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돌아본 인생 성적표
"여보, 내 인생은 늘 80프로 정도를 성취하며 살아온 것 같애"
어느날 남편과 지나온 삶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문득 나온 말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어쩔지 몰라도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내 인생 성적표는 대략 무엇에서든지 80프로 정도를 성취하며 살아온 것 같다는게 언젠가 성찰하듯 든 생각이었다.
이 80프로, 혹은 80점이라는 것의 의미는 종합평가 점수로서의 의미보다도 늘 도전해왔고 소망해오던 것들에서 번번이 그 소망했던 것은 성취하지 못하고 그 보다 다소 낮은 수준, 혹은 차선인 것들, 그러나 그게 결코 부족한 성취였다고는 할수 없는 정도를 성취했다는 의미로 80프로라고 표현한 것이다.
대학에 들어갈 때도 그렇고, 박사진학때도 내가 지원한 학교 중 내심 순위를 매겼을때 3순위 정도였던 학교에 들어갔다. 직장도 당시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 일자리가 끊임없이 주어지긴 했으나 이러 저러한 이유로 안착하지 못하고 여러번 직장을 바꿔야 했을 정도로 오랜동안 내가 원했던 직장을 가지지 못했었다. 특히 내 생애 마지막 직업으로 보이는 현재의 직장도 부족한 나를 뽑아준 것은 지금도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당시 내심 임용되기 원했던 학교 레벨 보다는 한단계 낮은 학교여서 대략 기대의 80프로 정도였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40대의 끄트머리에 만난 현재의 남편과의 결혼도 남편 자체는 내게 백점에 가까운 사람이나 나의 홀가분한 상황에 비해 두 아이의 아버지이며 지금도 이래저래 부담이 많은 장손 아들이라는, 남편이 처한 환경을 종합해볼때 결혼 역시 80프로 정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솔직히 했었다.
80프로의 성공이라는게 보기에 따라 좋지 않은 성적일수도 있고 좋은 성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80프로의 성취라고 남편에게도 편하게 말할수 있는 것은 이 수치가 결코 나쁘지 않은 성취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기에 편하게 말할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80점은 낮은 점수가 아니다. 상대평가 체계가 자리잡은 대학에서도 아이들이 80점, B를 받기 위해서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중년이 되니 성취하지 못한 일에 대해 그닥 연연하지 않게 되어서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80점이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 80점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에 부글부글 끓지 않는다. 또한 인간의 본성이 내가 가지고 싶었으나 못가진 것을 주위 가까운 사람이 가졌을때 인간은 보통 가장 큰 질투와 자극을 받는데, 이게 중년이 되니 그 고통의 감정이 많이 희석되어서 편하다. 그 힘듦의 강도도 약해지고 횟수도 현저히 줄어든다. 그날 잠시 힘들 뿐 자고 일어나면 다 잊어버리고 만다. 한마디로 나를 달달 볶지 않아도 되어서 좋은게 나이가 준 선물인 듯하다.
나의 80프로의 성취론에 대해 어느날 남편은 이런 논평을 해서 내게 서늘한 통찰을 안겨주었다.
80프로의 성공을 디딤돌로 생각할줄 알아야 하는게 아니냐고... 80프로의 성공 덕분에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게 아니겠냐고...
특히 자신이 100프로라고 생각하면 100프로인 것이고, 80프로라고 생각하면 80프로인 것이 아니겠냐면서 '일체유심조' 사고의 미덕을 다시한번 되새겨준다.
얼마나 통찰적인 시각인가! 정말 그 말을 듣고 보니 철석같이 믿었던 내 80프로 성공론이 흔들린다.
우리 모두는 한때 갖고 싶었던 직업, 만나고 싶었던 조건의 사람, 자식에 대한 바램... 이 있었으나 중년에 문득 되돌아보니 이 중요한 것들을 소망한대로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에 허탈해지기도 한다. 인생의 기로에서 때론 선택하기도 하고 때론 선택으로 둔갑되었으나 실제론 거의 어쩔수 없이 환경에 떠밀려 선택되어진 인생 사건들 속에서 적응하려고 안간힘도 쓰고 그 속에서 최선의 삶을 찾기 위해 노력하다 지금 이렇게 나이든 것인데 욕심만큼 성취하지 못했다는 것도 어찌보면 내 착시일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부러운 성취일수도 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도 있는 반면 그래도 이 만큼이라도 성취하며 편안하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의 마음도 몇배로 많아진 중년을 맞은 것이니 이 또한 나쁘지 않다.
얼마전 몇안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 20대로 돌아가고 싶은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모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금이 좋고 편하다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나 역시 그렇다. 친구들도 현재 모두 편안하고 만족한 생활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나이가 준 편안함이 결코 팔팔한 청춘의 유혹과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이라는데 일치한 것이다. 사실 내 또래 대부분의 사람들이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덜컹거리며 관통해온 지나온 청춘의 시간들에 고개가 절래절래 저어져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나이든 현재의 생활이 주는 편안함과 성찰적 만족이 훨씬 낫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 남편의 말처럼 80프로의 성공이 디딤돌이 되어 지금 이렇게 편안하게 늙었다. 80프로나 성취한 덕분에 내가 이렇게 편안한 중년을 맞은거지!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중년이 준 나이가 훈장처럼 느껴진다.
중년!
거울을 봐도 불만족스럽고, 갱년기다 뭐다 신체적으로는 좀 힘들지만, 그래도 정신적으로는 참 편안헤서 좋다. 세상에 완벽한 상태, 완벽한 것은 없으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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