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안 Sep 06. 2023

결혼을 쉽게 본 적도 없는데, 큰코다쳤다.


나름 똑똑한 것들끼리 연애하고 결혼했다. 한 놈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다른 한 놈은 연세대를 졸업했다. 우리는 성숙한 지성인이라고 굳게 믿었는데 결혼하고 나니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똑똑한 사람도 한순간 멍청이가 되기 십상인 게 결혼이다.


대화로 해결하는 게 좋다는 건 나도 알고 너도 안다. 살아보니 말처럼 쉽지 않다. 대화가 안 통하는 부모님을 보며 내 결혼생활은 다를 거라 믿었던 나는 참 어렸다.


남편과 나는 20대 후반에 결혼했고 벌써 결혼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1년 간의 불타는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연애할 때 크게 싸운 적이 없었기에 결혼생활도 안정적일 거라 착각했다. 연애를 길게 하든, 짧게 하든 어쨌든 연애는 연애다. 연애는 결혼이 아니다. 동거도 결혼이 아니다. 


결혼 전 우리 역시 잠깐이지만 동거를 했다. 물론 일반적인 동거와는 달리 결혼식 날을 잡은 후 부모님께 허락까지 구한 동거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양가 친인척과 지인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결혼을 선포하고 일상을 함께하기 전까지는 그 형태가 무엇이든 그것은 결코 결혼이 아니다. 결혼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행위다.


결혼하기 전부터 상대방 가족과 자주 교류했다 하더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그때는 법적으로 묶인 게 없어서 여전히 남인 상태로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기 때문이다. 그때 내 결혼은 남들과 다를 거라고, 나에게 고부갈등 같은 건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결혼 후 남편과의 사이에서 문제가 하나 둘 터질 때마다 나는 사기 결혼을 당한 줄 알았다. 분명 시부모님을 처음 뵙는 자리에서 시어머니께서는 “너네끼리 행복하게 잘 살면 그걸로 된 거다.”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결혼하고 난 후 시어머니께서는 “우리는 이제 모두 한 배를 탄 거다.”라고 의미심장하게 말씀하셨다. 상황은 친정 부모님이라고 크게 다르지도 않다. 다만, 친정 부모님은 성질 더러운 내가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조금 다를 뿐이다.


남편과 결혼생활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은데, 시댁을 이해하기란 정말 벅찬 일이었다. 게다가 가족 중 장애인이 없었던 내가 남편의 누나가 장애인이라는 상황을 감수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는 분명 연애할 때부터 남편 누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라면 그 상황을 현명하게 감수할 수 있을지 알았다. 이것은 큰 오만이었다. 나는 주변의 만류와 가족의 걱정을 뿌리치고 용감하게도 결혼을 결심했다. 


장애인을 가족 구성원으로 둔 시댁이 30년 넘게 쌓아 올린 성벽은 생각 이상으로 높고 견고했다. 남편 누나이자 나의 형님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나는 시댁에서 늘 이방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힘들어하면 남편은 내가 예민하다고 생각하고, 나는 남편이 장애인 가족이라 피해의식에 가득 찬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런 결혼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남편과 나는 시댁과 거의 1년 간 교류를 끊은 적도 있었다. 평생 다시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시댁과도 지금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어른들은 다들 본인의 결혼생활에 대해 책 한 권씩은 거뜬히 쓸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나 또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엮으면 책 한 권을 쓸 수 있겠다 싶었다.


결혼하면 절대로 둘만 행복할 수는 없다. 사는 게 그렇지가 않다. 결혼을 유지하려면 배우자를 이해하고 또 배워야 한다. 배우자를 이해하려면 배우자 인생의 모든 단면들을 면밀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한 단면을 이해했다 싶을 때 또 다른 새로운 단면을 마주하는 게 결혼생활이다.


책 제목은 “다들 결혼 좀 하세요, 저만 당할 순 없잖아요.”라고 지어서 공격적인 면이 다소 있다. 하지만 사실 진심을 담아 독자들에게 결혼을 추천하고 싶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세계관이 깨질 때마다 성장한다. 단언컨대, 결혼은 자신의 세계관을 깨트리고 가장 크게 성숙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 피 터지는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나면 생애 처음 경험하는 엄청난 자신감과 안정감을 맛볼 수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고 건강한 인격체로서 배우자와 삶을 공유하는 순간부터 “진짜 결혼”이 시작된다.

이전 01화 다들 결혼 좀 하세요, 저만 당할 순 없잖아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