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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No Man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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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승원 Feb 18. 2022

예술과 문화가 사료가 되었을 때

새로운 힙스터 지침서

나는 영상 제작 워크샵을 부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20대 초중반의 젊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종종 있다. 간혹 그들이 선호하는 영화나 음악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신기할 때가 많다.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좋아했던 것들이 그들에게 굉장히 활발하게 소비되고 있고 아직까지도 멋지고 세련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어떤 친구는 "저는 제가 태어나기 이전에 나온 음악들은 잘 안들어요. 요즘 힙스터 되려면 이 정도는 해야 되요."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왕가위 감독님, 이창동 감독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그리고 누벨바그의 수많은 거장 감독들의 영화들, 미쉘 공드리 감독님, 라디오헤드, 스웨이드, 오아시스 등을 필두로 한 브리티쉬 팝부터 피쉬만즈, 토와테이,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 등의 수많은 일본 음악들까지.. 90년대 초부터 2000년대를 주름잡던 컨텐츠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나는 무척이나 신기했다. 근데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겨난 것일까?


지금은 유행이 조금 지났지만 뉴트로라던지, 레트로 라던지 하는 것들이 한참 동안 유행을 했었다. 새로운 기술로 중무장한 채 다가오는 설레는 미래보다 예전의 따뜻함을 그리워 하는 세상 속에서 젊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꽤나 의미심장한 일이다.


90년대와 2000년대에 만들어 졌던 것들을 떠올리자면 위에 열거한 것처럼 멋진 것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고 넘쳐났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그 시대에는 이딴 걸 도대체 어쩌자고 만드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어이없는 물건들 또한 넘쳐났다. 

문화 컨텐츠도 그렇고 전자제품, 식음료, 게임 같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조악한 것들 속에서 때때로 눈에 띄는 보석 같은 음악, 영화, 디자인, 문화 들이 터져나와 자고 일어나면 어떤 새로운 것이 나를 흥분시킬까 기대하는 나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지금의 고도화된 현대 사회는 그때 만큼의 조악한 것들은 세상에 잘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것들,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것들,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들의 데이터가 쌓이고 쌓여서 "그런 것들 만큼은 두번 다시 만들어져선 안돼!" 라는 생각에서 생겨난 결과물이 아닐까?


반대로 그때만큼 몇십년 뒤에도 회자되고 기억될 만큼 좋은 것들이 생겨나지도 않는 것 같다. (물론 지금 만들어지는 것도 정말 좋은게 많지만 예전만큼 빈도가 잦지 않은 것 같다. 이건 비단 내 생각일 뿐일까?)


지금은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도, 광고를 만들 때도 영화를 만들 때에도 그것을 투자하거나 의뢰하는 대기업이나 그들을 따라하는 중소 기획사들의 가이드라인이 너무나도 철저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말하자면 소위 먹히지 않는 것들, 화제성을 만들수 없는 것들은 처음부터 싹을 잘라 버리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어느 대형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는 뮤직비디오를 찍기 전에 뮤직 비디오 감독에게 10페이지에 가까운 작업 방향 지시서를 건낸다고 한다. 그 지시서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초 단위로 감독이 어떤 장면을 찍어내야 하는가에 대한 것들이 적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여느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영화에 담아야 할 스토리 라인을 감독의 이번 작품의 방향성 그리고 작품의 메시지 따위는 무시한 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한다고 한다. 

극중 초반에는 감초 역활의 배우를 통한 유머 코드가 있어야 하고 영화 중후반 쯤에는 가족애를 다룬 감동 코드가 있어야 하고 영화 후반에는 시원시원한 액션씬이나 폭파씬으로 대미를 장식 해야 한다는 식으로 영화의 내용의 흐름을 쥐락펴락하여 영화를 만든 감독조차 납득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흥행은 할 수 있을 것이고 애초에 조악한 것을 만들 확률은 많이 내려가겠지만 특출나고 비범한 것들이 나타날 확률은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상업 예술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사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조악한 것들이 많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겉보기에 퀄리티는 나무랄게 없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세부적인 것이나 전체적인 흐름이 엉망진창인 작품들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맨날 똑같은 걸 먹는다면 그건 사료나 다름 없다. 그 점에서 문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또 다른 사료를 만들고 싶지 않다. 하지만 먹고 산다는 문제는 나를 결국 사료 공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든다. 슬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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