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사람은 미성숙한가?

싱글중년여성에대한 고정관념에 대하여

by 백지성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사람의 능력은 저마다 개인차가 있다. 있어도 심하게 있다. 어떤 사람은 아직 20대임에도 불구하고 놀랄만한 성찰이 있는 사람도 있는 반면 중년이 되어서도 애기처럼 이기적이고 미성숙한 꼰대도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개인차가 크니 어떤 현상의 결과를 쉽게 일반화시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특히 비교를 하는 차원에서 더욱 그렇다. 남녀노소, 학력, 성격유형, 혈액형 스타일...등의 잣대로 서로 비교하고 판단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대신에 난 한 개인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판단해야 한다.


아직도 사회의 많은 이들이 결혼하고 애를 낳아 키워보지 않은 여성은 애를 키워본 여성보다 성숙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나이보다 한참 어린 사람 취급한다. 그것은 사회적 지위와도 별 상관이 없다. 배웠거나 안배웠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그저 미성숙한 여성으로 치부되는 듯하다.


지성씨는 교수가 된지 몇 년이 흐른 시기 싱글이었을 때 우연찮게 지역의 같은 분야 교수모임에서 예전 직장 동료이면서 초등학교 동창을 몇십년만에 만났다. 마침 지성씨와 같은 동네에서 산다고 식사를 제안하길래 이후 집 근처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20여년의 세월의 공백을 메꾸기 위한 안부를 대략 물은 후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지성씨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어느 순간 조심성이 사라지면서 마치 오빠라도 되는 양 자꾸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가? 그것은 분명 지성씨가 아직 미혼이라고 말한 이후부터였다. 그 친구가 꼭 의도하고 한 행동은 아닐지라도 지성씨가 미혼이라는 사실은 그 친구에게 뭔가 자신이 한수 위에서 가르쳐줘야 한다는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모양이었다. 이런 식의 경험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여러번 있었다.


중년 남성들이 특히 그랬다. 참고로 지성씨는 교수가 되기 전에 건강보험공단, 지역 일간지 기자, 대학 연구소 직원, 미국 사회복지사, 박사후 연구원이라는 다채로운 직업을 10여년 경험하면서 비교적 남성들 독점의 영역에서 남성들과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업하며 살아온 편이다. 소위 만만해 보이는 스타일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유형인데 교수가 된 이후엔 직업이 주는 무게와 중년의 나이가 더해져 항상 존중받는 느낌을 받아온 터였기에 이런 식의 애취급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일이 된다.


아마도 싱글로 사는 여성들은 지성씨와 비슷한 경험을 수도 없이 하고 살 것이다. 미혼이라는 것은 왜 사회로부터 평가절하되는 대우를 받는걸까? 몇 번의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지성씨는 그럴 근거를 자못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여기엔 결혼한 사람이 주류인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은 비주류로 사는 사람으로서 이해받지 못하는 애환, 오랜 남성중심적 사회가 주입한 '여성은 곧 양육하는 사람'이라는 여성상에서의 이탈 외에도 어떤 현상의 추론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 과잉 일반화의 오류가 유독 미혼들에 대한 평가에 있어 더 심하게 작동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성씨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면, 지성씨가 지금과 ‘똑같은 경험을 했다는 전제 하에서’ 여기에 엄마로서의 경험까지 더해진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그럴 것이다. 어쨋거나 한 가정에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특히 엄마로서 살아왔다는 것은 수많은 도전과 응전의 연속에서 풍부한 생의 경험을 얻었을 것이고 그만큼 더 지혜로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이 있다는 것을 전제했을 때에 그렇다’는 것이다. 즉 지금의 성숙함을 가져온 경험들에 더해 엄마경험까지 더해졌다면 지금보다 더 성숙해져 있을 것이지만, 엄마 경험은 있되 다른 중요한 경험들이 대신 없었다면 과연 지금보다 더 성숙해져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수 있을까?


다시말해 지성씨 나이 또래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20대 후반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면 지성씨는 아마도 첫 직장이던 건강보험공단을 계속 다니면서 결혼하고 일하는 엄마로 살았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홀로 유학생활을 하던 시절 ‘절대 고독’의 경지를 체험하며 실로 많은 시간 살아온 지난 날을 성찰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다짐으로 자못 뜨거워졌던 순간들을 경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늦게나마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지적 탐구에 몰두해 지금과 같은 지식과 통찰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살 때는 가족이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함몰되어 자신에 대해 그렇게 깊고 오래 집중한 적이 없었다. 타국에서의 유학시절은 굳이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꾸 생각이 되는, 그래서 고독해지는 시간의 연속 속에서 문득문득 정말 많은 성찰의 시간을 가져다줬다. 특히 더 이상 어떻게 더 할수 없을만큼 최선을 다해 공부했기에 심리학의 거장 알프레드 아들러가 매우 성숙한 사람만이 경험할수 있다는 ‘절정 경험’을 박사과정에 하기도 하였는데, 한국에서 사람들 속에서 치이며 계속 살았다면 이게 가능했을까 싶다. 물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국내대학에서 학위를 하고 교수가 될 수는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오롯이 타국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견뎌야 했던 유학시절에서 얻은 성찰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절의 성찰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매우 중요한 모멘텀이 되었다는 사실을 지성씨는 확신한다. 즉 대학을 나와 직장을 다니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엄마로서 지금의 나이가 됐을 경우와 지금의 나를 비교했을 때 꼭 엄마로서 살아온 삶이 현재 더 성숙한 모습일 거라고 장담할수 없다. 굳이 타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을지라도 혼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오롯이 혼자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온 사람들에게도 성숙해질 충분한 기회가 있다.


사람들은 흔히 싱글은 혼자만을 위해서 살아왔으므로 비교적 편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다소 미성숙의 이미지로 연결되는듯 싶다. 지성씨 경우에서도 그렇듯 성숙의 길에 도달하는 것은 어느 한가지 방향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결혼하고 안하고가 판단의 결정적 기준이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경험은 성숙을 가져오는데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개인의 여러 가지 경험, 그러니까 주부나 엄마가 되는 경험, 공부를 많이 하는 경험, 사회적 경험.... 즉 많은 경험은 그만큼의 뭔가를 얻었을 확률이 높은 것이지 결혼 여부가 뚜렷한 잣대가 되는 것은 과잉일반화의 오류인 것이다.


혼자 오랜동안 살아온 것이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만만하게 살아온 것이 아닌 사람들이 많다. 혼자서 외롭게 헤쳐왔을 그 무수한 시간들도 존중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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