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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No Man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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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승원 Feb 18. 2022

당신의 간판을 바꿔드립니다.

누구 맘대로

나대지 않는 미덕을 보여주는 나의 사무실 간판

작년 어느 날 중년의 남자 두 명이 사무실에 들어오더니 난데없이 무료로 간판을 바꿔주겠다고 말했다. “난데없이 갑자기? 사기아냐?” 라는 생각이 들어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서울시의 흉한 미관을 만들어내는 일등 공신인 흉물스러운 간판들을 무료로 교체해주겠다는 도시 미관 개선 정책 사업의 일환이었다. 우리 사무실의 간판은 아름답지는 않지만 건물의 규모에 비해 아주 작고 모노톤에 작은 글씨와 로고로 만들어졌기에 그 의도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괜한 혈세 낭비를 막고 싶어 우리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일주일 뒤 어이없게도 우리 사무실을 제외하고 동네의 모든 가게나 사무실의 간판이 바뀌게 되었다. 근데 바뀐 간판의 디자인과 배색, 폰트, 사이즈 등은 하나도 바뀐 것 없이 그때의 모습 그대로거나 아니면 이전보다 더욱 안 좋은 상황으로 변해있었다. 아니 이럴 거면 왜 소중한 국세를 낭비해서 멀쩡한 간판을 바꾸는 거고 환경오염을 발생시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탁상 행정의 말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잔혹한 예시가 되고야 말았다.


예전 오세훈 시장이 서울 시장으로 재직하였던 시절에 "디자인 서울"이라는 슬로건을 달고 간판 교체 사업을 추진했었다. 덕분에 나는 그때 당시 꿀 아르바이트를 하나 한 적이 있는데 그건 바로 서울시의 모범이 될 간판 20개의 가게의 간판을 촬영하는 일이었다.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니며 20개의 간판을 여러 각도로 촬영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내 기억에는 30만 원 정도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것을 촬영하면서도 "근데 이 간판은 그럼 뭐가 괜찮고 아름답다는 거지?"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기억이 있다. 20대 중반의 나는 그런 부분에 있어 불편함을 느낀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급급했기에 그냥 군말 없이 사진을 찍어 넘겼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것이 무차별적으로 강제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 당시의 서울시는 서울시내 간판을 전부 서울특별시가 제정한 서울시 디자인 가이드라인에 따라 교체할 것을 조례로 제정하였다. 아무리 멋진 형태의 간판 디자인의 가이드라인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간판을 교복처럼 통일하자니 정말 엄청난 무리수를 둔 것인데 문제는 그 가이드라인이 디자인적으로 별로였고 가독성 또한 최악이었다라는 문제점이 있었다. 물론 건물의 전체 면적을 차지하는 흉한 평면 간판을 양각 스타일의 폰트나 로고로만 이루어진 입체감이 있는 작은 입체형 간판으로 대체하려고 한 노력은 인정하지만 말이다.


작년도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되었다.”라는 뉴스를 보았을 때 나는 문득 "선진국은 개뿔, 흉물스러운 서울의 간판들부터 어떻게 해보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우리 사무실 앞의 건물들의 간판만 보아도 건물의 입구 상단의 여백은 쓸데없이 거대한 간판들로 채워져 있고 그것들은 누구 하나 시선을 뺏길세라 온갖 형광색들로 도배되어 있다. 그리고 폰트의 선정은 너무나 신중치 못해서 나는 서울이란 도시에 38년째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늘 그 모습이 거슬린다. 진한 노란색, 형광이 도는 적색, 녹색 같은 색은 웬만하면 경고 표지판이나 도로 안전선에만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컬러는 눈에 너무나도 잘 띄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건물의 간판마다 그런 색들을 사용하니 우리의 시선은 머무는 곳마다 디자인적인 공해로 괴로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은 자신이 머무는 공간의 환경과 디자인, 배색, 조명등으로 인해 성격이나 생활 방식이 결정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선진국이 되었다면 그런 부분들이 조금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 같은 방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되면 나는 또 "이 이름뿐인 간판 디자인 교체 사업이 누굴 위한 것인가? 누가 이 명목뿐인 나라의 사업 계획으로 이득을 얻는가?" 이런 것들을 의심하느라 또 잠 못 이루게 되어버리니 말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디자인 서울" 시절에는 그 수혜자 중 한 명은 나였던 것 같다. 그게 단돈 30만 원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던 시절의 청년이기도 했지만 이제 와서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부끄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런 간판 사업으로 인하여 눈먼 돈 몇 천만 원, 몇 억의 수혜자도 분명 존재할 것만 같은데 이건 뭐 확실치 않으니 접어두기로 하고 나라에서 이런 것들을 강제적으로나 혹은 교체를 권장 및 지원해주며 바꾸는 방식보다는 가게나 사무실을 찾는 소비자와 공급자 한 명 한 명이 좀 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디자인을 선호하게 될 수 있도록 미디어와 매체들에서도 그것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학교의 수업에서도 아름다운 디자인, 차마 아름답지 못하다면 시각적으로 조용한 디자인의 매력을 강조하는 수업을 아주 조금이라도 진행해준다면 (마치 예전의 교련 수업 정도의 비중으로 말이다.) 서울시는 정말 선진국의 수도라는 말이 어울리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

돈만 잘 번다고 선진국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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