엄마를 떠올릴 때면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든다.
50대 즈음부터 친구들과 만나면 부모 간병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 시작한다. 이제는 친구와 만나거나 전화 통화할 때도 으레 껏 “엄마는 건강하시니?” 묻게 되고 “아이고 말도 마. 지난주에 수술한다고 입원하고 어쩌고 한바탕 난리였어.” “우리 엄만 치매라서 자꾸 전화해서 한말 묻고 또 묻고 해서 죽겠어” 이런 식으로 대화가 흐른다. 마치 부모 간병 묻는 게 안부 인사가 될 정도다. 그리고 모두들 간병하느라 힘들다고 하나같이 토로하는 것도 공통적이다.
지방에 사는 지성씨는 요즘 어디를 가도 노인들이 정말 많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성씨가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어언 10년이 되는 지금은 병원에 가면 온통 노인과 그 노인을 돌보는 중년들만 사는 것이 아닌가 느껴질 정도다. 병원에 온 노인들 옆에는 딱 지성씨 나이 즈음의 50-60대 중년의 아들, 딸들이 있다. 모두가 회색빛의 무표정이다. 왜 그렇지 않으랴? 중년이면 한창 바쁘고 할 일도 많은 데다 무엇보다 본인 몸 자체도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하는데 연로한 부모님을 돌보느라 자신의 고통은 티를 내기도 힘들다. 처음 몇 번은 정말로 부모님이 어떻게 되실까 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99%였다면 시간이 갈수록 자꾸 짜증 나기 시작하고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슬슬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래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나온 것인가 보다. 허리가 굽은 백발의 노인들과 그 곁에서 무미건조하게 휴대폰에만 코를 박고 있다가 자신의 부모님 이름이 호명되면 기계적으로 일어나 부축을 하고 들어가는 중년 자녀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그들도 나도 사실 많이 늙었다.
이처럼 오늘날 중년에게 간병이 이슈가 된 이유는 단연 장수사회의 도래 때문이다. 예전엔 평균수명이 짧아 자녀들이 중년이 될 무렵 그들의 부모들은 이미 하늘로 떠났거나 간병기간이 짧았기에 큰 이슈가 아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평균 수명이 매년 같이 경신되고 있다. 2022년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수명은 여성이 86.8세, 남성이 80.9세이다. 이처럼 90세 언저리까지 사는 노인들이 이제 주류가 되었다. 장수야 노인 개인에게는 축복일지 모르나 문제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아니고 여기저기 아픈 채로 오래 산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녀의, 혹은 손자녀의, 그도 아니면 사회의 도움으로 오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가 그런데, 현재의 한국 노인들은 다수가 여러 가지 면에서 자립 능력이 없어서 중년인 자식들의 도움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재의 고령 노인층에 대한 통계자료를 잠시 살펴보자.
전국적인 대규모 노인조사 중 대표적인 한국고령화패널자료를 보면 1차 연도인 2006년 당시 65세 이상의 노인들 중 초등학교 이하의 학력을 가진 노인들이 72.7%를 차지한다. 이중 학교엔 가본 적도 없는 무학층도 무려 40프로에 육박한다. 초고령층인 그들은 일제강점기와 남북전쟁, 그리고 새마을운동 시대를 거치면서 자식을 보통 5명 정도 낳아 길렀다. 군인이나 공무원, 대기업체 같은 극소수 직업층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연금도 없는 시기에 성인기를 보냈으므로 그들에겐 오직 정부에서 주는 노령연금 30만원이 월 고정 수익의 전부다. 당연히 자녀들의 생활비 보조가 없다면 살기 어렵다.
특히 이 저학력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는데, 배움이 짧기에 직업적 성취나 재테크도 거의 불가능했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의 우리처럼 최소한의 건강관리도 못한 채 노동만 하다 노인기를 맞았다. 그렇다 보니 여기저기 아픈 데도 많은게 보통인데 건강문제가 생겼을 때 자녀들의 경제적 지원과 함께 병원 동행이 필요하다. 최근 키오스크의 등장으로 의료기관에도 자동화의 물결이 자리 잡았는데 젊은 사람들에겐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이 기계가 노인들에겐 돌파하기 어려운 도전이다. 특히 대형병원을 방문할 때면 이런 이슈가 더욱 불거지는데 도와줄 자녀가 없다면 몰라도 있다면 자녀들이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또한 현재의 고령층은 큰아들 혹은 자녀들에게 노후를 의지하며 살게 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 세대들이다. 큰아들이 곁에 살지 않는 경우도 많고 큰아들은 일하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며느리나 가까이 사는 딸들이 간병의 당사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니까 당연히 해야 하지만 누구도 이런 기나긴 간병을 예측하지 못했기에 딸들이 겪는 불만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대우받으며 자랐는데... 지금도 엄마는 오빠밖에 모르는데... 간병이나 허드렛일은 내가 다 해야 하나? 이런 불만들로 중년 딸들은 모이면 서로 하소연하기 일쑤이다.
아무튼 이렇게 노후준비가 안된 부모세대의 장수는 샌드위치 세대인 한국의 중년 자녀세대에겐 현실에선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절대로 내 자식들에게 부담 안줄거야. 나는 나중에 좀 몸이 힘들다 싶어지면 후딱 좋은 실버타운에 들어갈거야” “당연하지, 그러니 우리는 돈을 모아야 돼, 애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 죽을 때까지 살려면...” 부모를 간병하는 친구들이 모이면 종종 하는 말이다.
"나는 (간병) 하지만 내 자식에게는 절대로 시키지 않겠다"는 이 다짐에는 그녀들의 간병 현실이 얼마나 힘든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