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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크러쉬 Apr 10. 2022

뜨거운 마릴린이 좋아

헐리웃 최고의 섹시스타, 마릴린 먼로의 삶





"It's better to be hated for what you ar than to be loved for what your noet"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보다 내 본연의 모습으로 미움받는 것이 더 낫다)
이 말은 하늘의 별이 된지 6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빛나고 있는 스타, 마릴린 먼로가 한 말입니다. 먼로하면 누구나 "백치미", "섹시스타"를 쉽게 떠올리는데요. 빌리 와일더 감독의 영화 <7년만의 외출>속 입을 살짝 벌리고 환풍구 바람에 뒤집어지려 하는 짧은 흰색 홀터넥드레스를 다급히 붙잡고 있는 먼로의 모습은 지금도 헐리웃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허나 마릴린 먼로는 단순히 "섹스심벌"로만 소비해도 되는 배우일까요? 20세기 통털어 가장 많은 표정을 지니고 있는 배우의 진짜 모습이 과연 섹시스타 단 하나뿐이었을까요?




노마진과 마릴린 사이, 두개의 삶을 가진 여자



2009년 6월, 미국 <라이프>매거진은 마릴린 먼로가 무명시절 찍었던 1950년 6월, 그리피스 공원의 녹음에서의 그녀가 담긴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이당시 마릴린먼로는 1952년 라이프 잡지에 첫 등장하기 이전의 무명모델이었고 당시 24살이었던 먼로를 찍었던 사진작가 에드 클락은 사진을 찍은 후 라이프지에 게시를 제안했으나 먼로가 무명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밝혔으며, 그녀가 무명이었기때문에 한가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이 사진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니셜이 MM(Marilyn Monroe)이 새겨진 버튼이 달린 간단한 셔츠를 입은 모습인데요. 마릴린 먼로라는 대스타가 되기 전의 노마 진 모텐슨의 모습, 화려하진 않지만 눈은 빛나고, 가난힌 모델이었지만 결코 꿈까지 가난하지는 않았던 그녀의 모습은 노마에서 마릴린으로 거듭나기 위한 경계선 어딘가의 모습이었습니다.


노마와 마릴린은 샴 쌍둥이처럼 한 몸안에 존재하는 두 이름이지만, 영원히 서로를 마주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사람이기도 합니다.1946년 처음 그녀를 고용한 스튜디오 이십세기 폭스사는 먼로를 당시 최고의 섹스심벌이었던 진 할로우를 능가할 재목이라 판단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세련되지 않은 이름이었던 노마 진 대신 좀더 고상해보이는 "마릴린 먼로"라는 이름을 급조해 사용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이때부터 그녀는 노마와 마릴린이라는 두개의 삶을 살기 시작했는데요. 불행한 가정환경을 거쳤던 노마 진이 마릴린 먼로로 본격적인 배우생활을 시작하며 그녀는 첫번째 파경을 맞았고, 먼로로 성공가도를 달리기 전 찍었던 달력용 누드사진 스캔들이 불거져 나왔을때 이제 막 유명해지기 시작했던 먼로는 기자들 앞에 나서서 방세를 운운하며 단돈 50달러의 절실함을 피력하기에 이릅니다. 비극적이지만 드라마틱한 섹시스타라는 타이틀에 대중들의 관심을 더욱더 그녀에게 쏠렸고, 먼로는 더 많은 관심을 받기위해, 더 많은 동정을 얻기위해 과한 상상력으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조작해내기에 이릅니다. 

<왕자와 무희>(1957)를 연출한 로렌스 올리비에는 50년대 후반의 먼로를 이렇게 기억하는데요. "마릴린 먼로 안의 두 사람은 너무나도 달라서, 더이상 달라지려해도 달라질 수 없을 정도였다"라고 기억했습니다. 마릴린 먼로와 노마 진을 오가는 이중적 생활이 불러온 격차는 결국 그녀의 삶을 초토화시켰고, 대중들이 그녀에게 보내준 사랑으로 그녀는 자신의 비극적 인생을 치장하는 재료로 활용했습니다. 스스로가 만든 두개의 삶은 결국 자기 자신마저 먼로인지 노마 진인지 헷갈리게 만들었습니다.



