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독박을 쓰는 비혼 중년 딸들

간병독박에 우는 비혼 중년딸들

by 백지성


중년이 되어 불청객으로 찾아온 기나긴 돌봄은 딸이고 아들이고를 가리지 않으나 많은 현실에선 딸, 그것도 혼자 사는 딸이 그 돌봄수행의 주인공이 된다.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는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혼자 사는 딸이, 혼자 산다는 이유로 자연스레 돌봄부담을 떠맡게 된다.


노인인구가 30%에 육박하는 고령화사회 일본은 동시에 무려 12년 전인 2010년에 이미 50세 여자의 10%, 남자의 20%가 비혼일 정도로 비혼사회 또한 일찌감치 도래했다. 일본 비혼여성들을 대상으로 약 10년 전 비혼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탐색한 지은숙박사의 연구는 일본 비혼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지만 우리의 비혼 중년여성들의 돌봄의 미래를 보는 듯해서 지성씨가 오싹한 느낌으로 읽은 기억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일본은 2010년 35~44세의 인구 가운데 16%가 비혼인 채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일본의 장기불황과 비정규직 증가로 인해 자녀 세대의 소득이 낮아진 반면 높아진 주택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독립하고 싶어도 독립할 수 없는 자녀세대가 늘어났고, 이들 중 상당수가 부모와 동거하다가 그대로 부모 돌봄자가 된다.


특히 딸이라면 주돌봄자가 되는 것이 거의 피할 수 없는 수순이 되는데, 그 이유는 딸 스스로도 오랫동안 부모와 같이 살면서 보살핌을 받았기에 이를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족들이 바라보는 비혼 여성은 단지 ‘결혼하지 않은 여자’라기보다는 ‘돌봄을 하지 않는 여자’로 비춰지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즉 여자인데 돌봄을 하지 않는 존재이기에 부모돌봄을 당연시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는 오랜 세월 기혼 여성은 가사와 돌봄을 수행하는 역할을, 비혼 여성은 취업자라는 구도가 기혼여성들의 취업 증가와 함께 무너졌다. 따라서 기혼 여성은 일과 돌봄에 쫓기는데 비해 비혼 여성은 일만 하면서 우아하게 소비생활을 즐기는 존재라는 인식이 부상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가 연로했을 때 그 돌봄의 주책임이 비혼여성에게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인식이 생겨 이래저래 수발이 필요한 장수노인과 함께 사는 비혼의 중년 딸이 주돌봄자가 되는 것이 하나의 보편적인 풍경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돌봄이 필요한 부모님을 돌보는 것은 어찌보면 자식으로서 당연한 도리일 것이다. 문제는 부모 돌봄의 긴 과정에서, 그리고 부모 사후에 나이든 자녀가 살아내야 하는 팍팍한 현실이다. 가장 심각한 경우는 간병을 위해 직장을 그만둔 비혼 여성의 경우인데, 이러한 취업 포기는 돌봄자를 위한 제도적 보상이 없는 사회에서 비혼여성을 더욱 ‘주변화’하고 ‘하층 계급화’를 촉진하는 기제로 작용하게 한다는 것이다. 일단 주돌봄자가 되면 도중에 그만두기 어렵고 장기간의 부모 돌봄과정 자체도 지난하나 돌봄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해도 이후 노동시장으로 복귀하고자 해도 재취업은 참으로 요원하다. 따라서 비혼 여성 돌봄자는 부모에게 충분한 유산을 받지 못한다면 결국 주변화되어 정부의 생활보호에 기대어 살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다소 섬뜩한 진단이 아닐수 없다. 우리의 현실과도 너무 비슷하다. 최근 한국에서도 돌봄의 이슈가 중요 이슈로 부상하여 노인장기요양제도와 같은 돌봄부담을 완화시켜주는 여러 가지 제도가 생겼으나 제도의 수혜대상이 너무 한정돼 있고, 선택 가능한 인프라도 많지 않아 여전히 자녀들이 떠맡아야 하는게 일반적이다.


돌봄 과정 자체도 적잖은 도전과 고통을 수반하는데, 릿쿄대학 정신과 의사인 가야마 리카박사는 부모를 집에서 케어하다가 불면증, 우울증에 걸린 중년여성들이 정신과를 많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중년 자식의 입장에서는 연로한 부모가 요양원이나 시설에 들아가는게 안심이 되고 그만큼 케어부담도 없어 좋은데 부모들은 요양원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자신은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니라는 사고의 오류, 그리고 자녀 입장에 대한 배려 부족 등으로 웬만해선 가지 않으려고 하며, 그 부담은 중년이 된 자녀들이 고스란히 떠맡게 된다.


고령화사회로 인한 돌봄부담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초저출산 저성장의 시대를 맞은 지금 자녀로부터 돌봄을 받는 세대는 어찌보면 지금 세대가 마지막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박명하지 않는한 누구나에게나 올 수발 도움이 필요해지는 고령기를 생각하면 암울해진다. 그나마 기대할 것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의 진보로, 인간의 수고로움을 대신해줄 로봇들이 상용화되는 미래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혼여성이 돌봄의 주체가 되기 쉬운 현실에서 혼자서 산다는 것이 주는 자유로움은 어떤 일정 조건이 전제돼야 지속 가능한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노년학을 연구하는 지성씨 이기에 너무 노화된 미래에 함몰돼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쨋거나 혼자 산다는 것은 혼자 평화롭게 살고 싶은 소망을 방해하는 환경적 도전들을 어떻게 대처하고 통제해 나가느냐 하는 것에 관건이 있을듯 하다. 어찌하랴? 세상 일이 온전히 자발적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을.... 지금도 돌봄에 허덕이는 중년여성들에게 깊은 위로와 연대감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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