멍청한 금발이 되지 않으려는 노력



마릴린 먼로가 본격적인 주연으로 나선 첫 영화는 1953년 <나이아가라>입니다. 물론 그녀가 주목을 받은 첫 영화는 <이브의 모든 것>이며 그외에도 <아스팔트 정글> <몽키 비즈니스>같은 제법 유명한 영화들에 얼굴을 비췄지만, 이 영화들에서 그녀는 조연이나 단역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스타로 올려놓지는 못했죠. 허나 27살에 출연한 <나이아가라>는 그녀를 단숨에 세계적 섹스심벌로 만들었으며 그 이후 영화들은 모두가 다아는 <돌아오지 않는 강> <버스 정류장> <7년만의 외출> <뜨거운 것이 좋아>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입니다. <나이아가라>의 초반부에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드러내는 딱 달라붙는 투피스 정장을 입은 먼로가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은, 영화만큼 유명해진, 그녀의 섹시함이 돋보이는 장면인데요. "먼로 워크"라 명명될정도로 유명한 장면을 남긴데에는 그녀의 금발 머리와 입가의 점, 빨간 입술과 반쯤 감은 눈,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에서 잘록한 허리에 이르기까지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한치 틈도 없이 재단된 옷보다, 한쪽을 깎아 걸을 때 엉덩이를 흔드는 효과를 극대화시킨 그녀의 하이힐이었습니다.


먼로는 이처럼 대부분의 영화에서 같은 이미지로 자신을 형상화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먼로는 끊임없이 이렇게 형성된 "멍청한 금발 섹시녀"라는 이미지에서 도망치려고 노력했던 여자입니다. 그녀의 운명의 상대였던 극작가 아서 밀러와의 결혼에 대해 "만약 내가 멍청한 금발일 뿐이었다면, 그가 나와 결혼했겠냐"고 주장했으며 생애 마지막으로 가진 <라이프>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섹스 심벌로서의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할때 "그건 당신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며 기자를 비웃기가지 했습니다. "섹스 심벌이 된다는건 그냥 물건이 된다는 말인데, 난 그게 싫다"고 단언한 먼로를 두고 가까운 지인들은, 그녀가 멍청함과 섹시함에 취해 있는 것처럼 보이려했고, 게다가 그걸 즐기기까지 했다고 증언합니다.







Just a few drops of Chanel No 5



마릴린 먼로하면 떠오르는 것들중 하나가 바로 CHANEL N°5 향수인데요. 그녀가 샤넬 넘버 5를 처음으로 언급한 때는 1952년 4월 7일, <라이프>매거진과의 인터뷰였습니다. 당시 “What do you wear to bed?"라 물었던 기자의 질문에 "“Just a few drops of Chanel No 5”라 답한 그녀의 인터뷰는 화제의 중심에 올랐으며 다음해인 1953년 10월 모던 스크린을 위한 촬영을 위해 침대에서 나체로 포즈를 취한 먼로의 모든 컷엔 샤넬 넘버 5가 등장합니다. 후에 1960년 4월 프랑스 잡지 마리끌레르의 기자가 먼로를 인터뷰하며 처음으로 샤넬 넘버 5를 언급하는 마릴린 먼로의 음성을 담아냈으며 2012년 10월, 마침내 샤넬에서 이 인터뷰 녹음본을 입수해 광고로 만들어냅니다.


샤넬은 2012년 10월 5일, 브랜드의 140년 역사를 타임라인 형식으로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마들며 샤넬 관련 이야기를 많은 영상과 사진을 활용해 재조명하는 "Inside CHANEL" 캠페인을 시작하는데요. 두번째 주제로 등장했던 마릴린 먼로 캠페인에서 1960년의 인터뷰에 인용된 샤넬 넘버5와의 인연을, 그녀의 미공개 사진과 녹취 내용을 담아내며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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